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막 대해도 괜찮은 생명은 없다 / 이영미

slowdream 2011. 10. 7. 04:03

최근 계속 터져 나오는 성 관련 범죄들을 보면 이런 것들이 결코 성욕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연히 깨닫게 된다. 성범죄 예방책으로 화학적 거세 논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단지 남자들의 성욕을 줄인다고 해서 이러한 사회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 인간이란 묘하다. 자신은 특정 대상을 욕망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 대상에 대한 소유 혹은 지배를 욕망하는 것인 경우가 꽤 많다. 예컨대 사놓고 읽지 않는 그 수많은 책들은, 그 책의 효용이 지식욕의 충족이 아닌, 지식을 소유했다는 소유욕과 그런 지식을 가질 정도의 사람임을 확인하는 자존감의 충족임을 증명한다. 직무상 해외출장을 가면서 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거기에서 약간의 해외 관광과 여행을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실상 대부분의 출장은 업무 때문에 여행이나 관광은 거의 하지 못한다), 자신이 공공의 예산으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권력적 만족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범죄들도 그렇다. 정말 상대방이 자신의 성욕을 자극해서라기보다는, 자기보다 약한 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그 대상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소유물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일종의 권력욕, 정복욕, 소유욕 같은 것에서 나오는 측면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번 영화 <도가니>를 통해 환기된 특수학교 교직원이 저지른 장애학생에 대한 성범죄도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뿐이던가. 학교와 직장에서 자주 성희롱과 성폭력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 강자가 약자를 향해 드러내는 권력욕 때문이다. 나도 중학교 시절에, 사춘기에 들어선 여중생들의 말랑한 겨드랑이 살을 꼬집는 방식으로 벌을 주는 체육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여중생들에게 음심을 품었다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 있고 그것을 재미로 삼을 수 있다는 권력적 만족감으로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그러므로 성범죄 가해자들이 토로하는 억울함, 성범죄 예방 교육에 당혹한 표정을 짓는 남자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 상하질서가 뚜렷한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며 권력욕, 정복욕, 소유욕을 만족시키는 행동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며 죄의식 없이도 얼마든지 이루어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성욕 없이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가해자가 ‘나는 상대방에 대해 성욕을 느끼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것은 성범죄 여부와 다소 무관하다. 또 이것은 힘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별도 무관하다. 남자 상급자와 여자 하급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 상급자와 남성 하급자 사이 혹은 동성 간에도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얼마 전 해병대 가혹행위로 소개된 바지 위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분명히 성희롱 혹은 성폭력이었다.

그래서 조직 내의 성범죄는, 권력관계가 명확하고 폐쇄적인 조직에서 흔히 발생하고 또 쉽게 덮어진다. 최근 군대의 성범죄 예방 동영상이, 여론에 의해 질타를 받은 것도 특별히 권위적인 권력적 질서를 지닌 집단이 보여준 특성 때문이었던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주고 짓누르며 쾌감을 얻는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것에 있다. 애완동물이나 아이를 상습적으로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 주변사람을 욕하고 구박하는 것을 삶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성범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막 대해도 괜찮은 생명이란 없다.

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