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는 당나라 8세기 초 유명한 육조 혜능(慧能)조사의 문하로 불리워진 영가(永嘉)대사가 손수 지은 ‘도를 증득한 노래’를 말한다. 불교사에서 혜능조사의 문하에 오대 산맥이 있었다. 이른바 남악 회양(南嶽 懷讓), 남양 혜충(南陽 慧忠), 영가 현각(永嘉 玄覺), 청원 행사(靑原 行思), 하택 신회(荷澤 神會) 등이 그것이다.
영가대사는 이 산맥 중의 하나이지만, 본디 육조 혜능으로부터 도를 인가받기 전에 천태종의 탁월한 고승이었다 한다. 그가 육조 혜능을 찾아 뵙고 깨친 도를 인증받고 『증도가』를 읊었지만, 그는 우수한 부처의 선근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었든지, 득도한 것이 세수 31세였다고 한다. 그가 열반에 든 것이 세수 39세(서기 713년)였고, 그 해에 또 육조조
사도 입적했다고 한다.
필자가 지닌 『증도가』의 지료로는 탄허 스님이 번역한 『선종 영가집』(도서출판 교림)과 성철스님이 역시 주해한 『신심명/증도가 강설』(장경각) 등을 들 수 있다. 필자의 번역은 전적으로 저 두 자료집에 도움을 받은 것이다. 영가대사가 특히 육조 혜능조사의 인가를 받기 위하여 조계산으로 그를 방문하러 갔을 때에, 젊은 영가스님의 깊이를 알아 본 노승인 현책(玄策) 스님이 이 젊은 스님을 혜능조사의 곁으로 인도했다고 한다. 혜능조사와 영가스님과의 무생법(無生法)에 대한 짧은 문답이 이루어진 이후에 승인을 받은 영가대사가 즉시 되돌아가려고 하자, 혜능조사가 붙들고 하루 밤 자고 갈 것을 권고했다고 해서 세상은 그를 별칭으로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신심명/증도가 강설』의 해설에서 『증도가』는 도를 증오한 차원이지, 해오한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영가스님이 도를 깨친 것은 증오(證悟)의 차원이지, 한자 도를 자성적으로 이해한 해오(解悟)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면 해오의 차원은 알음알이의 수준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알음알이는 뭐 좀 안다고 수준 낮은 개념성을 나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다. 적어도 해오는 그런 개념성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알듯 모를 듯한 개념성이 난비하는 것은 적어도 설명하는 자도 잘 모르고 헤매는 것을 암시한다. 또 이것은 참선은 오래 했으나, 사유의 구체적 공부가 짧아서 문제에로 직입하지 못하고 구두선(口頭禪)처럼 빈죽만 읊조리는 경우와 대동소이해 보인다. 해오도 그 자체 이미 대단한 수준이다. 해오는 도가 무엇인지 자기 방식대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오는 도가 무엇인지 온전히 자기 나름대로 녹여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증오처럼 스스로 도가 되어 도의 화신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해오와 증오의 차이를 마치 분황사의 고고한 학승으로서 민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통혼 이후에 자신이 얻은 모든 소유를 다 부수어버린 다음에 만인에게 보살도를 보여주는 하심의 원효대사와의 차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증도가』에는 노래하는 주체와 노래하는 행위가 따로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증오의 차원에 이르지 못한 해오의 단계는 아직도 목적으로서의 깨달음과 깨닫는 주체가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주어와 목적어가 문장에서처럼 따로 노는 셈이 된다.
그러나 증오는 본인자신이 곧 깨달음의 화신이 되는 까닭에 목적으로서의 깨달음은 바깥에서 저멀리 놓여있고, 깨닫는 마음은 주체로서 안에 깨달음을 응시하고 있는 그런 그림이 아니다. 그런 그림은 늘 부처와 깨달음을 하나의 문제(problem)로서 의식의 주제가 되는 자기 긴장의 강도를 풀지 못한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출처 법보신문 1058호 [2010년 08월 02일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