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대승도에 들어가 활짝 깨치는 요법입니까(大乘入道頓悟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모든 인연을 쉬고 만사를 그만두라. 선(善)·불선(不善)·세간·출세간, 일체 모든 법을 다 놓아 버리고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말라.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입 놀릴 곳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모든 인연을 쉬어 탐애와 성냄과 집착,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망정이 다하면 5욕8풍(五欲八風)이 닥쳐도 꿈쩍하지 않는다.
견문각지(見聞覺知)에 막히지 않고 모든 법에 혹하지 않으면 자연히 갖가지 공덕과 신통묘용(神通妙用)을 갖춘 해탈인이니, 모든 경계를 대할 때 마음에 다툼과 혼란이 없다.
거두지도 않고 흩지도 않은 채 성색을 꿰�어 아무 걸림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다.
선악·시비 그 어느 것도 쓰지 않으며, 한 법도 애착하지 않고, 한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를 대승인(大乘人)이라 한다.
모든 선악, 공유(空有), 더럽고 깨끗함, 유위와 무위, 세간과 출세간, 그리고 복이니 지혜니 하는 것에 매이지 않는 것을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다 그른 이치다 하는 온갖 알음알이(知解)와 망정이 다하면 얽어맬 수 없어서, 어딜 가나 자유로우니, 이를 초발심보살이 그대로 부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다."
16.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경계를 대할 때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 같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말하지 않으니, 공(空)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색(色)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시비와 염정도 사람을 얽어맬 마음이 없다.
단지 사람 스스로가 허망한 마음을 내어 얽매이고 집착하여 몇 가지로 이해와 지견을 지어내고 몇 가지로 애욕과 두려움을 낼 뿐이다.
모든 법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한 생각 망상이 전도되어 모습을 가짐으로써 있게 되었음을 깨달아 마음과 경계가 본래 서로 닿을 수 없음을 알면 그 자리 그대로가 해탈이고 낱낱이 모든 법이 어디나 그대로 적멸 도량이다.
또 본래 성품은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어서 본래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아니며, 공도 유도 선도 악도 아니다. 단 이것이 모든 염법(染法)에 어울려주면 그것을 인간·천상·이승(二乘)의 경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더럽거나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속박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유위 무위·속박 해탈 등 모든 헤아림이 없어 생사를 일으켜도 그 마음이 자재하면 마침내 허망한 허깨비인 5온(蘊) 18계(界) 등 티끌이나 나고 죽는 온갖 문(12人)과 합하지 않고 아득히 벗어나 기대지 않는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머뭄에 걸림 없어 문 열리듯 생사에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도는 닦는 사람이라면 괴로움과 줄거음, 마음에 맞고 안 맞는 갖가지 일이 닥쳐오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명이나 의식을 염두에 둔다거나 공덕과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된다.
세간 어느 법에도 걸림 없으며 가까이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똑같이 여기며, 거친 옷으로 추위를 막고 맛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나 귀머거리·벙어리같이 되어야 약간이라도 비슷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속으로 널리 지해(知解) 경계의 바람에 휘말리면 생사 바닷속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이치는 구할 것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그렇다고 구함 없는 데에 집착하면 다시 구하는 것과 같아지며, 무위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같아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 아닌 데 집착하지도 않으며, 법 아님이 아닌 데도 집착하지 않는다'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얻어신 이 법은 실재(實在)도 아니며 헛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일생동안 목석 같은 마음으로 5음 18계와 갖가지 처(人), 5욕 8풍에 휘말리거나 빠져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생사의 인(因)이 끊긴다. 자유롭게 가고 머물며 모든 유위인과(有爲因果)나 유루(有漏)에 매이지 않는다.
뒷날 다시 스스로 얽매이지 않는 이것으로 인(因)을 삼고 동사섭(同事攝)으로 이익케 하며,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대하며,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줄 것이니, 그것을 '병에 따라 약을 쓴다' 라고 한다."
17.
누군가 물었다.
"이제 출가하여 계를 받고 몸과 입이 청정해져 이미 모든 법을 갖추었다면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조금은 벗어났으나 아직 심해탈(心解脫)이나 일체처해탈(一切處解脫)은 얻지 못했다."
18.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심해탈이며 일체처해탈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승(佛法僧)을 구하지 않고, 복과 지혜와 지해(知解)도 구하지 않으며,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망정이 다하고 구함 없는 이것을 옳게 여겨 붙들지도 않으며, 다한 그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천당을 좋아하고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속박과 해탈에 걸림 없으면 그것으로 몸과 마음 그 어디에 대해서나 '해탈' 했다 하는 것이다.
그대가 어느 정도 계율을 닦아 3업이 청정하다 하여 다 끝냈다 말하지 말라. 항하사만큼의 계·정·혜(戒定慧) 방편과 무루해탈(無漏解脫)은 전혀 털끝만큼도 맛보지 못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눈귀가 어두워지고 백발에 주름살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에 힘써 용맹정진하여 끝끝내 성취해야 한다. 늙음과 괴로움이 몸에 닥치면 슬픔과 애착에 얽매여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속은 두려워 어디도 의지할 곳이 없어 갈 곳을 모를 것이다.
이럴 때 가서는 손발을 정리할래야 할 수 없고 설사 복과 지혜, 명리나 물질이 있다 해도 전혀 구제하지 못한다. 마음 지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반연할 뿐, 반조할 줄은 몰라서 다시는 부처님의 도를 보지 못하고 일생 지었던 모든 선악의 업연(業緣)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난다.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6도(六道)의 5음(五陰)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난다. 찬란한 빛을 내며 장엄함 모습으로 펼쳐지는 집, 선박, 수레 등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탐내고 좋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쁜 경계는 모조리 좋아할 만한 경계로 변하는데, 거기서 더 좋아하고 탐낸 쪽을 따른다. 이렇게 업식(業識)에 끌려가서 붙는 데로 생(生)을 받게 되는데 자기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용(龍), 축생, 양민, 천민 등 정처없이 가게 된다."
19.
누군가 물었다.
"어찌해야 자기 의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이라도 하려면 할 수 있다.
5욕 8풍을 마주하더라도 갖거나 버릴 마음이 없고, 간탐·질투·탐애 등 아소(我所)의 마음이 다하고 더러움과 청정함을 함께 잊으면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듯 걸림없이 비출 것이다.
마음마다 흙덩이나, 나무토막·돌같이 해야 하고 생각생각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한다.
또한 큰 코끼리가 강물을 끊고 건너듯 의심과 착각을 없애야 하니, 이러한 사람은 천당 지옥 어디에도 끌려들지 않을 것이다."
*출처는 http://cafe.naver.com/sunz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