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선어록 독법의 문제점

slowdream 2007. 9. 20. 15:57
 

선어록 독법의 문제점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졸업. 동경대학교 대학원 중국철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철학과 부교수. 저서로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 <선학사정>(공저) 등이 있다.




1.안개속의 선어록


자욱한 안개가 당송 시대에 만들어진 선어록을 휘감고 있어서 선어록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다. 그 안개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은 ‘불립문자’라는 안개이다. 즉, 선이란 언어와 문자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안개는 선을 수행하는 이들은 물론 선어록을 읽는 이들을 완전 무식쟁이로 만들기 십상이다. 그 다음으로 지독한 안개는 선어록에 나오는 구어(口語)와 속어(俗語)이다. 선사들은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생생한 말로 대화를 한다.


그런데 저 먼 나라에서 또 외국어로 쓰여지고 게다가 세월도 1,00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에는 삼척동자도 아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이것말고도 더 고질적인 안개가 있다. 선은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


어떤 질문자가 와서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부처가 어디 있느냐?”라든가, “불교를 배우러 왔습니다.” 하면, “불교가 뭔데?” 등으로 상대의 말을 잘라 버리는 것이 선의 진수라는 잘못된 착각이 선의 제 모습을 가리는 안개이다. 끝으로 하나를 더 든다면, 선사상을 신비화 내지는 절대화시키는 것이다.


신비화 절대화는 선불교에서 제일 싫어한다. 절대의 타파와 신비를 까발리려고 선불교 운동이 일어났다. 처음의 안개는 ‘불립문자’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생긴 것이고, 두번째의 안개는 당송 시대의 말을 몰라서 생긴 안개이고, 세번째의 안개는 남을 부정하면 제가 제일이 된다는 착각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선어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안개를 걷어내야 한다.


2. 안개의 정체


1)당송 시대의 중국어


선문답으로 유명한 “차 한 잔 들고 가시오.”라는 말이 있다. 찾아온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것은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대접이다. 그러면 이 말을 한 당나라의 조주 선사도 이런 뜻으로 말했을까? 결코 아니다. 원문은 “喫茶去”인데, 이는 선불교의 핵심 사상이 무엇이냐고 묻는 객승에게 한 대답이다. 이 말의 뜻은 “(저리 가서) 차나 마셔라.”이다. 이 말의 속뜻은 불교의 진리가 어디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런 것은 내가 말해줘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직접 체험할 너의 몫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말을 우리 말로 노골적으로 바꾸면 ‘냉수 먹고 속 차려라’ 또는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 차려!’이다. 찾아온 손님에게 녹차를 대접할 때 하는 말은 “且坐喫茶”이다. 이런 잘못은 중국어의 “∼去”의 용법을 몰라서 생겼다.


이 뭣고’라는 화두만 해도 그렇다. 자나깨나 이 화두 하나를 들어서 그것만 깨치면 모든 화두가 확 뚫려 깨닫는다고 하는 선승들이 제법 많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것은 선문답을 신비화시키고 절대화시킨 데서 온 잘못이다. 이 말의 원문은 “是什摩"인데, 영어로 하면 “What is this?”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는 말이다. 그것이 경상도식 사투리로 “이 뭣고?”가 된 것이다 전라도식으로 하면 “이것이 뭐시당가?”일 터이지만. 그러니 여기에 뭐 복잡한 설(說)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는가? 선문답을 신비화시키거나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


선문답도 일상언어로 주고받은 대화이다. 위와 같은 정도는 그래도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 설사 잘못 이해했더라도 수행을 그르치게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수행과 관계되는 구절을 제멋대로 읽고 따라하다가 낭패를 보는 것이다. 좀 전문적이지만 임제 선사와 어떤 강사 스님과의 대화를 보자.


有座主問, 三乘十二分敎豈不是明佛性. 師云, 荒草不曾鋤.

主云,  佛豈賺人也. 師云, 佛在什麽處.

主無語. 《臨濟錄, 上堂》


어느 강사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가 어찌 불성을 밝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임제 선사가 대답했다.

“거친 풀밭에는 호미질하지 않는 것이니라.”

강사 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처님이 어찌 사람을 속이셨겠습니까?”

그러자 임제 선사가 말했다.

“부처님이 어디 있느냐?”

이쯤 되자 강사 스님은 말이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거친 풀밭에는 호미질하지 않는 것이니라.”이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제대로 된 번역은 “(3승 12분교라는 그 따위 연장을 가지고는) 번뇌의 거친 풀을 제거한 적이 없다.”이다. 이렇게 잘못 번역하는 원인은 ‘不曾’의 어법을 제대로 모른 데서 온 것이다.


‘不曾’은 ‘不爭’과 같은 뜻으로 경험·사실·행위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부사어로, 현대 중국어의 ‘沒有’에 해당한다. 3승 12분교는 불교 경전의 장르를 말한 것으로 경전 전체를 뜻한다. 이 말은 경전 가지고는 우리들의 깨달음을 계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다음 질문이 따라 붙었다. “부처님이 어찌 사람을 속이셨겠습니까?”라고 다시 공격해간다. 이 공격에 물러설 임제 선사가 아니다. “그럼 부처가 있으면 데려와 봐!” 그러니까 각자의 번뇌는 당사자 본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남(=부처)에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니니, 네가 주체적으로 몸소 해결하라는 게 임제 선사의 의중이다. 선문답은 동문서답이 아니다.


대화이기 때문에 너절한 주변 설명 다 접어두고, 간결한 말로 그 상황에 딱 맞게 주고받은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언어 쓰임이 달라지고 상황마저 사라져 문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모든 독서가 그렇듯이 선어록을 읽으려면, 당시의 언어와 상황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 입에 맞는 부분만 똑 따다가, 거기에 어줍잖은 이론을 보태서 창작(?)을 하는 불교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 창작을 자기의 창작이라고 하면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당나라의 어떤 선사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하여, 권위를 끌어들여 제 말을 논증하려는 것이다. 당나라의 백장스님에게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 나라 학계나 사회에서 ‘노동’에 관한 얘기만 나왔다 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백장 선사가 제자들과 한 말이면 전후 상황 가리지 않고 모두 ‘노동’ 문제에 끌어 붙인다. 말도 안 된다.


師謂衆云, 有一人, 長不喫飯, 不道饑. 有一人, 終日喫飯, 不道飽.

衆皆無對. 雲巖問, 和尙每日區區爲阿誰.

師云, 有一人要. 巖云, 因什�不敎伊自作. 師云, 他無家活.(《전등록》 권6, 백장조)


백장 선사가 여러 중들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고파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종일 먹고도 배부르다 하지 않는다.”

이 말끝에 여러 중들은 아무 대꾸도 못했다. 이에 운암이라는 제자가 백장에게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날이면 날마다 자질구레하게 누구를 위해 말씀을 그리도 많이 하십니까?”

백장 선사가 말했다.

“딱 한 명 있지!”

운암이 여쭈었다.

“그 사람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시지요.”

백장 선사가 말했다.

“그 사람은 제 집안에 살림살이가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놈이라서 내가 매일 구구하게 말하는 거야.”


자신 속에 모든 보배가 있는데도, 그것은 내팽개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경전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주워먹는 수행자를 나무라는 것이다. “네 안을 들여다봐라. 너는 우리가 조상으로 삼는 부처님과 비교해서 조금도 모자랄 게 없어!” 더 먹어 배 채우려고 허덕이지 말라는 경책이다. 네 자신을 좀 믿으라는 간절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불교학 교수이자 스님께서 ‘他無家活’을 “그는 생활할 수가 없어!”라고 번역하고, 설상가상으로 ‘每日區區’를 ‘노동’하는 모습으로 번역한다. 이래서야 선어록이 제대로 읽힐 리가 없다. 언어의 안개를 걷어내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선사들의 생동감 있는 삶의 체험을 맛볼 수 있다.


2) 불립문자


일반적으로 선(禪)이라 하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이심전심’의 고사가 대변하듯 언어나 문자로는 안 된다고 한다. 석가세존이 꽃을 든 사연을 가섭만이 알아채고 미소짓듯, 진리는 그렇게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란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선어록을 우리 말로 해석한다든지 또는 화두를 풀이하면 큰일나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당시 선풍을 일으켰던 당사자들도 그랬을까? 아니다. 몇 가지 측면에서 증명해보자. 첫째, ‘선의 체험’과 그것을 체험하게 된 상황을 전하는 ‘이야기’는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 모음집인 선어록과 ‘선의 체험’을 혼동한다.


11세기 중국 송나라 시대에 선사들의 이야기 모음집인 《경덕전등록》이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책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선사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것을 어찌 책으로 만드느냐는 비난이다. 책 만드는 데에 참석한 장락정앙(長樂鄭昻) 스님은 이 비난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이 아무리 전함 없이 전했다 해도, 전해주는 상황이나 연유를 몰라서야 된단 말인가?” 선사들이 깨닫게 된 상황과 전후 사연은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연을 모은 것이 선어록이고, 그런 선어록 모음집이 《경덕전등록》이다. 깨닫기까지의 수행과, 깨달은 순간들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 선어록이다. 둘째, 중국의 조사들은 ‘선의 체험’을 일상 생활 속에서 드러내 보임은 물론, 끝까지 언어로 표현하려 애썼다. 물론 선사들은 ‘선의 체험’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인식을 분명히 한 위에 그 체험에 딱 들어맞게 표현하려고 온갖 애를 썼다. 그러니까 상대가 어설픈 말로 어물거리면 몽둥이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깨쳤다는 유명한 중국 경청선원의 도부(道?{:864∼937)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번뇌로부터 벗어나기는 그래도 쉽지만, 번뇌에서 벗어난 체험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말로 표현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표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고백하는 말이다. 이 어려움을 뚫고 나온 대화들이 훗날 《벽암록》에 기록된다. 허튼 말이 있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선사들은 자신의 체험을 고스란히 언어나 말로 표현해 보려고 한다. 시인이 체험만 하고 시를 쓰지 않으면 그게 어디 시인인가?


물론 선종에서 말을 제한적으로 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실은 도를 설명하는 논법일 뿐이다. 약산에 살던 유엄(惟儼:751∼834)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말을 아주 끊을 수는 없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체험은 여하튼 표현되어야 하고, 그리하여 그 표현된 것에 의해 당사자의 체험이 제대로 되었는가 검증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쳤다고 떠들어대는 미친 놈이 많이 나온다. 그러니 ‘불립문자’라는 방공호 속으로 숨어서도 안 된다. 셋째, 깨달음이란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의 법은 스스로 깨치는 것이므로 남에 의지해서 얻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깨닫는 일이야 주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을 유발하는 계기는 있어야 한다. 선어록은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선어록을 읽다 깨친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불경을 보다 깨친 사람은 더 많다. 살아 계신 석가모니를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이, 깨달은 어른들의 말씀을 적은 책을 보지 않고 어떻게 깨칠 수 있을까? 책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책을 보면서 자신을 관조하다가 깨친다. 경전도 그렇고 선어록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지도책이다.


지도책은 해독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하듯이, 선문답도 해독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끝으로, 현재의 수행자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수행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사하느냐는 것이다. 즉, 육조혜능을 할아버지로 삼아 수행하는 선승이라면, 조계의 선풍을 담고 있는 선어록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그것을 이정표로 수행의 길을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이정표가 바로 선어록이다. ‘화두’를 왜 ‘공안(公案)’이라고 불렀겠는가? ‘공안’이란 말은 원래 법률용어로서, 이른바 관공서에 비치된 판례 조문이다. 과거의 판례를 참조하여 지금의 문제를 푸는 데에 판례집의 쓸모가 있다. 선수행의 판례집이 바로 선어록이다.


선사들이 말하는 1,700 공안도 과거의 믿을 만한 선사들이 몸소 실천한 수행과 깨달음의 선례를 모아 놓은 판례집이다. 판례집은 해독되어야 제 몫을 한다. ‘불립문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강을 건너기까지는 뗏목에 의지해야 하듯, 지혜가 담긴 말이나 문자의 힘을 빌어야 한다.


3. 선어록이란 무엇인가?


1) 불교 경전의 갈래

흔히들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전은 신약과 구약 두 종류뿐인데, 불교의 성전은 왜 그렇게 많으냐고 한다. 그 차이는 불교에서는 부처가 한 말은 물론 그 제자들이 한 말도 성전 속에 넣어서 계산한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한 말을 이해하기 쉽도록 쓴 이른바 자습서(혹은 참고서)도 성전에 넣어서 계산한다. 이렇게 잡다한 불경들의 분류를 연구하는 것이 불전 목록학이다. 이 목록학을 바탕으로 대장경을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어록은 무엇인가?


부처님을 믿고 수행하는 선사 스님들의 말이나 편지, 일생을 살면서 겪었던 일화, 죽었을 때에 남이 써준 비문 등을 모두 합쳐서 ‘선서(禪書)’라고 부르는데, 그 ‘선서’ 중에서 ‘어록’의 형태를 취한 것을 선어록이라 한다. 그러면 먼저 ‘선서’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그것들은 어떻게 분류되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현재 학계에서는 이렇게 분류한다.


① 종의(宗義) ② 사전(史傳) ③ 어록(語錄)④ 명(銘)·잠(箴)·가송(歌頌) ⑤ 송고공안(頌古公案) ⑥ 선문학(禪文學)⑦ 청규(淸規)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면 선서가 8만이 넘는 대장경 가운데 어디에 끼어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목록’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과 《만자속장경(卍字續藏經)》의 목록이다.


그리고 각종 대장경의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25종장경목록대조고역(25種藏經目錄對照考釋)》과 《불교총서(7종)색인(佛敎叢書(七種)索引)》(小關貴久, 名著普及會, 소화 59년)이다. 후자의 경우는 한역 장경은 물론 일본 번역 대장경도 수록되어 있고, 영인 대장경의 페이지 수를 기준으로 되어 있어 열람에 편리하다.


2) 선어록의 형태


경전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강사 스님들이 교학의 용어와 경전의 행상(行相)을 이용하여 불교의 핵심을 밝히려 노력한다면, 선사 스님들은 실제 수행에서 생기는 문제를 일상 회화를 통해서 설하게 된다. 선승들은 자신이 법상에 올라 이른바 상당설법(上堂說法)을 한다. 이와 함께 수행자들의 조참(朝參)이나 만참(晩參)에 ‘시중(示衆)’을 하거나, 문답을 통해 상대의 견지를 탐사하는 감변(勘辨) 등을 한다.


이런 것들이 본인 내지는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선어록이다. 선사들도 초기에는 물론 강사들처럼 정형화된 틀을 고수하지는 않지만, 경전을 상당히 많이 인용하고 있다. 불전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선서를 논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풍에 변화가 일어난다.


당나라 말기를 전후로 하여 경전 인용의 빈도가 줄어든다. 이 점은 후대의 선서들이 경전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것을 상기할 때에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여하튼 이렇게 선어록이 편집되고 나면, 그 선어록을 교과서로 삼아 선사들이 강의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송고(頌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설두(雪竇:980∼1052) 스님의 《설두송고(雪竇頌古)》이다.


송고란, 말 그대로 옛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기연들을 운문체로 ‘코멘트’한 것이다. 송대에 이르러서는 ‘송고’를 ‘코멘트’하면서 선 수행자를 지도하는 이른바 ‘평창(評唱)’이라는 강의 형태가 생긴다. 대표적인 예로 원오(?悟:1063∼1135) 스님의 《벽암록》이라든가 만송(萬松:1166∼1246) 스님의 《종용록》 등이다. 한편, 개별적인 선서의 출현과 더불어 족보(=선종의 역사서)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들이 바로 ‘등사(燈史)’로서 《조당집(祖堂集)》이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이다.


여기에서 다시 중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각 선사들의 이야기를 어떠한 순서로 편집 정리하느냐이다. 《조당집》이나 《경덕전등록》만 하더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그 배열에는 상당한 특색이 있다. 즉, 혜능 스님 이하의 배열에 있어서 《조당집》은 청원행사(靑原行思) 스님의 계열을 먼저 하고, 《경덕전등록》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의 계열을 먼저 기술하는 점이다. 이 점은 결국 찬술자의 족보 의식과도 결부되는 것으로, 선종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현상은 《오등회원(五燈會元)》이나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등에 가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3) 선종의 족보


우리가 알고 있는 당나라의 선승으로 달마 스님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달마 스님은 석가모니로부터 쳐서 28대 조사이고, 중국선종의 시조라고 한다. 이 달마 스님으로부터 해서 여섯 대를 내려와 그 정통을 이은 분이 제6대 할아버지, 즉 6조 혜능이다. 그러나 이것은 날조된 족보이다. 실제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주(周)나라의 종법제도(宗法制度)가 만들어낸 중국적인 각색이다.


더구나 5조 홍인 선사의 법맥은 후세 사람들이 북종이라고 깔아 뭉개는 대통신수에게 갔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계통을 뒤집어 놓은 사람이 하택신회(荷澤神會)이다. 신회 선사 자신이 7대 조사가 되기 위해서 자기 스승인 혜능을 6대 조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세상은 묘하게도 선종 족보의 정통성은 신회 선사 쪽으로 가지 않았다.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가 나와서 자기의 스승 남악회양 선사를 추켜세우기 위해서 혜능의 정통제자는 남약회양이고, 남악회양의 정통 제자가 자기(=마조도일)라고 했다.


그리하여 하택사에 살던 신회 스님을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인다. 이런 전통이 굳어져 우리 나라에 지금도 “신회의 무리들은 절 문안으로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후손이 못나면 조상을 욕되게 한다. 그리하여 뒷날 선종사는 마조도일 계통을 최고로 쳤다. ‘붙인 일가’가 정통이 된 셈이다. 세간에도 족보 없는 사람들에게 쌀 몇 말 받고 족보에 넣어주는 것 있지 않은가?


이렇게 붙인 일가가 대종손 노릇을 한 것이다. 아니! 혜능을 6대 조사로 옹립한 사람이 누군데, 신회가 살아서 이 사실을 듣는다면 통탄할 일이다. 선종의 계보도 역사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가 보다. 그러나 이렇게 날조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배경을 무시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후세에 날조된 족보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이것이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4. 선어록을 읽기 위한 공구


그러면 선어록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탄광에서 석탄을 캐기 위해서는 여러 장비가 필요하듯, 선어록 읽는 데에도 이런 장비가 필요하다. 선어록이 중세중국어로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어록의 해석도 이런 언어의 역사성 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특수성이 강한 선어록이라 하더라도 중국 문헌의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므로, 선어록만의 독특한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선어록도 역시 당시의 언어 습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 한 마디로 말해서 중국어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문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단어와 숙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공구서이다. 우선 선어록은 당송시대의 구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해주는 문법책을 읽어두어야 한다. 필독 도서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太田辰夫 씨의 《中國語歷史文法》(江南書院, 1957년 초판, 朋友書店, 1981년 재판), 《中國歷代口語文》(太田辰夫, 朋友書店, 1957년, 1982년 개정), 《中國語史通考》(太田辰夫, 白帝社, 1988년). 우선 인명과 지명을 조사하는 데 쓰이는 도구를 보자. 鈴木哲雄 씨의 《中國禪宗人名索引》(東京, 其弘堂書店, 소화50년). 范祥雍씨가 點校한 《宋高僧傳》(북경, 중화서국, 1988년)에 실린 인명 색인. 그리고 한글대장경을 대본으로 한 인명색인으로는 《경덕전등록인명색인》(신규탁, 서울, 필사본, 1988년)이 있다.


이와 함께 선승들은 당시의 지식 관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데, 그 관료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唐五代人物傳記資料總合索引》(중화서국, 북경, 1982년)을 이용하면 좋다. 한편 지명의 위치 확인에는 《中國古今地名大辭典》(商務印書館, 1933년)을 비롯하여, 《선학대사전》의 부록으로 발행된 지명 색인과 지도를 들 수 있다.


이보다 좀더 자세한 지도로는 《中國歷史地圖集》(潭其 주편, 상해, 지도출판사, 1982년) 8권 시리즈가 좋다. 이와 함께 선어록에는 각 지방의 풍물과 유행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방지(方誌)를 봐야 한다. 중국의 경우는 일찍부터 지방지가 발달되어 각 지방의 인물과 풍물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이 방대한 지방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공구서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우선 길잡이가 되는 것이 《中國方誌辭典》(杭州, 浙江人民出版社, 1988년)이다. 다음은 모르는 낱말 뜻을 알기 위한 사전이 필요하다. 《韓漢大字典》(이상은 감수, 민중서관)과 《中韓辭典》(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9년)을 우선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더 정확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佩文韻府》 및 《經典纂詰》의 성과에 힘입은 《大漢和辭典》(諸橋轍次, 東京, 大修館書店)이 좋다. 이와 더불어 최근 대륙에서 심혈을 기울여 간행한 《漢語大詞典》(상해출판사, 전11권)과 《漢語大字典》(사천사서출판사 호북사서출판사, 전8권)이 아주 좋다.


그 다음에는 불교 사전이 있다. 교리에 관한 용어는 《불교사전》(이운허, 서울, 법보원, 1960년)과 《佛敎語大辭典》(中村元, 東京書籍, 昭和 56年), 《佛敎辭典》(岩波書店)이 좋다. 선에 관한 것으로는 《禪學大辭典》(駒澤大學), 《선학사전》(일지·이철교·신규탁 공저, 불지사)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구어와 속어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공구서는, 우선 《선학대사전》(駒澤大學, 대수관서점, 昭和 53년, 동경)을 들 수 있다. 그리고 《禪語辭典》(古賀英彦, 京都, 思文閣出版, 1991년), 《禪宗著作詞語匯釋》(袁殯, 江蘇, 강소고적출판사, 1990년), 《禪錄慣用語俗語要典》(柴野恭, 京都, 思文閣出版, 1980년) 등이 있다. 또 선서 번역에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宋元語言詞典》(龍潛庵, 상해사서출판사, 1985년, 상해)이 있겠고, 신규탁의 〈중국선서의 번역을 위한 문헌학적 접근(2)〉《백련불교논집》(제2집)이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공구서들이 쓰이는데 그에 대한 소개는 필자가 쓴《백련불교논집》(제1집)에 실린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5. 선어록을 구성하는 기초 논리


그러면 이상의 연장을 사용해서 선어록을 읽어보았을 때 그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에 입각한 불성(佛性)사상이고 하나는 각자가 주체적으로 깨쳐야 한다는 것이다.


1) 진여연기론에 입각한 불성사상


모든 사람의 본래 바탕은 완전하고 온전한 것인데, 번뇌와 욕심이 이것을 얽어매어 자유를 방해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래성을 단박에 자각하여 그 본래성에 내맡겨 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사상의 핵심 논리이다. 사람의 본 바탕을 불경에서는 ‘진여’라고 한다. 진여에는 인연과 결합하여 변화하는 작용과, 어느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인연과 결합하여 변화하는 진여의 작용 때문에 사람마다 번뇌의 차별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불변하는 진여의 작용성은 불생불멸한다고 한다. 이 불생불멸하는 진여의 작용성을 단박에 자각하는 것이 돈오이다. 그리고 진여를 가리는 번뇌는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므로 그 자체는 무상하다. 그것은 결코 자기 동일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무심(無心)의 상태가 되면 저절로 소멸한다는 것이다. 선종은 진리론으로는 진여연기론, 수행론으로는 돈오무심(頓悟無心)을 축으로 해서 전개된다.


그러면 진여란 말을 좀더 분명하게 밝혀보자. 진여(眞如, tatha?a?)의 말뜻은 ‘있는 그대로의 그 무엇’이다. 매우 난해한 말이지만, 이것은 언어나 사유로 그리고 행위를 매개로 하여 뭐라고 규정하기 이전에 우리 앞에 즉자적으로 주어지는 그 무엇을 말한다.


이것은 행위·언어·사유의 규정방식에 따라 우리에게 인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타자(絶待他者)라기보다는 연기에 의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규정방식에 의존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규정방식이 무수한 만큼 진여가 드러나는 양태도 무수하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의 선사들은 진여를 몸소 깨칠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수행의 당사자가 자기만의 주체적 행위·언어·사유로 그것을 손상 없이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2)당사자 자신의 체험이 중요하다


깨달음을 중시하는 전통은 《육조단경》에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선종의 표어처럼 얘기되는 ‘직지인심(直指人心)’과 ‘견성성불(見性成佛)’도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송대에 이르러 《창랑시화(滄浪詩話)》의 저자 엄우(嚴羽)는 이것을 ‘오묘한 깨달음(妙悟)’이란 말로 집약했다. 그는 당시 지식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논의되는 선불교의 이론에 입각하여 한·위진·성당(盛唐)의 시를 평론한다.


그러니까 선의 이론을 기준으로 잘된 시와 그렇지 못한 시를 품평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大抵禪道惟在妙悟, 詩道亦在妙悟. …(인용자 생략)… 惟悟乃爲當行, 乃爲本色.《歷代詩話》(何文煥 編訂, 臺北, 藝文印書館, 民國63年, 442쪽)

대저 선을 하는 바른 길은 오직 오묘한 깨침에 있고, 시를 짓는 바른 길도 역시 오묘한 깨달음에 있다. …(인용자 생략)… 생각건대 깨달음이란 당사자가 해야 하는 것이고, 꾸밈 없이 해야 한다.


이 인용문에서 우리는 송나라 시대에 지식인들이 선의 요체를 오묘한 깨침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이 구절에 주목하여 인용한 이유는 이렇다. 가능하면 당나라 시대와 가까운 시대 사람들의 평가를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송대 지식인이 공인한 오묘한 깨침 중에서, 그것은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입장과 본색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에 초점을 맞추어 임제 선사의 경우를 예로 보자. 임제 스님은 우리 선불교계에서는 모두들 높이 받든다.


임제의현 선사가 활동하던 때는 당나라 말기로 매우 혼란스런 시기였다. 안으로는 환관의 발호와 세습관료에 의해 조정은 흔들리고, 밖으로는 번진(藩鎭)으로 불리는 군벌들이 할거하여 서로의 세력을 다투는 시대이다. 이런 시기를 맞이하여 많은 젊은이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임제는 단호하게 자기 자신을 믿을 것을 강조한다. 《임제록》을 읽다보면 언제나 임제는 강렬하게 말한다.


수행자 여러분! 그대,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그대, 우리들이 조상처럼 섬기는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건만 믿지 못하고 밖으로만 향한다. 아서라.


수행자 자신이 부처와 다름이 없다는 말은, 마조 선사 이래 전해오는 ‘마음이 부처’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임제 선사는 이 말을 현장감 있고 박진감 있게 자신의 체험을 실어서 당시 수행자들에게 외친다.


자신의 본래성은 부처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임제 선사가 보기에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필요한 급선무는 이런 자신감을 갖는 거였다. 임제 자신이 보기에 그대들은 석가모니와 다를 바가 없으니, 이 순간에 그대들의 갖가지 작용들 속에 모자라는 게 무엇이냐고 용기를 북돋운다. 임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시방 삼세 부처님과 조사들도 오로지 법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오셨고, 지금 참구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도 법을 구하기 위할 뿐이니, 법을 얻어야 비로소 끝나고 얻지 못하면 예전대로 다섯 갈래의 윤회에 떨어진다.

무엇이 법인가? 법이란 심법(心法)을 말한다. …(인용자 생략)…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내가 법을 설할 때에 무슨 법을 설하는가? 마음 자리의 법(心地法)이다.


그러면 이 ‘심지법’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하지 말라고 한다. 불법은 애써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임제 선사는 밖에서 구하려는 이들을 염소나 양이 입에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안에 무엇이 있다고 해서도 안 된다고 경계한다.


대덕들이여! 내가 밖에 법이 없다고 말하면 공부하는 이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안으로 알음알이를 내어 벽을 보고 앉아서 위 잇몸에 혀를 찰싹 붙이고 꼼짝 않고 담담히 앉아 있다. 그리고는 이것이 조사 문중의 불법이라고 여기는데 정말 잘못이다.


철저한 주체성에 입각한 임제 선사로서는 움직이지 않는 청정의 상태에도 안주하지 않는다. 부처를 완전한 경지라고 여기지 말라는 충고도 이런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면화되어 고정되면 그것은 도리어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인(無依道人)을 달아매는 말뚝이 되고 만다. 임제선에서는 그런 부자유는 용인되지 않는다.


임제가 하북부의 주지사인 왕상시와 관료들 앞에서 처음 개당설법을 하면서 “허공에 말뚝 박지 말라.”고 고함을 친 것도 이런 기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부처를 내면화시키고 절대화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 당나라 말기의 젊은 선승들은 자신감을 잃고 부처에 의지하고 유명하다는 종사들에 의지하여 이리저리 설법을 들으러 몰려 다녔다. 이들을 향해 임제는 말한다.


그대들은 부산하게 제방을 쏘다니며 무엇을 구한다고 발바닥이 판대기가 되도록 밟고 다니느냐? 구할 부처도 없고, 이룰 도도 없고, 얻을 부처도 없다.


임제 선사는 남의 말 듣기보다는 당사자 본인이 철저하게 깨칠 것을 강조한다. 임제는 또 이렇게 말한다.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법다운 견해를 터득하려면 남에게 끄달리지 않기만 하면 된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주치는 대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해진다. 도를 배운다는 제방 납자들치고 사물에 의지하지 않고 나온 사람이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당시 선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임제록》의 표현대로 ‘경박스럽게 제방의 장로들에게 인가를 받아가지고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 나불거리는’ 무리들에게 하는 경고이다.


바른 안목과 자신의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지, 그 어떤 외부적인 권위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임제는 자신이 처음에는 율종에 뜻을 두고 그 뒤에는 경학에 뜻을 두었지만 이게 모두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도 닦는 길을 택해 비로소 안목이 분명해졌다고 술회한다.


출처 http://budrevi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