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신’이라 믿는 이에게
『무엇이 우리를 불교인이되지 못하게 하는가』
종사르 잠양 켄쎄 지음 / 예지
기사등록일 [2008년 07월 15일 화요일]
혹시 붓다를 믿는 사람을 불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불교에 대해 꽤 큰 착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붓다의 입멸 후 유수처럼 흘러간 세월의 무게에 진리가 조금씩 왜곡되고 각 나라의 전통과 부딪치며 변형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찻잔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차의 맛이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삭발, 가사, 범종, 사찰, 채식주의, 비폭력, 평화, 명상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교적인 것들이 불교의 어느 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은 맞다. 그 자체가 불교는 아니다. 불교는 붓다를 믿는 것에도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나 행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붓다가 말하지 않았는가. 불교는 신앙의 차원을 넘어선 지혜의 세계에 그 존재의 근원이 있다고.
종사르 잠양 켄쎄 스님의 『무엇이 우리를 불교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가』는 역설적으로 “무엇이 사람을 불자로 만드는가 또는 어떤 사람을 참된 불자라고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부탄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잠양 켄쎄 왕포의 세 번째 환생으로 추앙받아 아시아 전역에 6개의 승원과 교육기관에서 1600여명을 승려들을 지도하고 있는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붓다를 불교의 ‘신’이라 잘못 알고 있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 불교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 한국, 일본, 부탄의 일부 사람들이 불교와 붓다에 대해 유심론적 접근을 하고 있음을 알고 나서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스님은 불자의 조건으로 사법인(四法印)을 말한다. 모든 합성된 것은 덧없다(諸行無常). 모든 감정은 고통이다(一切皆苦). 모든 것에는 본래의 실체가 없다(諸法無我). 열반은 개념을 초월한다.(涅槃寂靜) 붓다가 말한 이 네 가지 선언은 불자임을 증명하는 품질 보증서와 같다.
이 네 가지 견해가 우리의 동기와 행동을 결정하고, 우리를 붓다의 길로 인도한다. 도덕적이거나 혹은 금욕적이고 자비롭기 때문에 불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승복을 걸치지 않고 삭발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불자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합성된 것은 덧없고, 모든 감정은 고통이고, 모든 것에는 본래의 실체가 없으며 열반은 개념을 초월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가령 그 대상이 자비라고 할 때 자비라는 행위가 내생에 좋은 환생을 보장하거나, 또는 그것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평생 동안의 충성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불교와 거리가 멀다. 진정한 불자라면 세상이 무상(無相)과 무아(無我)임을 알기에, 집착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의 자비는 자연스런 일이다.
스님은 사법인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적인 사랑에서 문명 출현의 사건들까지 여러 가지 비유와 적절한 예를 동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붓다의 메시지가 고도로 문명화 된 오늘날에도 옛날과 다름없는 유효한 이론이며 진리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스님은 “진정한 불자는 사법인을 인생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불교의 형식적인 측면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스님의 글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풀어낸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는 “켄쎄 스님이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부처님의 네 가지 진리는 극심한 생존 경쟁의 세계에서 이기적인 인간의 되어버린 우리에게, 그 때문에 빚어지는 전쟁, 가난의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죽비소리”라고 상찬하고 있다. 10,800원.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출처 법보신문 957호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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