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식인 제8식에 의지하여 / 전5식은 인연을 따라서 나타난다 / 혹은 함께 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 마치 물결의 파문이 물에 의지함과 같다(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或俱或不俱 如濤波依水)
이것은 제15송이다. 제10송에서 제14송은 앞 송에서 언급한, 제육식에 상응하는 마음현상의 6가지 범주 총51개를 열거한다. 제10송은 보편적 마음현상과 특별한 마음현상 10가지를, 제11송은 착한 마음현상 11개, 제12송과 제13송은 근본적인 번뇌의 마음현상 6개와 뒤따르는 번뇌의 마음현상 20개, 제14송은 선악을 결정할 수 없는 마음현상 4개를 하나씩 열거한다.
위의 제1구에서 ‘근본식(根本識)’이란 아뢰야식을 말한다. 제7식을 비롯한 6식이 모두 제8식을 의지하여 활성화가 되는 까닭이다. 반면에 근본식에 의지하는 모든 의식을 ‘전식(轉識)’이라 한다. 이것은 제8식에 의지하여 전변하는 까닭이다. 제2구인 ‘전오식은 인연을 따라서 나타난다’는 것은 항상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인연되는 대상에 따라서 발생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를테면 눈은 색깔을 대상으로 하고 귀는 소리를 대상으로 한다. 대상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제3구에서 ‘함께 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라는 구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하나는 전5식과 관련한 해석으로 대상에 따라서 함께 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눈과 귀가 동시에 작동된다면, 함께 하는 것이요, 각각 대상에 따라서 분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제8식과 관련된 해석이다. 대상을 인식할 때, 제8식의 경험정보가 전5식의 인식에 함께 작용하기도 하고 혹은 양자가 서로 분리되어 작용할 때도 있다고 이해할 수가 있다. 함께 작동될 경우는 과거의 경험내용이 현재에 영향력을 계속적으로 행사하는 경우라면, 분리되어 작용할 때는 대상의 인식이 현재에 국한 될 경우이다. 전자는 심층적인 제8식의 작용이요, 후자는 표층적인 전식의 작용이다.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인과적 관계를 가지면서 순환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이것은 마치 물과 그 파랑처럼, 파랑은 물을 떠날 수가 없고, 물은 파랑으로 현현된 것,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전5식은 인연에 따라서 간헐적으로 작용하지만, 제6식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표상을 포함한 까닭에 항상 작용한다. 이들은 모두 그 대상이 거칠고 표층적인 수준에서 일어난다. 반면에 제7식과 제8식의 대상은 관찰하기 어려운 미세하고 심층적인 수준에서 발생된다. 또한 이들은 어떤 방해를 받지 않고 인연의 계기가 되면 그 작동이 활성화되어 표층수준의 활동을 일시에 혹은 점진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다.
전5식은 외적인 대상에 대해서 현재의 국면에 한에서 작동하면서 언어적인 활동이 아니며, 다른 요인에 의해서 그 작용이 방해를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제16게송(六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絶)에 의거하면, 제6식은 언어적인 활동을 포함하며, 내적ㆍ외적인 대상에 모두 작동된다. 제6식은 무상천, 무상정, 멸진정, 수면과 민절 5가지의 상태에서는 그 작용이 멈춘다.
무상천(無想天)은 명상수행에 의해서 모든 사유가 끊어진 수행자가 태어나는 세계를 말한다. 제6식에 의해서 발생되는 언어적인 사유작용이 멈추어진 수준인 까닭에 여기서는 제6식이 작동되지 않는다. 무상정(無想定)은 이것은 모든 사유작용이 멈춘 제3선정을 말한다. 제2선정에서 언어적인 작용이 사라지는 성스런 침묵을 경험하고 제3선정에서 진정한 마음과 마음현상이 모두 그치고 정화되는 까닭이다. 멸진정(滅盡定)은 배움이 끝나는 무학의 경지로서 모든 탐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이다. 한편 깊은 수면상태(睡眠)나 극단적으로 피로한 상태(悶絶)에서도 역시 제6식은 작용하지 않는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71호 [2008년 10월 28일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