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이상향을 찾아 끊임없이 대립·갈등
佛法 철학적 해석으로 현실의 불국토 제시
앞으로 법보신문에 선가(禪家)의 3대 조사인 중국 수나라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을 철학적으로 해석해 연재할 것이다. 이미 출판사 장경각에서 성철 큰스님의 표준 번역과 쉬운 해설이 나와 있는데, 다시 덧칠을 하는 것이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생산하는 것 같으리라. 이 글은 성철 큰스님의 번역을 그대로 따른다. 필자의 몫은 세속의 학문인 철학의 차원에서 승찬 대사가 우리의 마음에 새겨준 부처님의 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터득해야할 것인가를 세상에 밝혀 대중들의 공명을 얻어 보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이 동서융합시대에 인류의 지남(指南)으로 생활화되어 불국토가 막연한 인류의 관념적 이상으로 투사되지 않고, 생각이 바로 현실적 행동으로 이루지는 마음의 혁명이 창도되기를 희망하려는 데에 있다.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현실과 이상의 대결로서 늘 대립되어 왔었다. 현실은 돈 냄새와 소유적 욕심으로 지배되어온 세상인데, 이상은 고결하고 고상하여 현실에 늘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의 피안을 그리워하는 이상주의자가 마땅히 가야할 그러한 곳으로 표상되어 왔었다. 그래서 의식이 있는 불자들은 은연중에 이상주의적 시각의 길을 가려했고, 속물적 세상을 개혁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왔었다. 우리나라에 주자학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평등한 신질서를 갈구하던 구한말의 지자들은 그 당시에 불어오던 사회주의의 혁명의 북풍에 큰 희망을 걸어 왔었다. 이것은 한국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적 구질서의 소유주의에 식상해 하던 전 세계적 지성들도 소비에트적 집단공산주의에 미래인류의 희망을 보려고 했다. 한 때에 서구의 철학적 지성을 대표하던 20세기 프랑스의 싸르트르(Sartre)가 반물신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사유의 강력한 기수로서 서구의 반미주의를 이끌다가 후반부에 그가 공산주의적 혁명의 깃발은 들었던 것은 저런 사상적 흐름을 대변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싸르트르의 오랜 지기(知己)이자 같은 실존주의자로서 유사한 길을 가다가 싸르트르와 철학적으로 결별했던 메를로-뽕띠(Merleau-Ponty)는 세상을 너무 의미일색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여기서 그는 불교사상과 가까워진다. 세상은 의미와 무의미가 뒤섞여 있는 그런 애매모호한 이중성이 교차하는 지대이므로 마르크스나 싸르트르적인 과잉의미의 혁명의식을 그는 멀리했다. 동시에 그는 싸르트르적인 혁명적 행동의식에 입각한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인 마르크시즘을 미이라적인 우상숭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마르크시즘을 다만 구조주의적 방법론의 차원으로 정태화시킨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행동주의의 혁명열정을 식어버리게 했다. 그 구조주의가 세상을 독자적이고 실체론적 의미론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을 지양시키고 세상의 모든 것을 상관적인 대대법으로 보게 했다. 이 대대법이 곧 의미와 개념 대신에 기호와 흔적으로 세상을 읽게 했다. 이 사상이 이른바 해체주의와 데리다(Derrida)의 철학에 연장되었다. 이것이 서구 사상에 불교적 시류가 흐르는 계기를 이루게 했고, 기독교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론이 시들해지는 시점에 접어들게 했다. 푸꼬(Foucault)는 보다 더 과격하게 니이체적인 파괴의 망치로서 서양이 이성의 힘으로서 자랑스럽게 이루어놓은 근대성(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성과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작업에 들어갔다.
싸르트르 이후 프랑스의 철학은 반(反)현대와 반(反)이성의 길로 치달았다. 독일은 여전히 마르크스가 뿌린 이상주의적 혁명을 손질 수정해 보려고 애썼으나, 아미 기(氣)가 더 빠진 마르크시즘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네오-마르크시즘이나 사회철학의 이름으로 하버마스(Habermas) 등이 중심이 되어 움켜쥐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플라톤 이후로 전개되어 온 서양 형이상학사를 파괴하려한 하이데거(Heidegger)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의 신좌파는 사회철학의 이름으로 저런 이상주의 계보를 대개 따른다.
김형효 한국한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82호 [2009년 01월 12일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