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오른 것은 제가 어떻게 수행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경험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불교학을 공부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1985년 한국에 왔을 때 가톨릭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한국어를 3년 동안 배우면서 문화도 꼭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종교 중에서 서양에 비교적 덜 알려진 한국 불교를 택했습니다.
불교 공부를 시작한 곳은 인도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향했는데 지금 저도 입문자들에게 꼭 인도에 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중요한 순례지를 돌아본 뒤 열흘 동안 위빠사나 수행에 몰두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체험이었습니다. 각(覺)을 이루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톨릭에서는 해본 적 없는 체험이라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이 덕분에 불교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수행의 의미도 보다 분명해 졌습니다.
이후 프랑스 파리 7대학에서 불교학 석사 논문 주제로 송광사 구산 스님의 『석사자』를 번역했습니다. 지극히 어려웠습니다. 사전을 보고도 모르는 낱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글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불교공부를 못했을 것입니다. 내친김에 박사과정에서는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거지요. 이 논문을 마치는 데 9년이 걸렸습니다. 1995년 다시 한국에 왔을 때 간화선을 하는 것이 한국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간화선 수행을 시작한 것이 내년이면 15년이 됩니다.
간화선 수행의 화두를 받기 전 호흡법을 먼저 익혔습니다. 수식관입니다. 수식관을 두 달 정도 배운 다음 첫 번째 화두를 받았습니다. ‘무(無)’자였습니다. ‘무’를 포함해 초보자를 위한 화두 15가지를 차례로 푸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 법명을 받았습니다.
한 관문을 풀었다는 것은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초보자 화두 다음의 관문은 무문관입니다. 무문관에는 48칙의 공안이 있습니다.
어떤 화두는 하루 걸리고 어떤 화두는 6개월 걸리고 어떤 화두는 지칠 만큼 오랜 기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무문관 화두를 풀고 마무리까지 10여 년 걸렸고 이후 법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확철대오’해야만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여 년 동안 겪은 시행착오가 바탕이 되어서 초보자들을 인도해줄 수 있다고 스승(박영재·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께서 인정한 것입니다.
무문관·벽암록 공안 화두로 수행
법사 자격을 얻은 뒤에도 수행은 계속됩니다. 무문관 다음에 벽암록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스승께서는 무문관 화두를 다시 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했던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이 책(무문관)과 함께 살다시피 했습니다. 잠에 들 때 이 책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휴대폰 대신 휴대 책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무문관을 다시 푼 다음 ‘착어’를 해야 합니다. 착어는 무문관 화두 내용과 역대 조사들의 선어록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스승의 점검을 받습니다. 무문관 착어까지 마친 다음에 벽암록으로 들어갑니다. 벽암록 다음에 대해서는 아직 제가 말씀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수행을 위해 지켜야 할 조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 어떤 화두를 참구하는지 말하지 않는 것이 철칙입니다. 서강대 학생들에게도 상대방에게 화두를 들키면 ‘F’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의 약속입니다.
둘째,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과의 만남이 꾸준히 이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입실을 통해 점검을 받고 또 받아야 합니다. 시험을 볼 때 긴장을 하고 그 과정에서 공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입실에서 듣는 얘기는 주로 ‘버려라’입니다. 사량분별을 벗어나라, 더욱 순수하게 참구에 매진하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화두를 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착각입니다. 스승을 만나야 착각에서 벗어나 다시 참구할 수 있습니다. 스승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로도 입실을 허락하십니다. 그만큼 입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재가 수행자라면 매일 최소한 30분은 참구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시간은 하루 2시간인데 도시에 살면서 쉽지 않습니다. 저도 하루 1시간은 꼭 참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생활 자체가 수행이 됩니다. 저는 그 이치를 아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습니다. 늘 수행과 생활이 분리되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수행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육체적 고통, 번뇌망상까지도 수행입니다. 현실 도망이 아니라 자녀, 공부, 직업, 배우자 등 살면서 겪는 이 문제부터 수행으로 삼아야 합니다.
넷째, 지적으로 화두를 참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문자를 통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화두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빨리 푼 화두보다 오랫동안, 좌절감을 느끼며 애쓴 화두가 자신이 있습니다.
한 학기에 한 번 이상 철야정진, 용맹정진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이라도 7일 이상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입산할 수 없는 경우라면 며칠만이라도 수행하시길 권합니다. 더불어 일주일에 한 번 3~4시간 정도 간화선 수행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도 일주일 중 하루는 서강대에서 수행하는 사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습니다. 공동체를 형성할 때 힘이 됩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하셔야 합니다. 재가 수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억수같은 비가 아니라 촉촉이 오래도록 내리는 비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간화선은 나의 집’이라는 확신입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생각보다 한 가지를 끝까지 하는 것이 보람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화선은 나의 집’이란 확신 필요
제가 경험한 간화선의 성과에 대해 말씀드리며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화두를 풀 때 일상에서 겪는 복잡한 매듭 중 하나가 완전하게 풀려 버립니다. 각별히 애를 써서 참구하고 나면 일상의 복잡한 상황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성급한 마음을 놓고 그 마음에 해당하는 아집과 아상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직관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맞다’, ‘아니다’라는 저의 판단을 믿습니다. 그리고 직설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완곡하게 처신해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 통찰력은 훨씬 강해졌습니다. 또 진리에 대해 말하려는 경향을 많이 벗어났습니다.
불교의 최고 목적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내용은 생사해탈,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고통의 최고점, 번뇌망상의 최고에는 집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화선 수행을 통해 많은 집착을 끊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망상은 그대로지만 어떻게 처신하는 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번뇌망상은 수면에 있고 수행을 하면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위하는 삶입니다. 나를 위한 삶은 무의미하고 남을 위한 인생이어야 참다운 해탈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결국 참선의 의미는 보살행이라는 진리를 새기며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서명원 신부가 지난해 12월 2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백일법문 초청특강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서명원 신부 는
1953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의과대학을 수료했다. 1979년 프랑스 예수회에 입문,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1985년 한국에 들어와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졸업, 89년부터 한국 종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1993년 성철 스님을 만났다.
이후 파리 7대학에서 학사, 석사에 이어 ‘성철 스님 전서 및 생애’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재가 수행단체인 선도회에 입문해 간화선 수행을 시작했으며 2007년부터 선도회 법사로 동·서양 수행 모임을 이끌고 있다. 현재 서강대 종교학과 불교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법보신문 1030호 [2010년 01월 05일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