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불교의 폐단
우리나라 불교신자의 신행태도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른 교법을 모른 채 무조건 부처님에게 매달려 복을 비는 기복불교자이고, 또 하나는 불교에 대한 교리적 지식은 많으나 실천적 신행이 뒤따르지 않는 지식불교자들이다. 이러한 두가지 신행태도에 대해 불교의 자체평가는 약간 극단적인 데가 있어 보인다. 즉 대체로 기복불교에 대해서는 맹목적이고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의 소리가 높다. 반면 지식불교에 대해서는 그 허위적 신행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는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식불교도 기복불교 못지 않게 많은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불교신행이란 머리로 이해한 교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여 자기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지식불교는 이 뒷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지식불교의 가장 큰 폐단은 교만함에 사로잡혀 실천적 신행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절에서 듣는 설법도 '참다운 불자는 기복신앙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이 교리지식이 많은 사람은 절에 자주 나가지 않아도 되고, 술집에서든 사창가에서든 언제 어느 곳에서나 그 마음만 깨끗하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곤란하다. 다시 한번 곰곰히 따져보자. 어떤 사람이 사성제나 삼법인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올바른 불교신행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훔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율을 안다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가.
불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교리적 지식만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인격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불교적 안목으로 인생과 세계를 보고, 그것을 인격과 행동에 반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설사 스님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참다운 불자라 할 수는 없다.
지식불교의 허구성은 당나라 때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백락천의 예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가 항주자사로 있으면서 도림선사를 찾아가 들었던 법문은 '모든 악행을 하지 말고 온갖 선행을 실천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 속에 있으리라'는 칠불통계게였다. 수많은 경전을 읽고 불교교리와 지식을 달통해 있던 그는 이 법문이 너무 쉽다며 코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지만 팔순의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이 삽화의 주제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쓸데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식이 많은 만큼 그렇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 진지한 노력은 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외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불교적 인격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한 지식불교는 한갓 쓰레기에 불과하다. 일찍이 부처님도 이 점을 우려하셔서 <불본행집경> 39권 교화병장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바 있다.
"....너희들은 세간에 나가 깨끗한 삶에 대해 설법하라. 중생 가운데는 더러움과 번뇌가 적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바른 법을 듣지 않으면 다시 더러움에 물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도록 바른 법을 설해 주어야 한다...."
저 유명한 '전도선언' 끝부분에 나오는 이 말씀은, 요컨대 진리를 조금 안다고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다시 더러움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다는 경고다. 아울러 알고 있어도 더 배우고 닦아야 하고, 그러자면 늘 법문을 청해 들어야 한다는 권고이기도 하다.
참으로 불교는 마음으로 믿는 종교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으려면 먼저 자주 절에 나와 법문을 청해 듣고 교만한 마음부터 조복받아야 한다. 불교에 대해 아는 지식이 많다고 건방을 떨며 법회에 자주 나오지 않거나 수행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하신 이 말씀의 의미를 늘 마음 속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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