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하늘이 감춘 땅] 부안 봉래산 월명암

slowdream 2008. 6. 5. 04:33
 

[하늘이 감춘 땅] 부안 봉래산 월명암


스님과 외동딸, 부부되어 진흙 속 연꽃피워

선지식·증산도 창시자·원불교 교조 머문 곳

 

 

 


부설거사와 묘화부인 부부, 그들의 자녀인 등운조사와 월명 등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 가족 도인인 부설거사 가족과 신라 의상대사, 조선 진묵대사, 성암· 해암·학명· 용성· 서옹· 고암· 해안· 월인· 탄허 등 근현대 선지식, 그리고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증산과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과 2대 종법사 정산 송규…. 한 자리에 이토록 위대한 도인들이 머문 곳이 얼마나 될까요.


월명암은 전북 부안 산내면 중계리 변산반도 봉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월명암의 본찰인 내소사 선원장 철산 스님과 함께 월명암에 오르니, 이제 갓 출가한 듯해 보이는 젊은 스님과 노보살만이 맞았습니다. 찻길이 닿지 않은 9부 능선에 자리해 멀리 원효와 의상이 일합을 겨뤘던 자씨방과 진표가 수도한 부사의방이 있는 의상봉을 비롯한 변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이 호남 제일의 영지(靈地)로 알려진 것이 이런 절경 때문만일까요. 세간과 출세간, 인간과 천상의 경계마저 넘어버린 부설의 일족과 그 뒤를 이은 도인들이 없었다면, 이곳이 어찌 어둠 속의 인간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달빛(월명)이 될 것입니까.


20년 벙어리가 말문 열고 3생의 연으로 배필 맺어


지난 1999년 12월31일 새천년을 앞두고 '천년 낙조'를 보기 위해 험고를 마다하고 2천명이 올라와 밤을 샜다는 쌍선봉 아래 이 절터를 부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철산 스님이 그 부설의 생생한 삶을 전해주었습니다. 부설이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이곳까지 올라온 것은 1300여 년 전인 신라 신문왕 12년(692년)이었습니다.


부설은 애초 출가한 스님이었습니다. 경주에서 태어나 출가했던 그는 도반인 영조·영희 스님과 함께 장흥 천관산 등 남해와 지리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백제 땅인 만경평야를 지나는 중 독실한 불자였던 구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무원에겐 묘화라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꿈에 연꽃을 보고 잉태해 태어난 묘화는 선녀 같은 용모에 착한 마음씨와 절조까지 지녔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입 한번 벙긋하지 않던 묘화가 부설을 보자 말문이 트였습니다. 그러면서 부설 스님과 자신은 3생에 걸친 인연이 있으니 천생의 배필이라고 했습니다. 도반들과 맺은 언약을 깨기 어려웠던 부설이 걸망을 메고 집을 나서려 하자 묘화는 칼을 들고 서서 "만약 스님께서 문지방을 넘으면 이 자리에서 자살을 할 것"이라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구제함)을 하기 전에 눈앞의 나부터 구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묘화와의 인연 또한 거스를 수 없다고 여긴 부설은 두 도반에게 부디 도를 이뤄 자신을 가르쳐줄 것을 당부하면서 헤어졌습니다.


산으로 간 도반보다 뛰어난 득도…중생들 인연 얽혀서도 대자유


그렇게 15년이 지난 뒤 영조, 영희 스님이 오대산에서 불도를 닦고, 돌아왔을 때 마을 앞에서 놀고 있던 부설의 아들 등운을 만났습니다. 부설의 안부를 묻는 두 스님에게 등운은 "우리 아버지는 10년 넘게 앓고 있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두 도반이 왔다는 소리를 들은 부설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습니다. 철산 스님은 "부설은 평소엔 병자 시늉을 내고, 모두 잠든 밤에 일어나 수행 정진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다시 만난 세 도반은 도력을 겨루기 위해 도자기에 물을 담아 대들보에 걸어놓고 각자의 도자기를 쳤습니다. 그러자 영희와 영조의 도자기는 깨어져 물이 흘러버렸습니다. 그러나 부설의 도자기는 깨어졌지만 물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설이 게송을 읊었습니다.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나타나니

  뿌리와 티끌을 멀리 벗어버리고

  몸에 본성의 진상이

  삶과 죽음을 따라서

  옮겨 흐르는 것은

  병이 깨어져 부서지는 것과 같으며

  

  진성은 본래 신통하고 영묘하여

  밝음이 항상 머물러 잇는 것은

  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대들이 두루 높은 지식 있는 이를 찾아보았고

  오랫동안 총림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어찌하여 생과 멸을

  자비심으로 돌보고 보호하며

  진상을 삼고 환화를 공으로 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성을 지키지 못하는가.

  

  다가오는 업에

  자유가 없음을 증험하고자 하니

  상심이 평등한가

  평등하지 못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미 그러하지 못하니

  지난날의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자는

  경계는 어디로 갔다는 것이며

  함께 하라는 맹세는 아득히 멀구나.



철산 스님은 "모든 것이 오고가며 허망하게 무너지지만, 신령한 정신은 흩어 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설이 마지막 게송을 읊었습니다.


   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 귀로 듣는 바 없으니 시비 또한 사라지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시비도방하; 분별 시비는 모두 놓아 버리고)

  但看心彿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 다만 마음 부처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네)



이 때 하늘의 구름이 자욱이 퍼지고, 신선의 음악이 하늘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부설은 그 자리에서 일념으로 단정히 앉아 허물을 벗고는 열반에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향기가 바다 위에 떠다니고, 꽃비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영희와 영조가 부설을 화장하자 빗방울과 같은 신령스런 구슬들이 나왔는데, 도반들을 이 사리들을 수습해 남쪽 산기슭에 묻은 다음 부도를 세웠다고 합니다.


부설의 게송 가운데 지금까지 불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팔죽시(八竹詩)입니다. 봉래산 저 아래 구비 구비 골짜기마다 담긴 중생들의 인연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대자유를 누린 부설이 남긴 시구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했습니다.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낭타죽(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려니 그런대로 아세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장터에서 사고파는 것은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부설이 열반한 뒤 자녀인 등운과 월명은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 모든 반연과 분별을 넘어 생사를 뛰어넘어 해탈자재한 이는 부설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설의 부인 묘화는 110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환한 대낮에 바람과 구름으로 조화를 부려 비와 눈을 내리게 하는가 하면, 그 비와 눈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신묘한 도술을 부렸다고 전합니다.


또 아들 등운은 충청도 계룡산으로 가서 선풍을 드날려 '등운조사'로 알려졌고, 월명은 월명암에서 육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합니다.


하늘에 그린 동그라미, 물에 그린 동그라미, 땅에 그린 동그라미


이 월명암은 바로 부설의 딸 월명의 이름을 딴 곳입니다. 철산 스님은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가에서만 비전되어온 월명의 재미있는 일화를 전해주었습니다.


부설이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왔을 때 머슴도 따라왔던 모양입니다. 이 깊고 깊은 산골에서 젊은 여자를 구경할 수도 없었던 머슴은 월명이 성장해 아름다운 처녀가 되자 그를 못내 사모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늘 월명을 훔쳐보다가 월명이 혼자 있을 때면 다가가서 수작을 걸며 칭얼대곤 했던 모양입니다. 머슴에게 들볶이던 월명이 어느 날 오빠 등운에게 가서 상의를 했다고 합니다.


"머슴이 틈만 보이면 쫓아와서 자기 속사정을 좀 들어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등운이 "불쌍하지 않느냐"면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을 어찌 매정하게 거절만 하느냐"고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월명은 머슴에게 몸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등운이 "네 마음이 어떻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월명이 하늘에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허공에 그린 동그라미는 자취가 남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자 등운이 "그러면 됐다"고 안심했습니다.


한번 월명을 취한 머슴은 월명에 대한 구애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아주 노골적으로 살자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래도 월명이 대꾸하지 않자 "한번만, 한번만"하면서 따라붙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월명이 등운에게 가서 그 얘기를 하자, 등운은 "못 들어줄 게 뭐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월명은 다시 머슴에게 몸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등운이 월명에게 다시 "네 마음이 어떻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월명이 이번엔 물에다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물에 그린 동그라미는 잠시 파동을 그리다가 잠잠해집니다. 잠시 마음이 동요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등운은 "그러면 됐다"고 했습니다.


월명이 또 머슴에게 몸을 준 뒤 등운이 다시 물었을 때 월명은 이번엔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땅에 그린 동그라미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제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머슴과 보낸 색의 감각이 아로새겨지고, 머슴이 월명의 마음속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까지는 마장이 되지 못한 색이 이번엔 월명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세 번째 몸 내 주고 마음 흔들리자 머슴 아궁이에 밀어 넣어


그러자 등운은 월명에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머슴을 유인하라고 합니다. 월명이 유인하자 머슴은 아궁이로 다가왔고, 다시 월명에게 바짝 다가가 수작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등운이 뒤에서 머슴의 등을 발로 차 아궁이 속에 밀어 넣어버리고, 아궁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등운이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너와 나는 산사람을 화장시켜 죽여 버렸으니, 이대로 가다간 무간지옥에 떨어질 게 분명하다. 이제 죽기를 각오하고 수행 정진하지 않으면 무간지옥밖에 갈 곳이 없다."


바로 그 때부터 등운과 월명은 일체 눈을 붙이지 않고 수행 정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처절한 수행을 통해 무심삼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염라대왕 앞에 간 머슴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등운이가 산채로 나를 죽였다"고 이실직고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들에게 등운을 잡아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저승사자들이 등운을 잡으러 왔지만, 등운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등운이 무심삼매에 들어있어서 등운의 마음 한 자락도 붙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라고 했습니다. 죄의 본성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죄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뒤 등운 뿐 아니라 월명도 불도를 성취해 육신 그대로 승천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그 몸이 한갓 실오라기만한 무게도 지니지 않은 허공이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출가자인 부설을 주저앉혀 환속시켜서 자식을 낳게 한 묘화. 머슴과 살을 맞대며 운우지정을 나눈 그의 딸 월명. 그 모녀는 이렇듯 세속과 환락의 세상 속을 관통하면서도, 진흙속의 연꽃으로 개화했습니다. 세속의 욕망과 명리와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인에게 묘화는 '신묘한 꽃'이며, 월명은 '어둠 속의 달빛'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명리와 감각의 꿈에서 깨몽하게 하는 그 모녀의 삶이 법비가 되어 이 육신을 씻어주고, 취모검이 되어 분별과 망상을 베어버립니다.


그 미망을 떨쳐주기 위해 부설거사는 사부시(四浮詩)를 남겨놓았을까요. 이 시는 몇 년 전 입적한 청화스님께서도 늘 읊조리던 시구입니다.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 사랑하는 처자권속이 대숲처럼 빽빽이 둘러있고)

  금은옥백적여구(金銀玉帛積如坵· 진귀한 보배들이 산더미 같이 쌓였어도)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 죽을 땐 오직 홀로 외로운 넋만 돌아가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된 뜬 거품이로다)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 날이면 날마다 세상사에 골몰하고)

  작위재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 벼슬 겨우 높아지니 이미 머리는 하얗구나)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 염라대왕은 부귀영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된 뜬 거품이로다)

  

  금심수구풍뇌설(錦心繡ㅁ風雷舌· 아름다운 글재주와 혼을 빼는 말솜씨)

  천수시경만호후(千首詩經萬戶侯· 천편의 시경 재주, 만호후의 권력)

  증장다생인아본(增長多生人我本· 여러 생에 걸쳐 남보다 내 잘난 것만 더욱 키울 뿐)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된 뜬 거품이로다)

  

  가사설법여운우(假使說法如雲雨· 설령 설법이 뛰어나 구름과 비를 부르고)

  감득천화석점두(感得天花石點頭· 감히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게 하고 돌조차 머릴 끄덕여도)

  건혜미능면생사(乾慧未能免生死· 껍데기 지혜로는 생사고(生死苦)를 면치 못하리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된 뜬 거품이로다)




부안/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