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노년에 대하여

slowdream 2008. 9. 19. 03:10

[고전에서 길 찾기]노년에 대하여
입력: 2008년 09월 16일 18:02:04
 
노인들은 쾌락이 근질거리는 것을 그리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 하나 노인들은 쾌락을 바라지도 않네. 그리고 바라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고통을 줄 수 없네. 이미 연로해진 소포클레스에게 어떤 사람이 아직도 성적 접촉을 즐기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이고 맙소사! 사납고 잔인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이제 나는 막 거기서 빠져나왔소이다”라고 적절하게 대답했다네. 그런 것들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 혐오스럽고 괴로운 일이 되겠지만, 그런 것들에 물리고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는 즐기는 편보다는 없는 편이 더 즐겁다네. 아쉽지 않은 사람은 결핍도 느끼지 못한다네. 그래서 아쉽지 않은 것이 더 즐거운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네.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역(戰役)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신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마음이 연구와 학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년보다 더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네. <키케로/노년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서 노년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두 가지인 듯하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일체의 능력을 상실한 ‘늙은이’거나 고집스럽고 탐욕스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옹고집쟁이’거나. 어느 쪽이든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존재이긴 매한가지다. 이런 노인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란 게 기껏해야 신경증적으로 주름을 감추거나 몸을 혹사시켜 ‘동안’과 ‘몸짱’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노년이 되어 젊음을 탐하고 젊은이의 육신을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노년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아닐까.

키케로가 말하는 노년이란 더이상 젊음의 열정을 탐하지 않기에 자유로운 시기요, 헛된 쾌락에서 벗어나 철학에 전념할 수 있는 새로운 호기(好期)다. 나이가 들수록 무능력하거나 탐욕스러워진다면, 그건 늙음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어리석음과 집착 때문이다.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며 집착과 미망을 놓아버리는 법을 훈련하는 이들에게는 늙어감이야말로 지복(至福)이다.

<채운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