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53장. 넓은 길을 마다하고

slowdream 2007. 8. 11. 01:30
 

<제 53장. 넓은 길을 마다하고 좁은 길만을 좇는>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爲盜夸 非道也哉


만약 내게 약간의 앎이라도 있다면 大道를 행하고 오로지 펴서 받들 따름이다. 大道는 더없이 넓으나 사람들은 좁은 길만을 좇는다. 궁궐은 깨끗하고 화려하나 논밭은 잡초만 무성하다. 곳간은 텅 비었는데, 화려한 옷을 입고 허리에는 시퍼렇게 날선 칼을 차고 있다. 질리도록 음식을 먹고 재화는 넘치니 이 어찌 도둑이라 아니하겠는가. 진정 도가 아닐진저!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대도심이 이민호경) 

 

  道를 구하는 발원(發願)이 참으로 절절하게 드러나는 문장이다. 세간의 지식을 부정해 왔지만, 설령 손톱만한 지식이라도 있다면 좀더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일에 쏟지 않고, 오로지 道를 닦고 받드는 데 바칠 것이라는 숭고한 마음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노자의 바람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싶다. 大道는 참으로 넓고 툭 트여서 누구라도 거침없이 걸음을 옮길 수 있건만, 사람들은 그 길은 마다하고 좁은 길로만 다퉈 나아간다. 41장에서 “밝은 道는 어둡고 흐린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道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고, 평탄한 道는 울퉁불퉁한 것 같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큰길이 좁은길로 뒤집혀 보이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가라고 귀띔해 줘도, 굳이 마다하고 국도 아니 샛길만 찾아서 가는 꼴이다. 부와 명예, 세속적인 욕망에 눈이 흐려진 사람에게 그런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이런 까닭에 장자는 탄식한다.“道는 어느 곳에 숨었길래 진위(眞僞)만 남았으며, 말(言)은 어느 곳에 숨어버려 시비(是非)만 남아 있는가. 道는 조금 이룬 곳에 숨어 버렸고, 말은 그 화려함에 숨어 버렸구나!”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爲盜夸 非道也哉(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겅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한 편의 민중시를 읽는 듯하다. 75장에서 두보(杜甫)의 <봉선현 가는 길>의 일부를 인용한 바 있지만, 세상살이의 속내는 늘 한결 같은 듯싶다. 지금인들 크게 다르겠는가. 있는 사람은 있어서 고민이고, 없는 사람은 없어서 고민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道를 섬길 겨를이 없다. 또한 재화가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 없게 되면, 관리에 바빠 道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또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위의 삶을 꾸리는 입장이고, 무위의 뜰에서 거니는 사람은 이 모두가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에 초연하다. 그러기에 성철 스님은 재물을 자기 목숨을 노리는 독화살로 여기라 했고, 방거사는 모든 재산을 호수에 빠뜨렸던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는 선에서 재물은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닌 말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佛家에서는 실재하지 않지만 체험되는 대상으로 환상, 꿈, 신기루, 아지랑이, 물에 비친 달, 허공, 메아리, 그림자, 거울에 비친 모습, 허깨비 등을 꼽는다. 이런 허망한 상에 붙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모형제와 가까운 친척을 내 살붙이처럼 챙기고, 모든 종교인들이 이웃을 가족처럼 돌본다면, 배를 곯는 서민도 없을 것이고 소년소녀 가장도 독거노인도 존재치 않을 것이다. 지도자를 들먹이고 경제를 탓할 무엇이 없는 것이다. 

<금강경>의 한 구절을 읊어보자.


凡所有相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皆是虛妄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若見諸相非相  만약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보면

卽見如來      곧 여래를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