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게 죽은 사람의 부활(大死底人)
묻는다 : 이미 죽어버린 자가 갑자기 살아난다면 어떻게 하겠소.
답한다 : 밤에 쏘다니면 안 되네, 내일 아침 날이 밝거든 가게!
역시 趙州가 묻고 投子가 답한 禪問答이다. 話頭로는 ‘대사저인(大死底人)’이라 하는데 ‘碧巖錄’은 이를 趙州의 話頭로 하고 있으나 앞의 話頭 ‘投子山主’에 이어진 선화(禪話)다. 따라서 投子의 話頭로 보는 게 더 合理的이다. 물론 禪語錄은 對等한 立場에서의 거량일 경우 話頭의 主人을 두 사람 중 어느 쪽으로도 認定한다.
投子山을 지나며 떠올려본 또 하나의 投子禪師 話頭 ‘大死底人’은 아주 有名한 禪林 공안(公案)이다. 後世 禪門에서는 이 話頭를 ‘험주문(驗主問)’ 또는 ‘심행문(心行問)’이라 하여 높이 平價했고 投子對答이 부처도 따르기 어려운 非凡한 力量을 나타내 보인 화중연화(火中蓮花 : 뜨거운 불 속에서도 송이송이 피어 있는 연꽃으로 稀貴한 것, 眞如佛性 등을 象徵)만큼이나 귀한 것이라고 讚嘆했다.
‘험주문(驗主問)’이란 虛像에 맞서 實體, 本質 등을 試驗해보는 禪問答을 말한다. 이 禪問答은 흔히 相對方의 對答을 뒤집어묻거나 ‘답은 물음 속에, 물음은 답 속에’ 있는 問答 方法을 動員한다.
5조 弘忍祖師(601-674)가 일찍이 “참선에서의 깨달음은 반드시 한 차례 生死觀을 뛰어넘게 마련이다. 이래야만 살아 있다는 의미를 알게 되며 生死를 超越할 수 있게 된다”고 說破한 바 있다.
趙州는 바로 이 弘忍祖師의 法問을 ‘大死底人’이라는 話頭로 發展시켜 투자의 심행(心行)을 試驗한 것이다. 趙州가 제기한 문제(死者의 復活)는 반드시 답을 요구한 물음도 아니고, 또 답이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단지 相對方 見性의 심지(心地)를 알아내고자 한 것뿐이다.
죽은 사람은 모든 活動이 停止된다. 따라서 佛法 道理를 설할 수 없다. 趙州의 뜻을 즉각 看破한 投子는 희안한 對答으로 맞선다. 죽은 사람이 佛法을 說할 수 없다는 얘기는 오늘 밤 몸을 움직여 가지 않으면 내일 결코 그곳에 到達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不可能의 論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자불설(死者不說)의 論理는 어디까지나 世俗의 現象界에서만 通用되는 것일 뿐이다. 靈的 世界, 精神 世界에서는 죽은 자의 復活이 可能하다. 죽은 자의 說法이 可能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그것이 認定되는 것은 肉體에 비해 精神이 갖는 優越性 때문이다. 시공(時空), 生死에 대한 區分과 差別觀念만 갖지 않으면 죽은 자가 說法한다는 矛盾은 곧 克復될 수 있다. 投子의 對答은 그처럼 높은 ‘死者 復活’의 境地를 收用하거나 實踐하려면 小極的이고 어설픈 깨침으로는 안 되고(밤에 쏘다니면 안 되네!) 太陽이 밝아오는 환한 아침 같은 확철대오의 깨침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無(실상, 죽음)를 깨친 사람은 시시하게 밤에나 돌아다니지 않고 밝은 대낮,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光明大道를 걸어나갈 수 있다. 척척 들어맞는 問答이다.
천하조주(天下趙州)와 일군대사(逸群大士) 投子가 만나 相乘作用을 일으키면서 深奧한 선리(禪理)를 說破하고 있는 問答이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멋진 相乘作用을 후세 禪林은 “趙州가 소리 없는 무공(無孔)의 피리를 불면 投子는 털로 만든 소리 안 나는 전박판(氈拍板)을 치고 있다”고 讚揚했다. 雪竇 重顯禪師는 [碧巖錄] 평창(評唱)에서 “釋加도, 達磨도 祖師들도 아직 못 간 곳”이라고 높이 추켜세웠다.
“밤에 쏘다니면 안 되네, 내일 아침에 가게!”
속신(俗信)에서는 죽은 자의 靈魂은 흔히 밤에만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祭祀도 한밤중에 지낸다. 다시 말해 ‘死者復活’은 밤의 일이다. 禪에서의 ‘死者復活’은 生死를 超越한 見性의 境地에 이를 때에만 可能하다. 이와 같은 見性의 境地는 캄캄한 밤이 아니라 太陽이 밝게 비치는 淸明하고 신선한 아침과 같다. 설익은 풋과일처럼 어설피 깨친 것으로 道人인 척 하면서 四方을 行脚하는 雲水衲子, 俗說에서의 ‘死者復活’처럼 밤에나 돌아다니는 靈魂이어서는 안된다. 완전히 깨친 道人이 돼 아침햇살 같은 法力을 放光할 수 있어야 한다는 禪家의 完壁主義다.
世俗도 마찬가지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듯’이 건방진 꼴불견이 얼마나 많은가. 政界, 財界, 學界에서부터 동네 猝富의 氣高萬丈한 行態에 이르기까지 밤에 쏘다니지 말고, 날이 밝거든 아침에나 돌아다녀야 할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投子山 산그늘에서 오늘도 헤진 누더기를 입고 한가로이 소요(逍遙)하는 投子大東禪師를 상상해본 旅路는 불현듯 이처럼 서울의 現實, 世上의 不愉快한 世態에 대한 批判的인 생각으로 뻗어나고 말았다.
投子禪師는 후양(后梁) 건화 4년(914) 肉身을 거두어 遠謫했다. 그의 몸이 老患으로 衰弱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중(寺中) 대중들이 醫院에 가서 약을 지어다 올리자 약을 斜陽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人間의 4대 肉身은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게 상정(常情)이다. 너희는 염려치 말라. 나는 나대로 생각이 다 있다.”
投子는 이와 같은 마지막 법문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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