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마음자리에 도달했다. (1편)
등록자명: 곽홍남 등록일자: 2007.05.16 조회수: 197
이 글을 쓰매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이 다시 몸을 바꾸어 설사 불문에 들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제도하여 영원히 불종자를 보존함과 이 길을 걸어가는 다른 님들이 보다 힘들이지
않고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씁니다. 전 63년 2월생 가정이 있는 처사입니다.
내가 이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는바는 대부분 사람들이 마치 견성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나 또는
다만 전설상의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는것을 종종 접하게되서 제가 불가의 인연과정을 일인칭으로
허심탄회하게 자세히 쓰고자합니다. 예전부터 눈푸른 사람들은 알아서 스스로 걸어갔지만 나머지
문자나 명성을 사랑하는이들에 의해 왜곡되고 매몰된것이 석존이후로 지속되어 온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글자는 보지말고 그 뜻을 알아 가지시기 바라면서 서두를 마칩니다.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난 이미 오래전에 불가 사람인것을 알 수 있었다. 국민학교도 들어
가기전 그러니까 7살도 안된시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깨달음의 경계를 무의식중에 수용하고
있었다.(모든 현상이 허상과 같고 생각이라는것이 도무지 걸리지 않은 상태) 가끔씩 천정을
바라보면서 누워있으면 어른들이 무슨 생각하냐 묻곤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빵"이요 하니 빵
생각만 한다고 놀리곤 했는데 난 단지 어른들 질문이 귀찮아서 빵이라고 답한것이였다.
훗날 수행할때 어린시절의 그 편안한 경계를 떠올리고 수행해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선악을 구분 할 나이가 되서 모친께서 나에 대한 태몽을 말해 주시는데 첨 꿈은 산에서 한 산신령
같은 도인이 동자 하나를 데리고 나와 잘 키우라는 부탁을 남기고 사라진 꿈이였고 두번째 꿈은
밤 하늘이 갈라지면서 집채만한 커다란 푸른 코끼리가 온몸에 커다란 별을 주렁주렁 달고 떨어지
는데 사람들이 서로 받으려고 아웅성중에 모친께서 무서워서 도망가는데 그것이 치마폭에 떨어지
더라는겁니다. 그래서 외할머니랑 둘이서 상에 올려놓고 단에 모셨는데 그 코끼리를 자세히 들여
다보니 코끼리가 잠을 자는듯 눈을 감고 있더라는" 거 였습니다. 집에서 모친이 해산을 하였는데
해산의 고통으로 잠시 모친이 기절하였는데 갑자기 집이 환해저서 불이 난줄 알고 아기 생각에
눈을 떠보니 꿈도 아니였는데 희안하게 막 태어난 아기 머리밭에 팔뚝만한 커다란 초가 양쪽에
두개가 활활 타오르더라는 거였습니다. 그 불빛이 너무 밝아서 불이 난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기 탯줄을 양 어깨로부터 X(엑스자)로 매고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모친께서는 여기에도
무슨 의미를 부여하시더만요. 뭐 그런 아기는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저도 안죽는다나? 흐흐...)
하마트면 길이나 배,기차간에서 태어날뻔 했거든요. (모친의 인생역경이 고난하다보니..) 자세히
쓰다보니 살아 계실때 재차 고증을 듣고....(쓸데없는 것인가?)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불교를 무지 좋아하게되었는데 제가 어렸을 당시 모친이 신들렸
다고 온갖 종교를 다 믿게되면서 집안이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속상한 나날
들이였는데, 전 꿈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았는데 생각으로 과학자니 의사니 대통령이니 더 나아
가 신까지 되어 보았으나 결국은 다 부질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그때 당시 거지가 많았
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더군요. 그래서 거지나 미치광이처럼 사는게 제일 맘 편히 살겠더라는 생각이
굳어져 버렸습니다.(그러다보니 현재 무직이 되버렸슴. 직장을 대기업으로만 무려 4군데 다녔슴.)
본격적으로 불교공부를 하게된것이 대학교1학년 19살에 중이 되겠다고 가출(수덕사에 1주일 동안
공양간에서 허드렛일 함)했는데 그당시 그냥 서울하고 가장 가까워서 그리 가출했는데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더니 한참후 큰스님께서 부르신다며 나를 데리고 주지실로 가더라 가보니 나이드신 큰스님
몇분이 왜 중이되려고하느냐고 물으시길래 "고승이 되려고요" 하자 아무 말없이 알았다고 내보내더라.
헌데 객방에 돌아오니 젊은 납자 3명이 박수치면서 대답 잘했다고 좋아하더라. 아마 중되는 것도
허락이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 당시 큰스님 한분은 알아보겠는데 특히 나를 신경써주신 발을 저는 젊은 스님은 기억이 안나지만
공양간에서 3일째 일하는데 이리역 폭발사건이 있었고 그 몇일뒤에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셨는데,
그 다리를 저는 스님이 특별히 동산양개스님의 예를 들며 윗 암자로 도망가라고해서 저녁에 윗 암자
로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묶고 아침에 순순히 부모님을 모시고 산을 내려 갔다. 그 뒤로
수 년간 이절 저절 명찰로 도망 다녀 보았는데 수덕사는 가히 덕스러워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30대
때 출가한다고 한번 더 갔었는데 안 받드라.)27살때 월정사에서는 나같은 사람은 인자한 사람이라야
출가할 수 있다고 강화도 정수사로 보내는 세심함이 있었다. 송광사는 꼬장꼬장하달까 좀 인색한
느낌을 받았고 범어사는 밤중이라고 아침에 오라며 물리치더라.
하여간 부모님께 붙잡혀 (자의반 타의반 거의 자의^^)와서 학사경고 받고 도서관에서 대학내내 책과
시름 했는데 그게 다 고전과 불교서적(팔만대장경전집)을 탐독하면서 말문이 열리면서 스스로 잘난맛에
자칭 종교가(목사,카토릭주일교사)들 꺾는 맛에 세월을 주구장창 보내더중 꼭 봄만되면 가출병이 도져
명문사찰로 도망 다니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운서주굉서 광덕스님역 (선관책진)을
보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81년 구입)이때 서울시내 제일 큰서점인 종로서적과 동아서적에 매일 출근
하다시피 하면서 서점에 나와 있는 온갖 불교서적을 보다가 수행 안내 지침서 같기에 맘에 끌려 사다
보았는데,(지금도 가끔씩 봄.너덜너덜 해질정도)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맘을 먹고 그대로 따라서
해보는데, 화두 결정부터 안되는거였다.
(부모미생전,이뭣고,무자 이 3가지 놓고 우왕좌왕 했슴.)그러다 어렸을때 봤던 청담스님저의 "마음"
이라는 책에 화두드는 방법이 생각나고(첨엔 주작화두"외워서하는 화두") 무문관저서(무문혜개스님저)
제1칙이 무자공안이기에 무자가 가장 사람들이 많이 깨닫고 글자도 한자라서 집중하기에 용이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공안인데 이것을 못 뚫으면 딴건 못한다는 생각으로 무자화두로 결정하고
마침 선관책진안에 태고보우선사님께서도 한번 잡은 화두를 버리지 말라하시는 거에 힘을 내어 무자
화두로 정하고 본격적인 주작화두에 몰입하기 시작 했다. 24시간 잠안자면 온전히 생활중에 항상
무자화두를 들었다. 앉아서 결가부좌의 고통보다 오히려 걸어다니거나 생활중에 화두 챙기기가 더
편했던거 같다. 앉아서는 결가부좌에 10분 넘기기가 힘들었다.
군에 가서도 휴식시간에 내무반에서 결가부좌로 참선하니까 내무반장(생각있는 사람인듯)이 좋은
거라며 다른 사명들에게도 시키기도 하더라.
군 제대후 대학 복학후에도 여전히 화두와 씨름 또는 출가병은 여전했다. 그와중에도 대학 도서관과
집(자취,기숙사)이외는 최대한 단순화하면서 선관책진의 방법대로 화두를 눈으로 보려는듯 항상
의정을 불러일으켰다. 참선하기전에 마치 온갖 종교를 아는듯 남 꺾기를 즐기던 마음이 선관책진을
보면서 내 자신의 수준이 너무 하찮다는 것을 느끼고 그 전에 알던 얄팍한 종교지식들이 다 사라
지더라. 대학 졸업 후에도 편함없는 생활이였으나 또 그놈의 출가병때문에 첫 직장을 삭발하고 삿갓
쓰고 다니는 해괴한 짓을 하다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고 이렇게 공부가 끊기면 세월만 쓸데없이 보내
겠다 싶어 오냐 한번 죽기로 화두와 본격적으로 싸워보자, 결심하고 두문불출하고 잠도 최대한 줄이
면서 화두와 시름하던차에 불과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화두가 심상치가 않더라(이미 그때는 주작화두
단계가 넘어있슴.)화두가 끊임이 없게끔 애쓰다보니 화두가 점점 빨라지는것이였다.(선관책진안에
어느 제자가 철벽을 만나면 어찌해야합니까"물음에 스승께서 빨리 달려야 하느니라"-->이것이
화두에 의정을 실어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뇌이면 의정에 힘이 붙어서 이 단계가 옴)
이때 온몸에 땀이 비오듯하고 손바닥과 발바닥이 땀띠가 나서 온몸이 반점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면서 왠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지는지 그때는 몸이 경련하지도 않고(긴장하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가보다 의식하면 떨림 --->어느 무지한 선학단체에서 사람들을 현혹하죠.)오직 화두만이 현전하고
잠중에도 현전하더라. 그러다가 방바닥이 갑자기 벌떡일어나는 것과 같고 눈알이 방바닥에 딱하니
달라붙은듯이 보여 놀라 일어나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곳이 조계사 였는데 어느 스님에게 물으니 자신은 모르겠으니 정일스님을 찾아보라
해서 우이동 보광사에 주석하신다는 정일스님을 담날 바로 찾아가서 자초지종 이야기하니 웃으시며
(마치 친근한 할아버지 같았슴)화두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란다.
바로 돌아와서 죽을 힘을 다해 화두를 밀어내니 화두가 뜷리더라 그날이 91년 1월1일 밤12시 정도
인것 같았는데 온세상이 화두상태에서 뚫고나오니 다시 방바닥이 제대로 보이면서 갑자기 숨이 끊기
면서 온몸이 뜬 구름처럼 있는것 같지 않고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니 온통 허상이고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그 환희심과 기분이 마치 내가 바로 신이 되어서 온갖 맘대로 할것 같고 하늘을 날것
같았다. 환희심과 열락에 눈이 안감겨서 밤을 꼬박 새는데 걸어도 걷는거 같지 않아서 전혀 피곤함을
모르겠더라 해서 새벽 첫 버스에 몸을 싣고 우이동 정일스님을 찾아갔는데 사방에 눈이 쌓였슴이
신기하게도 느껴지더라.정일스님을 보자마자 스스로 미친사람이 된모냥 (난 스스로 남앞에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성격임.)이제까지의 내가 아니더라. 문답중에 오줌이 마렵다며 뛰처나가서 들어갈라니
정일스님이 문을 닫아버리더라.(속으로 코웃음치며 이미 안다는듯이 "불이야"외치려다 훙분이 급격히
가라앉아 그냥 돌아오다.) 그 뒤로 몇일뒤에 찾아 친견치 못하고 어느 스님의 벼락같은 질문에
"너의 콧구멍"이다며 보이는데로 외치니 그 스님이 얼굴이 벌개 물러가다. 한 처사가 다가와서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오라며 권하여 돌아오다.(흥분상태가 몇일간것 같다.)
그 상태로 93년 경에 정일스님을 다시뵙고(이때 선관책진과 마조 임제록은 쉽다 여겨서 벽암록을
보는데 한자가 많아 모르겠고 우연히 선관책진 내용중에 청원행사스님과 석두스님의 처음 조우시에
물 사발에 바늘 한개를 떨구는 장면에 의심을 품게됬슴--->이건 말도 아니고 행동이라서 도무지
모르겠더라.)깨달음을 인증받는 와중에 판치생모화두를 물으시길래 머리에 머리를 얹지말라며
답변하자 다른 화두를 제시 하길래 같은 답변을 드리면서 깨달은 과정을 말씀드리니 바로 인정하시
더라 그래서 그 당시 일붕스님이 좀 유명해서 그 스님이 어떤분이냐며 질문하니 스님 왈 "그 놈은
중도 아니다."하시며 그 때 한참 유행했던 라즈니쉬를 물어보시길래 그 양반 이야기가 다 맞다고
하니 수긍하시더라. 그리고 이제 다른사람의 판단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면서 칭찬
하시자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게 인가냐고 묻자 정일스님께서 맞다 넌 이제 우주인이야하시면서
편양선사(이때 소설 편양선사"양치는 선사" 책이 나와있었슴.이미 읽었던터라.)처럼 항상 오후수행
(행주좌와 시장이든 어디서든 화두를 챙기다.)하라하시더라. 그래서 석두스님의 사발에 바늘을
떨어뜨린일을 묻자 정일스님 왈 "다른 사람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 하시고 마침 점심공양
이기에 시자스님이 밥상을 겸상으로 차려올까요? 질문에 정일스님 공양하고 가라시길래 물러나와
공양간에서 밥먹는데 의기양양해지더라 밥먹는데 공양간 보살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북 정일
남 근일"이라며 스님들중 최고란다.
정일스님과 대화중에 나에게 출가하면 큰스님이 될수 있는데 출가 할 생각 없냐고 물으셨는데,
스님들의 수행방법과 단체생활이 나에게 안 맞는것 같아 그냥 물러나와 한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에 들어앉은 시꺼먼 것이 의문이 갔다.(이게 무엇인지--->이제 발명
하여 무명을 만난것임.)
이때 하이텔통신하면서 자신만만하였는데 마음속에 자리한 시커먼 정체와 언어의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법신경계가지고는 해결치 못함.)
그 당시 현재 통도사 극락선원의 원장스님 조카라는 어는 중년 보살도 인가받았다고하여 그 보살에게
언어에 대해 물어보니 언어가 생기전 상태는 어떻했냐며 되물어 보길래 웃으면서 알았다고 넘어
갔지만 시커먼 마음은 알지 못하더라.(향엄스님의 나무가지를 입에 물고 매달린 화두를 알고 있기에)
통신하시던 스님이 우리나라에서 남 진제 북 송담이니 찾아가 보라서 인천 용화사를 찾았지만
우리같은 속인은 친견할 차례가 되지도 않더라.
95년 경에 드디어 진제스님을 친견 하였는데 남전참묘를 물으시길래 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하니
"너가 망상이 아직 있구나"하시길래 정일스님 이야기를 하니 그놈 지놈도 구제하지 못한놈이 누굴
인가하냐면서 대뜸 부정하시더라 .(1편 여기까지 입니다. 너무 길어서 2편은 나중에)
위 내용중에 호흡 끊긺이 발생하는데 저 같은 경우(저의 동생은 단전호흡 한답시고 의식을 단전에
두니 배가 팽창되면서 아퍼하다 중도 포기 함.)오직 화두에 의정을 실어 마치 눈으로 보려는 듯
눈앞 1미터 정도에 붙들어두니 따로이 호흡법 없이 수월히 해 나갈 수 있었는데 의정이 크면 클수록
배가 홀쭉해지면서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듯이 내 뱉는 호흡만 강해지는데 명치쪽으로 올라 붙어
마치 요가 수행자의 뱃가죽이 홀쭉한 모양처럼 무의식중에 됩디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 뱃속에 있는
덩어리 같은것이 넘어간다고 표현해야 하나(?) 숨이 턱하니 꽉 막히다 밑이 빠진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듯한 현상을 겪게되는데 이 과정들이 전혀 의식없이 이루어진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나중에 2번째에서는 배만 가볍게 안으로 올라 붙고 3번째부터는 그냥 변화없이 보고만 있어도 호흡이
사라지더이다. 현재는 생활중에도 호흡이 거의 사라지고 호흡이 사라지니 말도 절로 줄고 잘땐 꿈도
없어 적멸 그 자체에서 잠에서 일어날쯤에 절로 잠에서 일어나게 되더이다.
왜 이 내용을 이제사 올리냐면 호흡법만을 강조하다 보니 깨달음은 뒷전으로 밀려나는듯한 인상을
줄까하여 조심스런 마음에 주저하였으나 내 글을 보는 이는 최소한 불 보살의 가피가 있어 비방이나
의혹이 없이 오직 본참화두를 들고 바른 믿음으로 바른 의정을 불러 일으키리라 믿기에 추가로 올립
니다.
여담으로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흘려들어도 될듯해서 몇자 끄적여 봅니다.
위에 모친이야기를 했는데 모친이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젊은 청춘을 다보내시고 약으로 연명하시다가
뜨개질로 소일삼아 하염없이 뜨개질만 하시다가 경안을 얻었고, 그 뒤로 아주 건강해 지셨는데
최근 2007년 7월초에 소파에 우뚝허니 앉아 있다가 당신이 말하시길 내가 무아지경에 들었나보다
하시는데 특이해서 공책에다 기록해놔서 나중에 당신이 죽으면 저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평소 내가 한말이 이제서야 이런거로구나 하면서 이해가 된다고 하더군요. 불교는 아주 모르시고
배움도 적어서 표현도 못하실줄 알았는데 무아지경이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장하십니다,
"이제 도의 문에 첫걸음을 딛으셨습니다" . 마음을 쉬고 또 쉬쉽시요, 몸과 마음을 다 내려
놓으십시요. 저 돌맹이와 나무토막이나 쇠붙이 처럼 모든 분별을 다 내려 놓다보면 그 같은 체험을
몇번 더 하면서 깨달음도 깊어 진다고 말씀드렸더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받아 드리시더군요.
전에는 아들이 도 닦는다고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닌가 하셨다는군요. 하하 그래도 나름대로 믿으시는
종교가 있으셔서 종종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는데 그것이 웬만한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신비주의
에는 사람들이 혹 하잖아요. 그래서 꿈을 통하여 이야기를 서로 교환하며 공감대를 만들곤 했죠.
제가 첫번째 깨달은 후 몇일부터 구름과 별이 한개도 없는 시원한 밤 하늘 꿈이나 시꺼먼 파도가
용솟음 치는 바닷가 근처에 암자 비슷한것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와서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절벽
가장자리에 황금 가사를 입고 서 있자니 험준한 파도 속에서 용 5마리가 황룡,청룡 그런 용이
솟아오르며 날 태우고 승천하는데 난생 첨으로 그렇게 세밀하게 용꿈 꾼적은 첨있는 일이라.
모친에게 이야기 했는데 귀 기울여 들으시더군요.(그 당시 모친이 좀 신기가 있으셨거든요.)
그 뒤로 모친이 꿈을 꾸시는데 제가 반쯤 둔 빛나는 황금 바둑판을 앞에 두고 어떤 틀안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게 제가 초견성하고 나서 내심 의심이 다 안풀린 것에
고민한 모습을 보셨던거 같더군요. 그러면서 너가 공부 좀 하는것 같은데 아마 멀은거 같다고 일침을
놓으셨어요. 제가 두번째 깨달았을때 이야기를 안했는데 어머니께서 방문하셔서 꿈을 꾸는데 제가
바다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데 바닷물 바로 밑이 황금으로 물이 찰랑찰랑 거리면서 쫙 깔려
있더라면서 모친에게 제가 미소지으며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냐며 묻더라는 거래요.
보름달 운운하며 오도송 읆을때는 제 모습은 안보이고 제가 있는 곳에 첨 보았는데 풀 한포기 없는
신기한 기암 바위산이 하늘까지 닿아 있는데 그 바위산 기슭아래에 사람들이 일반마을 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더라는거에요. 그러면서 너 공부가 이제 하늘까지 닿은 모양이다 하시더군요. 그 뒤로 제가
애기하면 그남아 귀담아 들으시더군요.
제가 모친 꿈이야기에 그런대로 신뢰하는 것은 모친이 가끔 예지몽이나 이런 것을 종종 꾸셨거든요.
재밌죠? 아마 사람들은 다 인연처로 태어나나 봅니다.
참! 예전에 탄허스님 속가제자라는 분이 역학책을 발간한적이 있어 학창시절 본적이 있는데
이제까지의 사주학하고는 틀리게 저의 사주를 용골로(모친도 용골) 구분하고 40대 초반에 열반에
든다고 나와 있어서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싶었는데, 결과야 어쨌든 맞으니 역시 깨달음이라는
것도 다 인연의 굴레을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석가세존 역시 빨리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빨리 깨닫게하고 늦게 깨닫고자 하는 자는 늦게 깨닫는
문을 열어 놓으셨다고 하셨으니 이 말은 다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니 뭐 급할것이 있겠습니까?
저도 버려진 지장 암벽화 근처를 청소하고 앞에 초와 향을 갖혀놓고 원을 세우길 단박에 모든것을
알기를 원치 않고 낱낱이 스스로 힘을 얻어가며 알게되기를 바라옵니다.하니 1년만에 과연 첫번째
깨달음이 있었다. 그전엔 막연하고 포기하고픈 맘도 생겼지만 첨 경험후엔 부쩍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설사 알았다 해도 고인들이 베풀어논 공안들을 알지 못하거나 (억지로
생각으로 꿰 맞추거나 그런거려니 한다면 그는 불자도 아니다.)자유자재로 쓸수 없다면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수행도 현재 간화선, 염불선, 사마타, 비파사나, 지관등이 있으나 제가 겪어보니 모든 수행이
다 지관으로 총섭될 수 있는데 지를 닦고자하면 사마타 호흡법이 으뜸이고 관을 닦고자 한다면
비파사나가 으뜸이나 이 둘을 동시에 닦을 수 있는것이 바로 간화선인데 간화선의 문제가 바로
공을 들여가며 공부하는 것이라 중도 포기가 많고 집중 또한 용이한것이 아니다.
황벽선사와 배휴의 문답서 전심법요와 완능록을 보면 법이란 수행이 필요치 않으나 분별망상이
끊임이 없는고로 분별망상을 쉬게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수행이 나왔으니 그것이 간화선이다.
화두삼매가 바로 현성공안과 같고 화두로써 분별을 제하니 화두가 취모검이라면 현성공안도
바로 취모검이라 불법이 알고보면 법이라 할만한것이 없으니 수행이 필요치 않고 마치 그저깨
꾼 꿈을 수행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 집착할 것이 없으니 자연 잊혀지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수행이 다 한곳으로 돌아가니 다 스스로 편한곳으로 돌아가면 무슨 다툼이 있겠는가?
빨리 견성하려는자 빨리 견성하고 늧게되고자 하는자 늦게되면 될뿐 빨리 이뤄서 무얼 하려는가?
진리의 곳간에는 허다한 수행방법과 선정 정진이 있는것이 아니라 오직 바른 안목을 요구 할
뿐이니 꿈속에서 온갖 신통과 수행정진을 자랑 한들 어디에 쓸것인가? 단지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뿐 사람들을 온갖 풀밭으로 이끌고 그것도 모자라 노예로 만들어 버리니 참 한심할
노릇이다.
--http://www.buddhism.or.kr/_seon/ascetic/board.asp-간화선수행기에서-
출처 : 禪 이야기
글쓴이 : 염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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