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요가와 명상, 수행법

[스크랩] 나는 이렇게 마음자리에 도달했다.(2편)

slowdream 2008. 10. 4. 04:35




나는 이렇게 마음자리에 도달했다.(2편)
등록자명: 곽홍남 등록일자: 2007.05.16 조회수: 251


2부

95년경에 진제스님의 부정으로 남전참묘화두를 들라하니까 무의식중에 무자화두가 들리기에 또

우왕좌왕하다 화두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다.

다시 선어록과 옛날 선사들의 고군분투와 향기로운 삶을보니 기운이나서 무자화두를 다시 듦.

96년경에 무자화두를 들다 또 호흡이 끊기면서 깨달음을 맛보다, 헌데 환희심은 첨처럼 강렬하지

않음. 진제스님을 또 친견하자마자 대뜸 삼배도 않고 자리에 앉으니 사람이 예의를 차려야 한다면서

하시기에 이미 다 해 맞첬습니다.하니 그래 어디서 왔는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좀전에 보시지 않으셨

습니까?하니 어떻게 왔냐기에 신통으로 왔다하니 웃으시면서 보제선사 말이네 하시면서 남전참묘를

묻기에 진제스님에게 달려들어 고개를 확 옆으로 제끼니,송장이 왔네 하며 웃으시더라,그리고 다른

질문을 하시매 내가 주먹을 들어 보였고 또 다른 질문에 차수하고 옆에가 섰다. 스님왈 자 자리에

앉지 하며 다른 화두를 제시 하시길래 방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러자 "관"자 화두를 물어보시는중에

내가 스님의 입을 막으니 스님께서 끝까지 들어보라며 종이에 "빗장 관"한자를 쓰시면서 설명해

보란다. 그래서 내가 "빛 광"자를 애기하니 아니라고하고 이미 지나갔습니다. 하기도 하고 방바닥을

치고 "보"라 하기도 했지만 부정하시며 웃으시면서 낙처를 바로봐야지 하시더라 그래서 한동안

말없이 낙처라는 말에 말문이 막히자 진제 스님께서 웃으시면서 내가 하마터면 너 한테 속아서

인가 할뻔 했다. 아마 다른 스님들이라면 다 인가 했을꺼라면서 자신도 어려웠다. 하시면서

나의 가족사를 물으시다,자녀와 처가 있다하니 실망하신 빛이 역력하더라. 그러다가 중국의

방거사 처럼 살아가라고 공양하고 가라면서 문밖까지 배웅하시니 감격해마지않다. 그러나 그냥

관자에 막혀 그냥 비행기타고 돌아오다. 서울와서 전화로 진제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굴 의지해야

하냐고 하니 웃으시면서 내가 죽기전 열심히 공부해서 인가 받으라고 하시더라.

(기억하고 계신듯) 그 사이에 빛과 소리를 쫓으면 안됩니다. 이런 류의 통화는 있었다.

그 뒤로 집에 와서 관자화두를 들고 앉아 있으니 안목이 금방 열리면서 화두를 알게 되더라.

동네에 있는 장자못 공원을 산책하던중 깨달음 경지를 맛보면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면서 다시

환희심이 나더라 그래서 휴대폰으로 진제스님에게 "제가 지금 울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하니

전화상으로 관자를 물으시길래 제 마음입니다.하니 전화를 확 끊어버리더라.(기분 잡첬을것임.

-->좀 쓸만한 놈인가 했는데 답변이 빗났갔기에) 얼릉 집에 와서 해운정사에 전화하니 보살이

대신 말하기를 나하고는 인연이 없나보다 하시며 인천 용화사 송담스님을 찾아보라시더라.

그래서 좀 시간이 지난뒤에 송담스님을 친견하려 했더니 역시나 도저히 할 수 없겠더라.

해서 이제는 전화는 안받으시겠다고 해서 서신으로 새로운 견해가 생길때마다 무작정 보냈다.

(나중에 확인한바에 의하면 아마도 진제스님께선 보시도 못한 모양인듯 하다.)

이제는 진제스님 찾아가는게 무슨 행사 같은게 되버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풍족하지도 못한 삶에 시간과 교통비가(서울<-->부산)문제며 간다고 진제스님을 항상

친견하는것도 아니였다. 이당시 해운정사가 점점 큰 사찰로 변하고 있었다.(쩝 예전에 고인은

절 써가래하나 안건드리고 오로지 눈푸른 납자 만들기에 여렴이 없어야 한다 했는데.)

진제스님 친견하니 이제는 시자스님까지 생겼다. 기분도 꿀꿀하여 문도 그저 그렇고 답도 그저 그래

그냥돌아오다.(아마 피곤하신듯 보였다.)

다시 시간이 흘러(보통 시간이 여기선 2년 정도)친견하러가니 어느 부잣집 친견하느라 2층 어두운

곳에 황금가사 수하시고 높은데 앉아계시는 예전의 수수함과 거리가 있어보여 점점 실망감이 생기다.

시자스님이 나의 기세가 마치 스님에게 해꼬지 할것 같다며 친견을 거부하더라.해서 명일 여기서

자면서 친견하란다, 마침내 다음날도 친견치 못하고 글을 써주면 대신 드리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글로"비석이 땀을 흘리니 스님 춤이나 한차례 하시고 그만 두십시요. 오늘 두사람이 열반당에

들었습니다"하고 떠나다.

그 뒤로 진제스님께서 대구 동화사 조실을 겸하시길래 시자스님께 부탁해서 나의 견처를

시로 메일을 보내 스님께 보여드렸더니 한번 찾아 오라고 하더란다.

그 시가 생각나기에 대강 적어본다.

"보름달 뜬 야반 삼경에

석인이 돌배를 저어

산에 오를때 정오를 알리는

목탁소리에 사미의 입가에

군침이 돈다."

그 뒤 가장 최근(05년)에 친견하니 스님께서 어디서 왔느냐 하문하시는데 내가 방바닥을 두번

두둘기니 스님께서 쓸데없는 방두들리지 말라하고 다시 다른 질문에 역시 방바닥을 두둘겼다.

그러자 중국선사의 예를 들며 보검을 가저오라길래 내가 양구하니 스님께서 나 바뻐 한가하게

이럴시간 없어하며 화두를 오래들지 않아서 그런거라며 너 마음대로 할려면 오지 말라며 나무

라신다. 집에 돌아와 그간에 내 자신을 곰곰히 돌아보니 내가 무엇때문에 친견에 그리 집착

했었나 반성하게되더라,

그리곤 모든것을 놓아 버릴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몸이 허공 같아지며 호흡과 생각이

없어지더라. 그렇게 방하착 하니 그 동안 가슴속에 있던 시커먼 무명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화두가 다 풀리며 옛날 고인들의 말씀과 허물들을 죄다 알게되더라.

생도 사도 없고 오로지 한생각에 의해 몸을 받으니 한생각 함이 반야를 비방하여 본래 없는

업을 받는고로 깨달은 사람도 새삼 삼가고 삼가 해야 할 일이다.

법전 현 종정께서도 계수나무를 찍어내니 그 달의 광채가 더한다.함을 잊어서는 안될일이다.

여러분 불자님들이여 선이라 함은 마치 중생이 절벽에 위태하게 매달려 있기에 스스로 절벽을

오르는 행위인데 그중 간화선은 튼튼한 밧줄로 오름이며 비파사나나 지관수행은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는거와 같아 밧줄로 오르면 빨리 확실히 오르겠거니와 맨손으로 손으로 잡을곳 없는곳을

오르다보면 필경 오르지 못함을 아시고 본참화두를 꼭 가지고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깨닿고보면 화두는 사라지고 본래면목이 현전하여 본지풍광속에 자연 안주하여 저절로

온전한 수행없는 수행이 현전하리다. 그리하여 쉬고 쉬는것이 수행이 되다보면 옛 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태가 되오니 그날까지 물러남이 없이 깨달음을 기준삼아 화두를 뚫고 또 뚫어

가슴속을 남김없이 비우소서.. 그럼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여 인가 생각하는분들이 계실까하여..

예전에 암두스님이 불법사태를 만나 뱃사공을 하며 숨어지낸적이 있었는데 나룻터에 징을 걸고 강을

건너는 이가 징을 치면 배를 저어 기슭에 대며 춤을 한 차례 멋지게 했다 한다. 어느날

아기를 안은 중년의 아줌마가 배에 오르며 암두스님에게 춤추는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말하라 하니 암두스님이 삿대로 뱃전을 두번 두드렸다. 그러니 아줌마는 내가

일곱번째 만난 이 놈도 답변이 신통치가 않다며 아이를 강 중심에 던저 버렸다. 그 후 암두 스님은

뱃사공을 그만두었다. 어떻게 답변 했어야 아기를 살릴 수 있었을까?

진제스님은 평하길 사나운 두 도적이 만남이라고 하셨는데...내가 보기엔 암두스님이 일방적으로

깨진 상황이요. 역시 진제스님도 평이 신통치 못했다.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눈 밝은 이라면 내가

인가를 받아야 하는지 받지말아야 하는지를 알것이다.

혹여 이 내용 중에 승과 패,고와 저,시와 비가 분분히 일어날까보아 내 견해로 평을 달아본다.

평하자면 필경 "세찬 바람이 부니 풀이 한쪽으로 눕는다." 이 일대사 인연 도리를 아시겠는가?

견해의 가시를 조심하시요. 한마디 맞는 말이 만겁의 나귀 묶는 쇠말뚝이라오.



2007.6.19 새벽 눈을 떠보니 4시반 평소 안꾸던 꿈때문에 일찍 눈을 뜨다. 아직도 망상이 나오나 보다

여기며 베란다에 앉다. 평상시에도 호흡이 거의 사라져 잘 못 느끼지만 반가부좌로 앉으면 아예 호흡이

없는거 같다. 얼마동안 쭉 앉아 있었더니 눈이 감겨서 한동안 있다 눈을 떠보니 만법이 단지 식이라는

사실에 저절로 계합되더라.

만법이 단지 식일진데 무슨 보임과 성태를 길음이 필요하며 유위니 무위가 필요하겠는가.

불법이고 세법이고 간에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이 사실을 마지막으로 기록한다.



세상을 한 덩어리로 뭉쳐 때려부수니

하늘에 뜬 구름 만겁토록 한가롭게 떠가고

이를 쫓아 나온 고금에 만불 만조사가 오히려

이로인해 상신실명하니 우습구나 만불 만조사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후기>



예전 03,4년경에 진제 큰스님에게 견처 시(보름달 운운~~)와 문답을 보여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시자스님을 통해 칭찬하며 조금 더 공부하라고 점검하여 주셨는데, 이곳에 지금 상황의 문답을 공개

적으로 써봅니다.



나 : 삼배 올리고 자리에 앉다.

스님 : 어디서 왔느냐?

나 : 대선지식이라도 경계 침범함을 용서치 않겠습니다.

스님 : 투자의 보검은 가져왔느냐?

나 : 보검은 그만두고 보검값은 누구한테 치르시겠습니까?

스님 : 시자야! 여기 차 가져오너라!

나 : 스님 시자 기다릴것 없이 차 한잔 드시지요.하며 콕 찌르다.

스님 : 어허~~

나 : 나가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다.





진제 큰스님 법문중에 성철 큰스님께서 가장 어렵다는 3가지 공안을 죄다 평하여 공개하셨는데

암두밀게를

진제큰스님께서 평하시길 "한 망아지가 천하사람을 다 밟아 죽이니 임제는 백염적이 못된다" 하니

후렴을 저라면 "백주에 두 도적이 대로에서 자신들의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른다." 하겠습니다.



또한 영운선사의 도화오도송을 진제스님께서 "종사가의 휘호절이다." "노호가 앎을 허락하고

노호가 앎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셨는데, 저에게 답하라 한다면 "종이 호랑이를 던저놓으니 개는

모르는데 사람은 안다." 하겠습니다.



범어사 무차선법회 진제 큰스님 회향법회를 동영상으로보고 용성선사와 운봉선사 법거량을

평하실길..운봉선사와 진제스님의 자답 자평은 심히 지당하시나 용성선사의 법상을 내려가심을

평하시길 "부끄러운 빛이 얼굴에 가득하다." 함은 암두선사의 "일수대일수익"의 공안과 원오스님이

말씀하신 "발뒷끔치가 땅에 닿지않았다."는 공안에 부합되지 않겠습니까?



예전 백장선사와 황벽선사의 웅이산 버섯공안에서 마지막에 황벽선사가 밖으로 나간것과 삼성스님이

보수선사의 개당시에 보수선사가 지나갈때 한 납자를 보수선사에게 밀치자 보수선사가 그 납자를

후려치니 삼성스님이 보수선사에게 "그대가 그와 같이 법을 쓴다면 천하사람을 눈멀게하리라." 하자

보수선사가 주장자를 던지고 방장실로 돌아갔는데, 용성선사와 황벽선사,보수선사의 낙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질문은 아닙니다.





또 예전에 수덕사에서 고봉선사께서 법좌에 오르려하자 금오선사께서 장삼자락을 잡으며 한마디

하시고 오르시죠, 하자 고봉선사께서 장삼자락 놔라 하며 이처럼 세차례나 했다는데 젊은시절의

진제스님께서 이일을 미진하다고 하시며 그 당시 자신이 있었던들 "할"이라고 고함치신다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신 향곡선사께서 그 할이 부산사람들 눈멀게하리라, 하셨다는데 "할" 과

"장삼자락 놔라" 이 뜻이 같은가 틀린가? 그럼 종지에 가장 합당한 일구는 어떤것인가? 그 당시

향상의 대근기가 있었다면 금오선사를 확 밀쳤으리라. 그럼 향상의 금오선사라면 가만 있지는

않았으리라...또한 진제 큰스님과 향곡선사께서 서로 허물이라고 하고 끝을 맺었는데 이는 용두사미

꼴을 면치 못했다, 진제 큰스님께서 "저의 허물입니다" 했을때 무엇이 허물이냐고 한바탕 땀을 뺐다면

진제 큰스님께서 평생 쇠말뚝에 매이지는 않았을것이다. 이는 대매법상 스님과 방거사와의 법거량도

마찬가지였으니 참으로 황벽스님은 선지식중의 선지식이였다.


(이 구절은 되도록 안쓰려고 했는데 진제 큰스님의 최근 법문에 나온 말씀이고 07년 07월을 기해

큰스님께서 법문이 종전과 달라졌기로서니 확실히하기 위해 올립니다.)




진제 큰스님께서 자주 쓰시는 공안중 3가지가 있는데 예전 경봉노사에게도 여쭌적이 있는

1. 적양화 적양화

2. 지장머리는 희고 백장머리는 검다.

3. 말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다 나귀에게 받첬다.

이 3 공안을 한 꼬쟁이로 밝혀보겠다.

석양 무렵 광풍이 불어

천년의 오동나무 큰가지 꺾이니

깃들려던 봉황이 허공을 맴돌자

사냥 나온 독사가 그림자에

황급히 수풀로 몸을 숨길때

길을 재촉하는 점잖은 노승이

놀라 진창에 자빠지네.






모름지기 작용할땐 전체가 작용해야 하고 쉴땐 푸른못이 말라붙어 바닥이 드러나 용조차 서리지

못함이니 이것이 대기대용이고 가히 조사선이라 말합니다.



07.08.17 대학 다닐때 사놓고 한자가 많아서 읽지 못한 무문관 서책과 안국선원 사이트에 올라온

한글 벽암록을 보다. 느낌점을 몇자 적는다.

천박하기 이를때 없는 원오스님이 말글귀 하나 하나마다 토를 달아 논것을 보니 과연 그가 젊었을때

스승(오조법연)을 모욕하고 회상을 떠난 성품을 가히 짐작하겠다. 그가 이토록 천박하니 지금

이세상에 그 자손이 남아 있겠는가? 원오심요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무엇때문에 집안의 가추를 몽땅

드러냈을까?

그래서 현재 한국 선불교가 이토록 문자선에 떨어져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전부 그럴듯 한

말들이 죄다 벽암록과 무문관 책속에 다 있으니 법상에 올라 글귀 외우느라 귀신굴 한 살림 차린

줄 모르는데서야 누가 누굴 인가하고 법을 부촉할 수 있단말인가?

제방의 선객들이시여! 이젠 스스로 실참실오하고 아무에게도 법을 묻지 마시요.

내가보니 그대들의 날카로운 열정 조차도 무뎌질까 두렵소.



선객이라 함은 절대 자기 주머니 사정을 남에게 묻는것이 아니라 직접 자기 주머니 안을

살필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지금 그대들의 주머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지금 제방에서 선지식분들이 하는 법문을 보거나 오도송을 보면 대체적으로

혓뿌리를 끊는것을 능사로 삼는데 애초에 혓뿌리 없는 사람을 말하게 하는 도리가 있슴을

아직 모르거나 고인들 말씀에 몸에서 뽑아내는것은 오히려 쉽거니와 보는것에서 벗어남이

진정 어렵다고 한 이치를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이 이치가 바로 조사선이거늘

법거량 한답시고 얼굴을 맞주하고 수도없이 말을 주고 받으니 어디 발전이 있겠습니까?




전 우리나라 경허선사 이래로 현재 이르기까지 이미 열반에 드신분들이 결코 중국의 고인들

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때는 마치 전설속의 선승들이 현재에

우리들의 생생한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짜릿한 감마저 듭니다. 옛날의 선어록을

봐도 그분들도 서로 탁마의 연속이였고 후인들을 위해 기꺼이 기봉을 아끼지 않았고 그와중에

헛점을 노출시켜 공부꺼리를 제공하기도 해서 벽암록이니 무문관이니 어록이 나와서 후인들의

안목이 향상되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부인은 이미 고인이되신 분들의 자취를 자신들의 안목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할

지언정 욕보이는 행동은 아니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고인들의 안목이 부족하다면 부족한대로

후인들이 더욱 향상시키는 것이 고인들에 대한 예의이고 그나마 우리들에게 전수해준 불법에

대한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선의 맛을 가르쳐주신 정일 큰스님과 10년이 넘게

탁마 하도록 이끌어 주신 진제 큰스님께 머리를 풀어 삼배를 올립니다. 진정한 저의 큰 스승님이

셨습니다.





계율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계율은 깨달음의 현법으로 부처님의 행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아무리 깨달은 처사일지라도 승가 앞에 머리를 쪼아려야하며 법상에 올라서도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승가가 보존되어야 불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승가가 청정해야 중생의

귀의처가 될수 있습니다. 예전에 카토릭이 혼탁해젔을때 프란체스코라는 수도사에 의해

청정함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그건 교주의 행을 따랐기에 가능해진것입니다.

계율을 어김은 부처님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것이 불자이겠습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으로 막행막식은 어떠냐고. 전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머리는 쇠대가리냐? 방망이가 아니라 쇠뭉치로 치면 어쩔거냐고, 그럼 밥대신 똥을

매 끼니 마다 먹고 칼날위에서 잠을 잘것이냐고..깨달음은 본래 없는데 무슨일이 있어

특별한 생각을 내어 행하냐고.

그가 진정 깨달았다면 오히려 침묵속에 값진 노동만이 허용되고 더나아가 한법도 본바가

없어 욕구조차 없으니 그저 바보처럼 앞에 닥치는 일을 할뿐이라고, 이것이 도인이 인연따라

묵은 업을 녹이는 일이요, 그리고나서 힘이 남거든 세상속에 들어가 제도함이 없는

제도로써 중생을 놀래키지 않으며 바른길로 이끄는 이것이 불자가 해야할 일이고

칠불통게의 뜻이기도 합니다.




--http://www.buddhism.or.kr/_seon/ascetic/board.asp-간화선수행기에서-
























출처 : 禪 이야기
글쓴이 : 염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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