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철학자 기세춘
동-서양 넘나들며 ‘회통’, 스스로 좌파라 불러
“지금 기독교는 살아있는 예수 믿는 것 아니다”
대화가 막히고 평화가 위협받는 시대에 평화의 사상가 ‘묵자’를 들고 나온 재야철학자가 있다. 성공회 수도자 등이 주축인 ‘독서대학 르네21’이 서울 감리교신학대에서 열고 있는 인문강좌에서 ‘겸애와 평화의 사상가 묵자’ 강의를 하고 있는 기세춘(75·아래 사진)이다.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청초했다. 50년대엔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60년대엔 ‘우리 철학’ 운동을 벌였던 그는 지금도 ‘70대 청춘’이다. 그는 조선 중기 퇴계 이황과 논쟁을 벌인 성리학자 기대승의 후손이자 구한말 의병장의 손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그의 단정한 두루마기는 조선 선비의 자태를 보는 듯하다.
“관료 출신으로 벼슬 구하려 천하 떠돌던 공자는 우파”
그는 다양한 사상편력의 삶을 살아왔다. 젊은 시절엔 구세군으로 기독청년회 활동을 했고, 60년대 초엔 머리를 깎고 내장산 원적암에서 살았다. 또 동학의 고장인 전북 정읍 출신으로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동학혁명연구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엔 4서5경과 노·장자, 묵자 등 동양철학을 섭렵하면서 정치이데올로기에 편승한 기존 번역서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종교와 철학에서 동서고금과 전후좌우를 아우른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사상을 지배해온 것은 ‘우리 것’에 대한 탐구였다. 그에게 ‘우리 것’에 대한 탐구의 동기를 부여한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들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주 동부교회 백영흠 목사를 찾아갔다가 외국인으로 다산 정약용 연구에 몰두했던 핸더슨을 만나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종교사상가 김교신(1910~1945)의 제자인 농학자 겸 수필가 유달영으로부터 한 프랑스인 할머니의 말을 전해들은 것이 ‘우리 것’ 연구에 불을 당겼다고 한다. 눈 내리는 경회루를 본 그 할머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뱉은 말은 ‘동족끼리 전쟁이나 벌이는 한국은 아프리카 식인종이나 다름없는 줄 알았는데 저런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때 교사를 했지만 ‘붉은 낙인’이 찍혀 ‘공무’를 볼 수 없게 돼 할 일이 없어지면서 읽기 시작한 고전이 지금은 그의 주특기가 됐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파는 오른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는 자신을 좌파로 규정한다. 그가 우파로 규정한 공자의 맞수인 묵자를 들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가 본 공자는 관료출신으로 귀족주의적이다. 벼슬에서 쫓겨난 후에는 13년 동안 제후들로부터 벼슬을 구하려 천하를 주유했지만 묵자는 제후들이 땅을 떼어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하고 민중의 편에 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반전운동을 한 투쟁가였다. 묵자는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금나라를 설득해 전쟁을 사전에 막았으며,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막았고, 노나라를 공격하려던 제나라는 저지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문익환·홍근수 목사와 논쟁 벌여 책으로
‘묵자와 예수’를 놓고 문익환 목사, 홍근수 목사와 논쟁을 벌여 이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던 그의 철학에서 독특한 것은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유사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의 논쟁 뒤 문 목사가 ‘예수와 묵자는 쌍둥이’라고 했을 만큼 둘 간의 시차(묵자가 4백여년 앞섬)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비슷하다고 고백했듯이 그도 묵자는 공자보다는 예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말한다. 묵자는 내세의 천국이나 극락을 예정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사도로서 평생을 바쳐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뜻인 겸애와 교리가 실현되는 평등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 공화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가 수많은 고전의 글귀 가운데 가장 마음을 두는 것은 ‘천하무인’(天下無人)이다. 천하에 남이 없다는 뜻이다.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안생생(安生生)사회라고 했는데, ‘안생생’은 천하만민이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요, 동포라는 공동체 사회를 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예수의 생각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 탄생 때 동양에서 건너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는 ‘동방박사들’을 묵자의 제자들일 것으로 추정한다. 정치권력자들에 의해 묵자가 배척당한 뒤 망명한 묵가들이 아랍 쪽까지 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유교는 혈연주의다. 우주 자체를 하나의 혈연으로 본다. 유교는 인간을 하느님의 분신으로 본다. 그래서 하느님에게도 효(孝)를 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묵자의 천(天·하느님) 개념은 다르다. 묵자는 인간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본다. 하늘(天)의 뜻을 실현해야 할 신민으로 보는 것이다.”
암과도 친구 돼 “막걸리와 숲에서 울기를 즐겨 하는 사람”
그래서 이기주의나 지배이데올로기로 변하기 쉬운 혈연주의와 달리 묵자는 겸애로 평화를 이루려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는 예수도 마찬가지다. 보수 기독교의 시각에서 보면 기도 안 찰 노릇이지만, 동서를 회통한 그의 주장은 확고하다.
“야훼는 하느님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저주하는 신이 보편신이 될 수 있겠는가. 예수는 야훼신을 깨러 온 분이다. 지금 기독교는 예수가 아니라 몇 사람이 ‘자신이 고백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실제 2천 년 전 갈릴래야에 살아 있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가장 낮은 자로 와서 민중 속에서 살며 거대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에 맞서다 배척을 당해 죽은 예수를 묵자와 너무나 닮은꼴로 여긴다. 묵자와 예수의 하느님은 결코 야훼처럼 저주나 전쟁을 좋아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묵자는 아래 글처럼 전쟁광들을 철부지로 여겼다는 것이다.
‘오늘날 군자들은 조금 나쁜 짓을 하면 그것을 알고 비난하지만 큰 나쁜 짓인 전쟁을 하면 나쁜 줄 모르고, 따르고 칭찬하며 의롭다고 말한다면 이들이 과연 의와 불의를 분별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암환자다. 전립선에서 시작된 암이 척추까지 번져 수술을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는 암과도 함께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막걸리나 마시고 숲에서 울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배자들의 권력과 이기심을 위한 전쟁과 광기에 의해 눈물을 머금어온 민초들의 울음이 그의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기세춘은
묵자학회 상임고문인 기세춘은 대전 한남대 인돈학술원에서 6년간 강의하고, 대전시민아카데미 등에서 성리학과 실학, 주역, 논어 등을 강의해온 재야 철학자다.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한 그는 어려서부터 동양고전을 접하고 살았다. 한때 경북 선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으며, 상경한 뒤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후진국개발론과 통일문제를 연구하다 신영복 교수 등과 함께 ‘통혁당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대전에서 작은 기계공장을 운영하며 60년대 말부터 틈틈이 번역해둔 것을 신영복 교수가 출소한 뒤 공동번역서로 내놓은 것이 그의 첫 저작 <중국역대시가선집>이다. 그 뒤 문익환 목사와의 논쟁을 담은 <묵자와 예수>를 출간한 데 이어 <동양고전 산책> <노자> <장자> <성리학개론> <묵자-천하에 남이 없다> 등의 책을 냈다.
출처 한겨례신문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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