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시인 조영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slowdream 2007. 8. 24. 05:13

 

 

故 조영관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서울시립대 영문과 졸업 도서출판 일월서각 근무

1986년 이후 노동현장 활동

2002년 <실천문학> 가을호 신인상 당선

2007년 2월 20일 지병인 간암으로 영면

http://user.chollian.net/~koani


또 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시인이자 노동자였던 조영관. 불똥과 그을림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팔, 가슴. 깊게 각인된 노동의 흔적 위에서 피어오르는 더없이 아름다운 시어(詩語)들. 형에게 노동은 곧 시요, 삶이었다. 더 이상 ‘소외된’ 노동이 시대의 화두(話頭)이지 않게 된 민주화의 계절, 낯익은 이름들이 하나둘 제도정치와 문화권에 새로이 둥지를 틀 때도 형은 현장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형에게는 시와 노동이 둘이 아닌 때문이었으리라.


개인적인 친분과 취향이 작용함을 부정하지 못하지만, 내게 형의 시는 박노해 이후로 만난 감동적인 ‘노동시’이다. 노동이 주제이고, 노동이 소재이며, 작가가 노동자라 해서 노동시인 것은 아니니라. 노동을 자신의 삶으로 껴안고 체화한, 삶 속에서 노동이 지닌 의미를 서늘하게 드러낼 수 있는 힘의 소유자만이 그 감동을 건네줄 수 있다. 그러기에 형의 갑작스런 떠남이 더없이 아쉽다.


부천 순천향병원 암병동에서의 네 시간. 형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온갖 회상에 젖었던 두 시간과, 가혹한 치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형과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눈길을 챙겼던 두 시간. 짧은 그 시간이 형과의 마지막 자리였다. 그리고 올 1월말쯤이었던가, 서해 어디쯤 요양원에서 투병중인 형과의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그 살가운 목소리마저도 내 삶에서 말끔히 지워져 버렸다. “항심(恒心)을 잃지 말아라...” 내게 남긴 마지막 당부이자 위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임을 불법(佛法)임을 몸소 확인시켜 주었던, 노랫말처럼 ‘꽃보다 아름다웠던 사람’ 영관형.

 

 “형은 참으로 복도 많네. 죽음과 직접 씨름할 기회를 맞이했으니. 이제껏 우리가 삶에서 마주한 죽음은 사실 내 것이 아니잖수. 말하자면 관념적이지. 사고사든 돌연사든 갑작스레 삶을 마감하면 육체의 고통은 덜하겠지만, 삶의 또다른 경계인 죽음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 실체를 좀더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상실되는 것 아니겠어요.”

위로랍시고, 형에게 건넨 나의 마지막 말이었다. 메마른 먼지처럼 영관형도 웃고 나도 웃었던, 그 기억에 가슴이 저린다.


오, 삶은 참으로 덧없구나.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한줌 바람과 햇살이 더없이 소중하고, 체온이 흐르는 만남이 소중하겠지. 전생 어디쯤에서 장난기 많은 스님이었을 영관형, 금생에도 소외된 중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늘 낮은 곳에서만 하루를 열고 접었던 영관형, 다음 생에는 좀더 넉넉한 환경에서 좀더 가벼운 걸음으로 뜻을 펼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蕭湛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