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라다크·잔스카르 순례기]친견한 생불의 하늘 북소리 “자비를 바다처럼”

slowdream 2010. 9. 23. 01:38

명상·수행보다 앞세우는 깨달음의 지름길
싯다르타처럼 왕자의 자리도 버리고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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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은 부와 명예와 쾌락까지도 모조리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도 부와 권력을 뺏고 뺏기는 폭력으로 점철돼 왔다.
 
그런데 권력의 상징인 왕의 자리를 버린 인물도 있었다. 불교의 교조 고타마 싯다르타가 그랬다. 불교는 그렇게 버림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런 인물이 싯다르타만은 아니었다. 라다크에서 가장 존경받는 큰 스님인 리종 린포체(83)도 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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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도 금강경 배워 법 전수 받아
 
img_04.jpg영국이 통치하는 동안 전 인도엔 400여 개의 왕국이 있었다. 영국은 왕을 인정해주는 척하며 ‘분리 지배’ 정책을 썼다. 라다크 지역에도 마토 왕국과 레 왕국, 스톡 왕국 등 세 왕국이 있었다. 리종 린포체는 마토 왕국의 타시 텐촉 남걀왕의 외아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네 살 때 티베트불교의 고승들은 그를 전생 리종 린포체의 ‘후신’이라고 했다. 라다크는 티베트불교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사원의 결정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왕을 이어야 할 후계자인 외아들을 티베트 사원에서 데려가 버리자 왕은 식음을 전폐했다. 티베트불교에 대해 너무도 화가 난 남걀왕은 자신도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하지만 티베트불교에 대한 반발로 그가 택한 것은 불교 승려가 아니라 힌두교 사두였다. 이로써 수백 년을 이어온 마토왕국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한 왕국을 사라지게 해버린 채 출가했던 리종 린포체는 그런 출가의 무게에 걸맞은 인물이 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 최고 수행자의 한 명으로 존경받는 그는 최근 겔룩파(황모파)의 102대 법좌에 올랐다. 티베트불교는 총카파 대사로부터 시작된 겔룩파를 비롯, 카규파, 샤카파, 닝마파 등 4대 종파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겔룩파는 달라이 라마도 속한 최대 종파로 한국불교의 조계종에 해당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대표하는 국왕이고, 리종 린포체는 겔룩파를 대표한 수장이다. 리종 린포체는 법왕인 달라이 라마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고승이다. 달라이 라마는 일 년에 3일씩 ‘한국인을 위한 법회’를 연다. 지난달 28~30일 진행된 이 법회에서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금강경을 리종 린포체로부터 배워 그 법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다.
 
 
 
5년 전 받은 염주 목에 걸고 설렘에 잠 못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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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고개인 칸둥라를 넘을 때까지도 달라이 라마가 스승으로 존중하는 리종 린포체를 ‘친견’(개인적인 면담)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해발 5608m인 칸둥라는 ‘하늘 북’이라는 뜻이다. 희박한 공기 때문에 옥죄어오는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 속의 순례자에게 하늘은 어떤 북소리를 전해 일깨워줄까.
 
파키스탄의 설산 연봉들이 눈 아래 들어오는 칸둥라를 넘어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무색하게 하는 누브라 협곡을 지나니 딴 세상의 평원 위 바위산에 데키 사원이 홀로 서 있다. ‘기쁘고 행복한 사원’이란 뜻이다.
 
‘산타크로스 스님’으로 알려진 청전 스님이 1년만에 의약품을 싣고 왔다는 소문이 바람을 타고 알려졌는지 데키 사원과 인근에 있는 수십 명의 스님들이 달려온다. 영양 결핍으로 인한 병이 많은 스님들은 청전 스님이 건네준 영양제나 약병을 받아들고선 온 우주를 선물 받은 듯 기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번 순례에 함께 한 4명 가운데 경남 충무에서 온 법현 거사 김광현(72) 씨는 5년 전에도 청전 스님을 따라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그때 데키 사원의 롭상 진파(68) 스님이 건네준 염주를 여전히 목에 걸고 온 법현 거사는 데키 사원에 가면 그 스님을 다시 만날 것이란 설렘으로 잠을 못 이뤘다. 그런데 스님들 무리에서 진파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세상을 뜬 것 같다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뒤늦게서야 나타난 진파 스님과 감격의 조우를 한 법현 거사는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는 진파 스님을 아랫마을 시장으로 데려가 신발과 주방기구들을 사주면서 진파 스님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받는 자보다 더 행복한 미소가 퍼지는 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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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인당 거사 정택주(63) 씨도 이미 오지사원에 태양열을 달아주고, 굶주리는 동자승들을 위해 우유소를 사주고는 오히려 큰 선 물을 받은 양 좋아했다. 어떻게 ‘데키’(기쁘고 행복함)해질까. 보시로 풍요해지고 기쁘고 행복해진 것은 라다크 오지의 승려들과 마을사람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받는 자보다 주는 자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퍼진다.
 
이 데키 사원을 뒤로하고 샴텐링 사원에 가니 우연히도 대법회가 열리고 있다. 리종 린포체가 겔룩파 법좌에 오른 것을 환영하는 법회다. 법회를 끝낸 그의 방으로 가 그를 친견했다. 최고의 수행승으로서 엄격한 이미지였던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니 그저 어머니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깨달은 생불로 추앙받는 그가 깨달음의 길로 제시한 것은 명상이나 수행이 아니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왕조차 버리고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한 리종 린포체는 말했다. 
 
“자비심이 바다처럼 커지면 깨달음은 저절로 일어난다.”
 
 
출처 한겨레신문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