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감변. 천화>
1.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야 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卽心是佛).
그러므로 달마(達摩)대사께서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셨다.
또 자주 「능가경」에 말씀하기를 ‘부처님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시고 아무 방편(門)도 쓰지 않은 방편을 펴셨다’ 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법을 구하는 이는 아무 구할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하셨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거나 깨끗한 쪽에 모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자기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3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에서 나온(印) 것이다.
형상(色)을 볼 때, 그것은 모두가 마음을 보는 것인데, 마음 스스로가 마음이라 하지 못하므로 현상을 의지해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卽事)에든 이치(卽理)에든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서 난 것은 형상(色)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체득하면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며 부처될 씨앗을 기르면서 그저 인연따라 시절을 보내면 될 뿐이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에나 이치에나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
2.
홍주(洪州) 태안사(太安寺)의 주지는 경과 논을 강론하는 강사(座主)였는데, 오직 스님(마조)을 비방하기만 하였다. 하룻밤은 삼경(三更)에 귀신사자(鬼使)가 와서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자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을 강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느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루 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케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 탐하여 대중에게 공부하게 했다' 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 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을 해탈케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 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 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즐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 하셨는데, 그대는 자신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는데 어찌 남에게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겠는가.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解脫月)보살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에게 바른 행을 닦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지 못하고서 남에게 수행케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그대는 더러운 생사심으로 입을 놀리고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저 세계의 왕이 화가 나서 그대를 잡아다가 그 세계의 칼숲 지옥에 잡아 넣어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말로서 설한 법을 작은 지혜로 망녕되게 분별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바른 도를 알리요
저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더한다.
言詞所說法 小智妄分別 是故生障碍 不了於自心
不能了自心 云何知正道 彼由顚倒慧 增長一切惡
그런데 그대는 40년 동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으면 어찌겠는가.
또 옛부터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즉 ‘말로써 모든 법을 말씀하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대는 망상(妄想)으로 입을 놀려 어지러이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하니, 다만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치는 말라.
지금 어서 빨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그러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 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사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치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하는가.’ 아무 대책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開元寺)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스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지가 문을 열어주니, 주지는 곧 스님(마조)께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째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데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스님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우두(牛頭)스님이니라.”
“그렇다면 국사(國師)께서는 당시 굉장했겠습니다.”
“남전(南전)스님이니라.”
3.
어느날 공양 끝에 한 스님이 와서 몸가짐을 가다듬고 법당으로 올라와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께서 물었다.
“지난밤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광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은 대답하고 광으로 갔다. 그때 백장(百丈)스님이 전좌(典座)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을 나누어 주어 공양케 하니, 그는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백장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스님께서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공양 좀 주었는가?”
“예,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니까?”
“신통변화로는 그렇지만 불법 한마디 하는 데는 나만 못하다.”
4.
스님께서 어느날, 선상에 올라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방금 침을 뱉으셨습니까?”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여기에 있구나! 그게 싫어서 침을 뱉았다.”
“좋은 일인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싫어하십니까?”
“너라면 좋겠지만 나는 싫다.”
“이는 누구의 경지입니까?”
“보살의 경지다.”
나중에 고산(鼓山)스님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하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다.”
또 말했다.
"옛사람들은 보살까지도 싫어했다. 비록 싫어했으나 보살의 지위를 먼저 증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런 일을 싫어하랴.”
5.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어, 두 아들을 스님께 귀의케 하여 출가하도록 했다. 한 해가 남짓 지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부처님과 똑같다는 생각을 내어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다’ 라고 했는데, 두 스님은 벗이 되어 이 늙은이를 완성시켜 주시오.”
두 사미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몹시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거사가 두 비구를 따라 스님(마조)께 갔다. 스님들이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하니 스님께서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삼랑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스님께서 소리쳤다.
“황삼랑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는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여든 다섯입니다.”
“비록 그렇게 계산하나 무슨 나이인가?”
“만일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보낼 뻔 했습니다. 스님을 뵌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이리라.”
6.
황삼랑이 어느날, 태안사에 가서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양(亮)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을 합니까?”
“좌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마조스님께 귀의하여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깨달았다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로 가니, 문지기가 스님께 아뢰었다.
“태안사 양좌주가 와서 스님을 뵙고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뵈었다.
스님께서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60권 화엄을 강의한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할 줄 모르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心)은 재주 부리는 광대 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맞추는 이 같다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를 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 절을 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하느냐.”
양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축축히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나중에 사뢰었다.
“이제 스님 곁을 떠나 스스로 수행할 길을 찾으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늘 마조스님 앞에서 꾸지람을 받고는 미혹한 생각(妄情)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는 학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홀로 서선으로 들어간 뒤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양좌주가 이런 싯귀를 남겼다.
30년 동안 아귀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으로 회복했네
푸른 산엔 본디 외로운 구름이 벗이었는데
동자가 다른 이를 따라 딴 사람을 섬겼네
三十年來作餓鬼 如今始得復人身
靑山自孤有雲伴 童子從他事別人
장남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잠시 함께 기뻐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문득 도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역시 불을 잡을 마음이 있도다.”
7.
스님께서 상당하여 그저 잠자코 있으니, 백장스님이 면전에서 자리를 걷어버렸다.
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8.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바로 그대가 몸과 목숨을 놓아버릴 곳이다.”
“4구백배(四句百非)를 떠나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번거로운 말씀은 필요없습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스님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큰스님께 묻지 않았는가?”
“큰스님께서 저더러 스님께 물으라 하십니다.”
이에 서당스님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도 머리가 아파서 말해 줄 수 없으니, 해(海:百丈)사형께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니, 백장스님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아뢰니, 마조스님께서 말했다.
“장(藏:서당)의 머리는 희고,해(海)의 머리는 검도다.”
9.
스님께서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스님에게 글을 보냈는데, 그 속에는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스님이 이를 보자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혜충(慧忠)국사께 전하니, 국사께서 말했다.
“흠(欽)대사가 또 마(馬)대사에게 속아넘어갔구나.”
10.
어떤 사람이 스님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고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네 귀절을 떠나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스님께서 한 획을 그으면서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그대에게 대답해 마쳤노라.”
혜충국사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11.
한 좌주가 스님께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께서 되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40권 경론을 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 ‘어흠!’ 하고 소리를 지르니, 좌주가 말했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으니, 좌주가 또 말했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따져 물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하직하고서 문을 나오는데 스님께서 불렀다.
“좌주여!”
“예.”
“이게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 하셨다.
이에 대하여 뒤에 백장스님은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12.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회남에서 왔습니다.”
“동호(東湖)에는 물이 가득 찼던가?”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 차지 않았더냐?”
이에 도오(道吾)스님이 말했다.
“그득히 찼습니다.”
운암(雲岩)스님이 말했다.
“잔잔하였습니다.”
동산(洞山)스님이 말했다.
“어느 겁(劫)엔들 줄은 적이 있었습니까?”
13.
스님께서 다음날 입멸하시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4대가 평안치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14.
분주(汾州)스님이 좌주로 있을 때 42권 경론을 강하고 스님께 와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선가(宗門)의 뜻은 무엇인지요?”
스님께서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스님이 자리를 떠서 문을 나오는데 발이 문턱에 걸치자 마자 스님께서 “좌주야” 하고 부르니, 분주스님이 돌아보면서 “예” 하고 대답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스님은 당장에 깨닫고는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권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능가할 이가 없다고 여겼었는데, 오늘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하였습니다.”
15.
스님께서 백장(百丈)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지도하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워 대답하니, 스님께서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스님이 주장자를 던졌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 말로 마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석문이 불자를 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상시대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천화(遷化)>
스님 밑에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에 88명이 세상에 알려졌고, 숨어서 지낸 이는 그 수효를 알 수 없었다.
스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였으며, 발바닥에는 두개의 고리 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가마가 셋이 있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동안에 도를 닦는 무리가 천 명이었다. 스님께서 정원(貞元) 4년, 무진(戊辰) 2월1일에 입적하니, 탑은 늑담(潭)의 보봉산(寶峯山)에 있다.
칙명으로 대적선사 대장엄지탐(大寂禪師大藏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액(額)을 썼고, 좌승상(左丞相) 호득흥(護得興)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선사가 송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는
돌처럼 쇠처럼 완전하게 수행하여
근본을 깨달아 초탈했으니
곁가지를 찾으면 헛수고만 할 뿐이다.
오래 정을 닦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시니
싸늘한 소나무가 천척(千尺)이로다.
馬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久定身心 一時抛擲
大化南昌 寒松千尺
출처는 http://cafe.naver.com/sun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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