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임제록(臨濟錄)

4. 사료간(四料揀)

slowdream 2007. 9. 18. 14:06
 


사료간(四料揀)


임제스님이 저녁법문에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때는 사람(주관)을 빼앗고(부정함), 경계(객관)을 빼앗지 않으면, 어느 때는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으며,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고,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을 빼앗고 경계를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 떠오르니 땅에 비단을 편듯하고, 어린아이의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명주실처럼 희구나.”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왕의 명령이 이미 떨어지니 천하에 두루 시행되고, 변방을 지키는 장수는 전쟁을 할 일이 없어졌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병주와 분주는 소식을 끊고 각기 한 지방을 차지하였다.”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왕은 보배궁전에 오르고 시골 노인은 태평가를 부른다.”


◎ 첫째, 주관을 부정하고 객관을 살리면, 다시 말해 나를 완전히 비우고 상대를 모두 인정해 주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다. 아주 좋은 세상이다. 살 만한 세상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막 태어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보는 듯하다. 거기에 무슨 시시비비가 있겠는가.


둘째, 남을 부정하고 나를 내세우면 일인독재다. 나라에는 임금 한 사람이 있고 절에는 주지 한 사람이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요순시대에는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왕의 명령 하나로 전쟁까지도 멈춘 상태다.


셋째, 너를 부정하고 나를 부정했을 때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국민은 국민이다. 각자 따로따로 유아독존이다. 그래서 변두리지방에서는 중앙과 절교하고 딴살림을 차리는 꼴이다. 조정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꼭 나쁜 법은 아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다.


넷째, 너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하므로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격이다. 그래서 왕은 궁중에서 정치를 잘하고 백성은 백성대로 태평가를 부른다.


네 가지가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사람을 제도할 때 근기와 상황에 맞춰서 법을 쓰는 표준이 된다. 명안종사에게 지나치게 일구법문이나 방, 할 같은 것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다. 만약 한결같이 최상승법문만을 거량하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랄 것이다. 아마도 고용을 해서 풀을 뽑아야 하리라. 그러나 요즘은 너무 지나치게 세속적인 대중들의 요구를 따르고 있다. 비불교적 요소가 너무 많다. 불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너무 지나치다. 잘 살펴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출처 : <임제록 강설>(무비스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