[문학이 태어나는 자리](19)유폐
ㆍ나를 가둬두는 벽을 끊임없이 감지하고 자유 꿈꾸는 날갯짓
바람이 분다. 먹구름이 자욱하다. 세상은 겹겹 벽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감옥이다.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문득 일어난 유폐감에 나는 추워졌다.
감옥이나 정신병원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체홉의 ‘6호실’에서 정신과 의사 안드레이가 정신병동 6호실에 갇혀있는 이반에게 한 말이다. 푸코의 방대한 논의가 있기 전 체홉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죄와 정신병 때문에 감옥이나 정신병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감옥과 정신병원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성은 지식을 내세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권력은 법과 도덕을 내세워 선과 악을 나눈 뒤 후자를 가둔다.
통일신라 말기 경주 거리에 진성여왕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난하고 망국을 예언하는 주문이 나돌았다. 왕은 그 배후로 왕거인(王居仁)을 지목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왕거인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시를 지어 하늘에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벼락이 내려쳐 감옥을 부숴버렸다. ‘삼국유사’ ‘거타지 설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 짧은 이야기는 민중들의 감옥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의의 시대 감옥은 의로움의 표상이 된다.
맹호가 깊은 산에 있으면 온갖 짐승들이 두려움에 떨지만, 함정에 빠지고 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달라고 합니다. … 이제 손발이 묶인 채 칼을 차고 맨몸에 매를 맞으며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옥리를 보면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간수만 보아도 숨을 죽이게 마련입니다.
사마천이 감옥에 있는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이다. 일단 함정에 빠지고 나면 맹호도 고기 한 점에 꼬리를 흔들고, 제 아무리 지조 반듯하던 선비라도 옥리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철창 안에 갇히는 순간 자유는 저당 잡히고 인격은 무시된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무릎을 꺾게 된다. 숲의 제왕인 맹호도 그러할진대 토끼나 노루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위협과 모욕과 지탄 속에 사람들은 공포와 수치심과 자학에 빠지고, 이는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물리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 감옥인 것이다. 여기에는 절망과 슬픔만이 가득하다. 진양조 가락으로 애잔하게 늘어지는 춘향의 ‘옥중가’ 소리에 그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옥 사연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한 사형수가 형장을 향해 아리랑고개를 오르며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고,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이 노래를 불렀다는 김산(1905~1938)의 이야기는 감옥에 얽힌 민중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전해준다.(님 웨일스, ‘아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중가’와 ‘아리랑’은 슬픔이 슬픔에서 끝나지만은 않았던 사연을 말해준다. 그들은 그 상황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절망을 끌어안고 따스하게 슬픔을 보듬으려 했던 것이다. ‘아리랑’이 죽음의 노래이지만, 죽음이 패배는 아니며,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 있다고 하여, 김산은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애틋하고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었다.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조로 꼽힌 것은, 거기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들은 절망적인 유폐의 상황에서 포착된 진실이 어떻게 생명의 언어로 되살아나는가를 말해준다.
지난 시기 수많은 사람들은 감옥이 새로운 세계를 빚는 창작의 무대임을 보여주었다. 한비자는 법술에 능한 선비의 외로운 분노를 담은 ‘고분(孤憤)’을 지었고, 세르반테스는 왕실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글들은 자기가 태어난 공간을 넘어 세상 널리 덩굴을 뻗쳤다. “묶임으로써 풀어지는 포승의 자유 / 갇힘으로써 넓어지는 자유의 영역”(김남주, ‘정치범’)이라고 했다. 좁은 곳에서 넓은 세계가 나고 구속에서 자유가 생기는 법이다. 간첩으로 몰려 1971년부터 88년까지 옥살이를 했던 서준식은 옥중에서 쓰는 글이 맑고 치열하고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본시 수인이란 남을 짓밟으려야 짓밟을 수도 없는 가장 밑바닥에 놓인,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기 때문”(‘옥중서한’)이라고 했다. 감옥에서 나온 글은 때로 너무 순결하여 책장을 넘기면 활자가 깨어질까 두렵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죄목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한용운은 변호사를 대지 말고, 사식을 들이지 말며,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그가 수감 중 지은 여러 편의 시 중 ‘설야’(雪夜)이다.
사방 산 옥 에우고 눈은 바다 같은데
이불 차갑기 쇠와 같고 꿈은 재가 되었네
철창도 가둬두지 못하는 것 있으니
한밤중 종소리는 어디서 오는 건가.
四山圍獄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鐵窓猶有鎖不得, 夜聞鐘聲何處來.
계절은 겨울이고 시간은 새카만 밤이다. 몸만 추운 것이 아니라 꿈도 재처럼 식을 만큼 절망의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철창을 뚫고 은은히 들려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산사의 종소리이다. 안을 쳐서 밖으로 소리를 내는 종소리는, 산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종소리는 밤을 거둬가고 꿈의 불씨를 살릴 것이다. 그야말로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쇠와 같은 지사의 시라 할 만하다.
감옥은 진짜 삶의 학교가 되기도 한다. 함석헌(1901~1989)은 평생 여섯 차례나 투옥되었는데, 감옥은 생각하는 곳이기에 밧줄과 고랑과 철창으로 된 대학이라고 했다. 그는 이 독특한 대학을 경험하며 숱한 글을 지었다. 주로 역사와 사상에 대한 그 글들이 문학작품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가슴에 언제나 뜨거운 시심(詩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복종할 수 없다. 자유를 알기 전에 한 복종은 짐승의 길듦이지 인격의 순종이 아니다”는 얼마나 시적인가!
길산이 옥에서 달포를 지내는 중에 문득 설움 받는 백성의 삶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황석영, ‘장길산’
삶의 큰 진리를 감옥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평생 실천한다는 점에서 장길산은 함석헌의 후배이다. 감옥에서 목수 출신 노인이 땅바닥에 집을 그릴 때 아래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서가(書架)가 한 번에 무너지는 낭패를 보았다는 신영복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나무야 나무야’) 따지고 보면 함석헌의 선배와 후배는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모이면 세상 그 어떤 대학의 동문회보다도 성대할 것이다. 형편상 오늘은 몇 분만 모신다.
루이제 린저(1911~2002)는 나치 독일 말기인 1944~45년 반국가주의자로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뎌내며 몰래 일기를 써서 감추었다. 뒷날 그녀는 어두운 과거는 그냥 조용히 내버려둬야 한다는 생각에 이 옥중일기의 출간을 결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기차 여행 도중 사람들과 우연히 히틀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20년도 안 지난 그 잔혹한 역사를 이미 잊고 있거나 거기에 무관심했으며, 심지어 히틀러를 옹호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출간을 결심했고,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미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거란 현재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김문숙 옮김, ‘옥중기’
그녀는 악의 범죄를 은폐하고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로만 도피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억지로 추방된 것은 언젠가는 다시 강한 힘을 가지고 새로 나타난다고 경고했다. 세상에 과거가 어디 있는가? 모든 과거는 다 현재에 들어있으며, 미래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유일한 이정표이다. 그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그녀도 웃으면서 히틀러를 추억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념과 도덕과 논리의 포승에 묶여있고 언어와 관념과 아집의 벽에 갇혀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들의 눈에는 불현듯 보이지 않던 벽이 나타날 때가 있다. 유폐를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높고 튼튼한 벽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담장 밖의 세계를 상상하고 교신을 시도하고 탈출을 계획한다. 감옥은 가시적인 유폐의 장소일 뿐이다. 상상은 나를 가둬두는 힘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옥창 밖의 새들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벽을 감지하고 그 밖의 세계를 상상할 때 문학은 잉태된다.
보이지 않는 유폐의 벽을 끊임없이 감지하고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책임이다. 문학은 끝내 자기가 해방되어서는 아니 된다. 천형처럼 언제까지나 유폐의 실상을 감지해야 한다. 문학이 먼저 해방되어 더 이상 유폐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 세상에 희망이란 없는 것이다.
<이승수 | 경희대 연구교수>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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