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
만약 사람이 오직 지(止)만을 닦으면 곧 마음이 가라앉거나 혹은 게으름을 일으켜 여러 선을 즐기지 않고 대비를 멀리 여의게 되니, 이러므로 관(觀)을 닦는 것이다. 관을 닦아 익히는 이는 마땅히 모든 세간의 유위법이 오래 머무름이 없이 잠깐 동안에 변하여 없어지면, 모든 마음의 작용이 생각생각마다 생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고(苦)인 줄 알아야 하며, 과거에 생각한 모든 법이 어슴프레 하여 꿈과 같은 줄 알아야 하며, 현재 생각하는 모든 법이 번개와 같은 줄 알아야 하며, 미래에 생각할 모든 법이 마치 구름과 같아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세간의 모든 몸뚱이가 모두 다 깨끗하지 못하고 갖가지로 더러워서 하나도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행하거나 머물거나 눕거나 일어나거나 어느 때든지 모두 止觀을 함께 행해야 할 것이니, 소위 비록 모든 법의 자성이 나지 않음을 생각하나 또한 곧 인연으로 화합한 선악의 업과 고락 등의 과보가 빠뜨려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음을 생각하며, 비록 인연의 선악의 업보를 생각하나 또한 곧 본성은 얻을 수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止를 닦으면 범부가 세간에 주착(住着)함을 대치하고 이승의 겁약한 소견을 버릴 수 있으며, 만일 觀을 닦으면 이승이 대비를 일으키지 아니하는 협렬심의 허물을 대치하고, 범부가 선근을 닦지 않음을 멀리 여읜다.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이 지관 이 문(二門)은 함께 같이 조성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지관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곧 보리에 들어갈 수 있는 방도가 없을 것이다.
疏
‘비록 모든 법의 자성이 나지 않음을 생각하나’라고 한 것은 비유문(非有門)에 의하여 止行을 닦는 것이요, ‘또한 곧 업과가 어긋나지 않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비무문(非無門)에 의하여 觀行을 닦는 것이다. 이는 실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법을 건립함을 따르기 때문에 지행을 버리지 않고 관행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니, 진실로 법이 비록 有가 아니지만 無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에 ‘비록 선악의 업보를 생각하나 곧 본성은 얻을 수 없음을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이것이 가명(假名)을 파괴하지 않은 채로 실상을 말함을 따르기 때문에 관행을 그만두지 않고 止門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그 법이 비록 없지 않으나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와 관의 두 가지 수행이 원래 반드시 같이 이루어져야 함은 새의 양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이니, 두 바퀴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곧 실어나르는 공능이 없을 것이고, 한 날개라도 없다면 어찌 허공을 나는 힘이 있겠는가?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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