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신심명(信心銘)·증도가(證道歌)

증도가 1. 소개글

slowdream 2007. 8. 20. 16:30
 

*<證道歌>의 소개글은 성철 스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蕭湛 옮김.


<증도가>란


<증도가>는 永嘉스님이 지었습니다. 영가스님의 諱는 玄覺이요, 字는 道明이고, 성은 戴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 출신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三藏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 합니다.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天台止觀을 많이 익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禪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8조인 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나서도 서로 서신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며 유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들 보살피고 있다 하여 온 寺中과 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보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玄策이라는 선사가 지나갔는데 나이는 육십여 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老宿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하였더니, 노숙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스님이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方等經論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維摩經>에서 佛心宗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 끝에 노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 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기시오.”

그러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신 듯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허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스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

그러나 영가스님이 누님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때 영가스님의나이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 조계산에 이르니 때마침 육조대사께서 상당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 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었습니다.

“대저 沙門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大德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지게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한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는 ‘제가 지금 무상이 빠르다고 하니 그 무상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이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박하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 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영가스님은 다시 東廊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늘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으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육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의.식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조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와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였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가거라.”

그리하여 그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一宿覺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스님을 전송하였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 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不思議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歌. 行. 偈. 頌은 모두가 그의 누나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 2년(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는 無相대사, 塔號는 淨光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을 평하기를,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스님이 말에 몰린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수승한 사람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스님 자신이 <증도가>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들은 영가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였으며, 자기가 평생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스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스님의 행장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서 확철히 깨치고, 깨친 경지에 의지해서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의 사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태종에서는 교리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하여, 이것은 일종의 미친 견해지 바른 견해는 아니라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종에서 볼 때는 <증도가>가 선종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은 선종을 모르는 데서 하는 말이지 바른 길을 아는 사람이면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禪과 敎의 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한번 뛰어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고 많이 주장하는 데 대해서, 교에서는 ‘점차로 닦아 성불하는 것(漸修)’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대해서 천태종에서 가장 많이 공격햇지만,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며,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증도가>라 하였는데 ‘證’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봅시다.

‘증’이란 究竟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悟]에도 證悟와 解悟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란 견해.지해를 말하는 것으로 알기는 분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을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 중생이 원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중생 그대로인 것, 그것을 해오라고 합니다.

‘증오’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실제로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증오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가에서든지 선가에서든지 증이라고 하면 근본적으로 초탈한 구경각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것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노래에 ‘증’자를 붙였냐 하면, 선종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증오’를 근본으로 삼았지 ‘해오’로써는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이지, ‘해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普照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라고 잘못 보앗다가 나중에 <看話決疑論>이라든가 <圓頓成佛論> 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이지 ‘해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가에서의 근본 표본은 ‘해오’가 아닌 구경각이며, 선가에서의 깨달음이란 구경적으로 체달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래 이름부터도 ‘증’이라 하였지 ‘해’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頓悟’라 하는데, ‘頓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悟란 얻는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大珠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근본무명인 제팔 아뢰야식의 無記無心의 魔界까지 완전히 벗어나서 大圓境智에 들어가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친 것이 곧 ‘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가에서는 그 중간적인 것을 깨달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설명하는  <증도가>를 이해할 수 있지 ‘증오’와 ‘해오’를 혼동해서는 영원히 <증도가>를 모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 <증도가>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달마스님까지, 달마스님에서 육조스님까지, 그리하여 五家七宗으로 내려온 正眼宗師의 증오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증’이라 한다는 것을 한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道’라 하는가?

도를 菩提라, 覺이라 하는데 ‘증’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 도라 하는 것은 증한 도를, 구경각을 성취한 그 구경처를 말합니다. 즉 도란 구경을 깨친 ‘증’한 도이지 중간적인 도, ‘해’한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느니라.“

도는 무심과 통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공부해서 대무심지에 들어가 구경각을 바로 성취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제찰 아뢰야 무기무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제팔 아뢰야의 무심, 즉 멸진정의 무심은 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멸진정의 무심도 아주 벗어나서 제팔 아뢰야의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곳에서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인 것이며, 진여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이 곧 ‘도’이며 ‘도’가 곧 ‘증’이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外息諸緣內心無喘)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心如墻壁可以入道).”

그러면 마음이 담과 벽 같아야 한다고 하니 목석과 같고 장승과 같은 무심지에 들어가 버리면 그것이 ‘도’냐 하면, 그것이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이 장애가 되어 근본적인 구경무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경의 대무심지에 들려면 멸진정의 假無心, 거기서 한 관문을 더 뚫어서 구경무심을 성취해야 바로 도를 깨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인용한 달마스님의 말씀도 구경적인 도를 말씀하는 것이지 중간적인 도가 아니며, 증오의 도이지 해오의 도는 아닙니다. 달마스님 이래로 선종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 구경각을 ‘증’이라 하고, ‘도’라 하는 것도 ‘증’을 근본내용으로 삼기 때문에 구경각이 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도는 달마스님이 말씀하신 무심을 한층 넘어간 도가 되어야지 그 중간적인 것은 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歌’란 무엇인가?

영가스님 자신이 확철히 깨친 경계를 노래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 확철히 깨쳐 구경각을 성취하고 나서 그 경지를 시가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