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탐스러운 눈이구나![好雪! 片片不落別處]
龐居士가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흰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탐스러운 눈이구나! 송이송이마다 딴 곳에는 떨어지질 않는구나!”
묻는다 : 그렇다면 어디에 떨어집니까?
답한다 : (居士는 質問을 한 禪僧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묻는다 : 함부로 이게 무슨 짓이요?
답한다 : 그러고도 선객(禪客)이라고 낯짝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閻羅大王이 용서를 안 할 거다.
묻는다 : 居士님은 어떻다는 말입니까?
답한다 : (龐居士는 다시 한 번 따귀를 치고 나서 말했다) 눈은 보여도 소경과 마찬가지, 입은 열려 있어도 벙어리와 마찬가지구먼!
龐溫居士가 藥山寺(현 호남성 진시시 상화향 약산촌 소재)에 主席하는 藥山惟儼禪師(751~834)를 찾아가 禪問答을 하고 나오는 길에 전(全)이라는 藥山寺 禪僧과 나눈 거량이다. 藥山寺 方丈 惟儼 禪師는 僧侶 10여명을 시켜 龐居士를 山門까지 傳送하도록 했다. 때는 한겨울이었고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龐居士의 풍전한(風顚漢)다운 行脚을 보여주는 禪話의 하나다. 話頭로는 ‘好雪不落別處’라 한다. 風顚, 風狂, 양광(佯狂)은 멀쩡하면서도 일부러 미친 척하는 禪哲學의 低流를 이루는 禪林의 家風이다. 禪家의 風光은 깨친 사람이 世上을 더 積極的으로 살아나가는 方法이며 現像 打破를 指向하는 强力한 變革의 몸부림이다.
우리는 때로 미친 사람의 말에 ‘正義’와 ‘眞理’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禪은 바로 이런 世俗의 俗說을 십분 活用해 기존 틀을 깨부수려는 革命的 熱情과 佛法의 眞理 具顯을 試圖한다. 그래서 歷代 禪僧 중에는 常識을 뒤엎는 거센 風狂의 바람을 일으킨 괴짜들이 수없이 많다. 龐居士는 歷代 禪林에서 빼놓을 수 없는 風顚漢이다. 風顚漢에서의 ‘한(漢)’자는 치한(癡漢), 취한(醉漢)에서처럼 멸시하는 의미의 ‘놈, 자식’과 같다. 그러니까 風顚漢은 흔히 말하는 ‘미친놈’이다.
龐居士의 行脚에는 늘 風狂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으며 얼핏 보기엔 미친 사람의 짓거리 같은 선화(禪話)를 꽃피웠다. ‘好雪不落別處’도 龐居士 仙風의 核心인 직심(直心)을 잘 드러낸, 거칠고 單刀直入的이며 당당한 風顚의 대용현전(大用現前)이다. 龐居士는 함박눈이 내리는 自然大道를 통해 絶對的 眞理(흰눈)의 靈妙한 活動(떨어짐)은 언제나 당당히 나타나며 우리 周邊에 充滿해 있음을 直指하고 있다. 지도(至道)의 活動은 人間의 속된 法則에 依存하지 않는다. 虛空에서 내리는 눈은 아무 意識作用을 일으키지 않는 무위(無爲)속에서 흩날리는 無秩序를 스스로 克復하고 떨어져야 할 곳에 모두 떨어져 땅위에 쌓인다. 至道의 대용현전(大用現前)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禪에서는 낙처(落處)를 落地, 입지(入地)라고도 하는데 大悟나 오달(悟達)의 境地를 말한다. 그러니까 大悟의 境地라는 것을 눈으론 볼 수 없는 觀念의 世界로 設定하지 않고 지금 여기 눈앞의 大地, 눈이 떨어지고 있는 땅이 곧 眞理의 現場임을 喝破하고 있다.
龐居士의 禪風에 나타나 있는 뚜렷한 特徵의 하나는 “일용(日用)이 바로 眞理”라는 점이다. 이는 馬祖의 제자로서 日常生活 속에서 展開하고 있는 平凡한 일들을 이끌어 가는 素朴한 마음이 곧 眞理의 本體라는 馬祖禪의 ‘平常心是道’를 그대로 繼承한 龐居士의 家風이다.
딴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락별처(不落別處)’는 눈 한 송이 한 송이가 正確하게 제자리에 떨어지고 있는 자연대도(自然大道)를 말한다. 龐居士는 눈송이들이 正確하게 떨어질 곳에 무심히 떨어지는 光景, 마치 意圖的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은 멋진 ‘無爲’에 深趣했던 것이다. 흰 눈으로 뒤덮인 은빛 世界를 바라보며 感歎하는, 文學 少女에게 흔한 抒情的 表現은 결코 아니다. 龐居士의 感歎은 눈송이 하나하나가 내려와 제자리에 떨어지는 光景이 마치 神의 攝理인 듯 神秘롭고 莊嚴한 宇宙 秩序였던 것이다.
‘不落別處’의 이면에 어떤 計巧나 深奧한 哲學이 있지 않나 疑心해서는 안 된다. 오직 自然大道를 喝破한 것일 뿐 아무런 陷穽도, 깊은 思慮도 들어있지 않다. 눈은 어디에 떨어져도 똑같다. 눈이 떨어질 때 이곳이냐, 저곳이냐 하는 分別을 하지 않는다.
禪學의 論理는 世俗에서 활로 과녁을 맞히는 判別法과는 전혀 다르다. 世俗의 弓術은 먼저 과녁을 정해놓고 ‘이것이냐, 아니냐’의 分別로 정부(正否)를 判別한다. 그러나 禪은 아무데나 맞히고서 화살이 꽂힌 곳이 원래 맞히려고 했던 곳이라고 해도 된다. 世俗의 弓術에서라면 操弄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활을 먼저 쏘아놓고 화살이 꽂힌 곳이 바로 맞히려고 했던 과녁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禪의 論理를 眞理와는 거리가 먼 詭辯이라고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눈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論理構造에 속한다. 눈은 떨어진 곳이 바로 떨어지려 했던 곳이다. 여기다, 저기다를 정해 놓은 바 없다. 마치 과녁을 정해놓지 않고 쏜 화살이 아무데나 맞혀도 白發白中 아닌가. 맞힘과 맞히지 못함을 分別하지 않는다는 것은 取捨選擇의 思惟體系와 意識作用이 빚어내는 妄念이 사라졌을 때 到達하는 境地다. 명중與否를 區分하지 않는 것이 바로 無心이다. 눈송이들이 떨어질 場所를 미리 分別해 取捨選擇하지 않는 無心과 無爲는 모두 다 어김없이 떨어져야 할 곳, 있어야 할 자리에 내려앉아 찬란한 은빛 世界를 演出한다.
龐居士가 ‘참으로 좋은 눈(好雪)!’이라고 讚嘆한 것도 화살 꽂힌 모든 곳이 바로 과녁이라는 우스갯소리에 담겨있는 禪의 眞理를 말한 것이다. 그를 傳送하던 약산사 禪客들이 눈이 어디에 떨어졌느냐고 물은 것은 여기냐, 저기냐를 區分하는 分別心의 作用이었다. 따귀는 그러한 分別심에 대한 罰이다. 또 “閻羅大王이 용서를 안할 거다”라고 한 것은 눈앞에 現存하는 存在의 根源, 지도(至道)의 作用을 아직도 보지 못하고 ‘이 뭐꼬[是什磨]’라는 話頭에나 매달려 있는 모든 禪客에 대한 極限的인 叱咤다.
禪家는 存在의 根源, ‘나’라는 人間의 本質, 眞理의 本體를 밝힌 ‘이 뭐꼬[是什磨]’라는 話頭를 지견(知見)의 알음알이로 불어낸 見識을 虛像에 不過한 것으로 치부해버릴 뿐 전혀 認定치 않는다. 따라서 龐居士는 傳送하는 禪客 모두를 장님, 벙어리 取扱해버린다. 두 번째 올려붙인 귀뺨도 역시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分別心과 知見의 妄念을 境界하기 위한 것이다.
雪峰義存禪師(822-908)의 話頭 ‘是什磨’는 韓國 禪房에서 많이 드는 公案의 하나다. 人間 存在의 根源인 道의 本質을 밝히기 위한 話頭다. 現在 中國 禪房들은 이와 같은 種類로 ‘부처를 생각하는 그 사람은 바로 누구인가[念佛是誰]’라는 話頭를 든다. 아예 禪房 壁面에다 ‘念佛是誰’를 써붙여놓고 있다. ‘念佛是誰’는 臨濟宗 禪刹 禪房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話頭인데 祖州禪師에게서 비롯된 臨濟宗의 重要 話頭의 하나다. 潙仰宗의 간판 話頭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다. 그러나 曹同宗, 雲門宗 등은 물론 모든 禪宗 宗派가 共通으로 가장 많이 깨침의 길잡이로 드는 話頭는 ‘念佛是誰’다.
中國의 禪宗語錄들에는 現代語法을 따라 “好雪! 片片不落別處”로 분명히 띄어쓰고 있다. (아! 참으로 좋은 눈이구나, 송이송이 딴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두루마기 자락으로 風狂의 바람을 일으키며 高明한 禪杖들을 찾아 한판 勝負를 벌이는 龐居士의 당돌한 行脚은 그 발길을 멈출 줄 몰랐다.
(百靈和尙이 方丈室에 앉아 있는데 龐居士가 들어왔다.)
묻는다 : (百靈이 龐居士의 멱살을 거머쥐고 말했다) 요즘사람도 말하고 옛사람도 말한 것이 있다. 그러니 거사는 어떻게 말하겠소?
답한다 : (龐居士는 百靈方丈에게 따귀를 한 대 먹였다.)
묻는다 : 말하지 않고는 못 뱃길 걸!
답한다 : 말하면 失手를 凡하게 되는 걸!
묻는다 : 한 대 얻어맞은 報償을 좀 해주어야지.
답한다 : 어디 한 대 때려 보시지!
(百靈은 “그럼 미안!” 이라고 했다.)
龐居士의 行脚 이야기인 이 禪話를 話頭로는 ‘百靈의 뺨을 때리다[打靈一掌]라 한다.
이 禪話는 禪佛敎의 特徵으로 흔히들 말하는 ‘교외별전 불립문자(敎外別傳 不立文字)’에 대해 批判的인 龐居士의 禪風을 잘 드러내고 있다. 龐居士에게는 ‘박사노인(博士老人)’이라는 別名이 붙어 있었다. 이는 당시 禪林에서 龐居士의 博識함을 嘲弄하는 야유 섞인 稱號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한소식 했다는 禪師들도 쩔쩔맬 정도로 禪理에 達通하고 있었고 자신의 得法 境地와 앎을 말로 表現해 見性한 바를 客體化할 수 있는 卓越한 知識人이었다.
百靈이 첫 번째 물음에서 龐居士에게 要求하고 있는 것은 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南泉의 "모름지기 버림받은 사람을 目標로 行動한다[異類中行]“ 등과 같은 最後의 座右銘, 흔히 말하는 말후구(末后句)를 要求한 것이다. 즉 過去와 現在를 超越해 道의 本體를 明明百百히 드러내는 한마디를 일러보라는 要求다.
龐居士가 따귀를 올려붙인 것은 직도(直道), 다시 말해 마음이 곧 道라는 直觀的 通察이 나의 末后句라는 얘기다. 그러나 百靈은 龐居士가 提示하는 直道를 그대로 肯定하지 않고 말로 表現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니까 龐居士가 때린 귀뺨이 아직은 ‘말이 없는 말’로까지 昇華돼 있지 않다는 反縛이다.
龐居士는 이와 같은 百靈和尙의 追窮에 말을 해도, 안해도 양쪽 다 罪를 범한다는 선리(禪理)로 防禦한다. 龐居士가 끝내 道에 대한 言語文字的 表現을 拒否하자 백령은 그렇다면 “나한테 먹인 따귀 한 대는 진정한 도득(道得)에서 나온 게 아니었으니 그 따귀 한 대를 報償해야 한다”고 反擊한다.
龐居士는 여기서 黙言을 하지 않고 따귀를 때린 ‘言語밖의 言語’를 이미 使用한 자신의 失手를 認定하고 “그래 내 한방 얻어맞는 것으로 失手를 報償할 테니 때려 달라”고 얼굴을 내민다. 龐居士가 완전히 窮地에 몰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失手를 솔직히 認定하는 剛直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百靈은 龐居士의 낙기(落機 : 機峰을 잘못 使用해 失敗함)를 看破하고는 “그럼 미안”이라는 한 마디로 問答을 大汎하고 結緣하게 끝맷는다.
禪이 보여주는 멋진 勝負의 世界다. 진 사람은 欣快히 敗北를 自認하고 이긴 사람은 大汎하게 相對의 失手를 용서해 준다. 이렇게 되면 지거나 이겼다는 乘子와 敗者의 分別은 無意味해 진다.
경청도부선사(864-937)는 解脫의 소식을 말로 說明하기 어려움을 “출신(出身)은 오히려 쉬워도 탈체(脫體)는 말하기가 도리어 어렵다”고 했다. 雪峰義存禪師의 제자로 절강성 월주 경청사(鏡淸寺)에서 법화를 폈던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心身을 벗어나는 解脫의 體驗을 얻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境地를 사실대로 表現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참된 깨달음이란 그 깨침의 당체(當體)를 말로 說明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龐溫居士의 禪風이었다. 깨달음은 그것을 말로 表現해 見性을 客體화하는 過程을 통해 이미 깨친 바 자기의 見性과 關聯시켜 再確認할 수 있을 때 眞正한 生命力을 갖는다. 쉽게 말해 자기 깨친 바를 말로 說明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종의 ‘自己檢證’이 없이는 깨달음의 아름다움이나 자기 所有化가 이루어질 수 없다. 龐居士는 이 점을 깊이 認識, 禪林의 禪師들에게 “말을 아끼지 말라[莫惜言句]”라고 거듭 促求했다.
비록 百靈和尙과의 禪問答에서는 이러한 그의 禪理를 제대로 說破하지 못한 채 敗北者가 되고 말았지만 제봉, 보제, 송산, 석림선사 등을 만나 나눈 거량에서 한결같이 “당신의 깨달은 바를 당신 자신의 말로서 말해보라”고 要求하고 있다. 따라서 龐居士는 “不立文字”라는 禪林의 캐치프레이즈에 대해 批判的인 姿勢였다.
이러한 도득(道得)의 檢證을 위한 文字的 說明은 後日 日本 禪佛敎 조동종의 開山祖인 영평도원선사(1200-1253)에게서 철저히 强調됐다. 龐居士는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는 老莊의 ‘득의이망언(得意而妄言)’이나 道는 말로 說明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라는 禪林의 立場과는 달리 解脫의 體驗을 말로 說明해 보이는 ‘檢證’을 강력히 主張했다. 이 점이 바로 龐居士의 獨特한 禪風이기도 하다.
그의 禪風에서 또 하나의 뚜렷한 特徵인 風狂은 때로는 自己 誇示的인 橫暴者的 態度로까지 비쳤다. 그러나 아무도 定常軌道를 벗어난 그의 ‘미치광이 짓’과 만만치 않은 橫暴者的 態度가 ‘잘못’이라는 걸 檢證할 사람이 없었다. 禪林의 方丈들은 그의 거칠고 質朴한 禪氣와 종잡을 수 없는 行動에 ‘미친 늙은이’라는 表現으로 야유를 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감히 그의 見性의 境地를 無視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禪林을 風味한 어떤 禪師보다도 높은 이름을 남겼고 道人의 班列에 자리했다.
率直하고 質朴하면서도 언제나 당당하고 剛直하며 單刀直入的인 그의 家風은 禪理를 꿰뚫는 該博한 知識과 함께 一世를 風味했다. 龐居士는 俗家의 삶에서도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가난해야 한다’ 는 淸貧을 온몸으로 實踐해 보였다.
올려다보는 산이라면서 내려다보다니 [是仰是覆]
묻는다 : 오래전부터 앙산(仰山)禪師를 思慕해왔는데, 막상 와보니 위로 쳐다보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는 건 무슨 까닭이오?
답한다 : [仰山이 불자(拂子)를 딱 세워 들었다.]
묻는다 : 음, 그렇군.
답한다 : 쳐다보는[仰] 거요, 내려다보는[覆] 거요?
묻는다 : (居士가 기둥을 치며 말했다) 마침 사람이 없으니 이 돌 기둥(露柱)에 證言을 부탁해 봅시다.
답한다 : (仰山은 拂子를 내동댕이치고 나서) 당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이 事緣에 대해 마음대로 이야기하구려!
龐溫居士가 仰山禪師를 訪問해 나눈 법거량이다. 話頭로는 ‘시앙시복(是仰是覆)’ 이라 한다. 우선 분명히 해둬야 할 問題가 있다. 여기 나오는 仰山을 一部 著述이나 飜譯書 등에서 스승 潙山靈祐와 함께 潙仰宗을 開山한 仰山慧寂(807-883)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仰山慧寂은 龐居士(704-808)가 入滅하기 1년 전 출생, 1백년의 世代差가 있다. 그리고 龐居士가 거량한 禪師들은 연배가 그와 비슷한 당대의 1급 禪僧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仰山慧寂은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誤謬는 단지 仰山慧寂이 너무도 有名한 禪師라 ‘仰山’하면 潙仰宗 開山祖 ‘慧寂’으로만 아는 斷片的 知識 때문인 것 같다. 龐居士가 거량한 앙산선사는 분명히 仰山慧寂과는 다른 禪僧인데 不幸히도 그의 傳記가 알려진 게 없다.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예는 靑原行思(?-740)와 청원유신(?-1117)을 混同하는 것이다.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산구시산, 수구시수)’라는 話頭를 남긴 宋代 臨濟宗 黃龍波 禪師 청원유신을 6祖 慧能의 兩大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유신선사보다 3백년이나 앞선 靑原行思라고 飜譯하거나 脚註를 달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 역시 ‘청원선사’하면 행사로만 알고 유신이라는 선사도 있었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빚은 어처구니 없는 誤謬다.
龐居士와 仰山의 法去量은 우선 시작부터가 是非조다. 龐居士는 初面에 仰山禪師에게 “이름이 쳐다보는 산[仰山]이라해서 思慕해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엎드려 있는[覆] 시시한 禪客이구먼 그래!”라고 비꼬면서 부아를 돋운다. 비꼬는 質問을 던져 仰山을 한번 흔들어 놓고 어떻게 나오는지 그의 禪機를 엿보자는 속셈이다. 仰山은 佛子를 세우는 行動言語로써 ‘올려다보느냐[仰]’ ‘내려다보느냐[覆]’의 質問 自體를 떨쳐버리면서 “이것이 바로 어떤 것에도 執着치 않는 공심(空心)의 佛道를 터득한 仰山이라는 存在”라고 提示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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