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의 향기]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는 원래 송광산 조계사였던 산과 절이 이름을 맞바꿨다. 이곳에서 고려시대 보조국사 목우자(牧牛子) 지눌스님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열었고,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근세에는 효봉스님, 구산스님이 억불정책으로 끊겼던 조계선풍을 되살려내 종단의 기둥으로 삼았다.
송광사는 이처럼 산보다 절이, 절보다 스님들이 더 우뚝한 ‘승보사찰’이다. 해인총림(해인사), 영축총림(통도사), 고불총림(백양사), 덕숭총림(수덕사)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총림의 하나인 조계총림을 이루고 있다.
오늘의 조계총림을 이끄는 이가 방장 범일(梵日) 보성(菩成·80) 스님이다. 구산스님의 수상좌로 효봉스님을 마지막까지 시봉했던 효봉-구산 법맥의 장자다. 주석처는 송광사 산내 암자인 삼일암. 사시사철 조계의 계곡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음력 사월 그믐날인 지난 14일. 스님은 보름째 하안거 결제중인 선방 스님들과 강원 대중들을 모아놓고 법문을 했다. 비가 찔끔거리면서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스님네들의 공부가 밋밋하니까 비도 찔끔찔끔 오는 모양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두 게을러서 마지못해 할 뿐이잖어. 수행은 주고받는 게 분명한 거여. 터럭만큼도 거짓이 없어.”
노장은 서릿발 같은 일갈로 스님들을 경책한 뒤 부산으로 향했다. 초하루는 송광사 부산분원인 승학산 관음사에서 일반 불자들에게 법문을 하는 날이다. 부산 사하구 당리동 관음사 주지실인 ‘승학산방’에서 노장을 만났다.
“큰스님은 무슨. 불알이 크나, 대갈빡(머리)이 크나. 수행이 커야 큰스님이지. 병치레나 하면서 때가 되면 밥 얻어먹는 늙은이에게 들을 말이 뭐 있어.”
스님은 “요즘 이빨 치료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이 없고 시력과 청력도 좋지 않다”고 하면서도 불청객을 내치지는 않는다.
“요즘 종교는 밥장사여. 불교든 기독교든 시주 받아 불사하고 헌금 받아 교회나 짓고 있잖어. 탐심을 못버린 스님들이 또 돈 빼돌려서 처벌받고. 스님이 세상 잘못된 걸 일깨워야 하는데 거꾸로 됐어. 고려시대 때 불교가 타락해 보조스님이 정혜결사를 한 거 아녀? 오히려 조선조 유생들에게 핍박받을 때가 수행하기는 더 좋았을 거여.”
첫마디가 스님들의 수행태도에 대한 일갈이다. 옛날 사투리가 심해 말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승속이 모두 욕심덩어린 거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조절할 줄 알아야지. 먹는 것을 조절하면 건강하게 몸을 잘 다룰 수 있고, 절제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알았어?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는 것이 큰 공부여.”
스님은 연신 “안 그래?” “알았어?”를 후렴처럼 넣으며 말을 잇는다. 스님은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 대만의 성운대사 등과 오랫동안 깊은 친분을 맺고 있다. 달라이라마를 만나기 위해 다람살라를 두 번 방문했다. 틱낫한 스님과 중국의 불원선사를 국내에 초청한 이도 보성스님이다.
“틱낫한 스님이 송광사를 방문했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승용차 안타겠다는 거여. 그렇게 진실하니 서양에서도 수많은 지성인들이 따르는 거지. 그분들이 대단한 큰스님이지. 남방불교든 북방불교든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똑같은 목적으로 수행하는 거여.”
보조스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잇고 있는 송광사 방장이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목우가풍’은 무엇일까. 스님은 “한 마디로 스스로 코를 꿰어 ‘나’를 길들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어른스님들은 말과 실천이 가지런해야 한다고 했어. 그걸 등행등지, 행지라고 그래. 말이 앞서도, 행동이 앞서도 안돼. 그런데 그게 목숨 걸 만큼 어려워. 그분들은 행지를 하나로 갖춰 일대사를 해결한 분들이었지.”
송광사에는 모든 스님들이 예불, 울력, 공양을 함께하는 전통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송광사 최고 어른인 방장스님도 직접 채소밭에 나가 대중들과 함께 일하고, 날마다 마당을 쓴다.
“마당을 쓸어도 잘 쓸어야지. 그래야 청소가 아니라 빗자루 정진인 거여. 신발 하나도 똑바로 벗어놓는 게 마음공부지. 안 그래? 발밑을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녀. 자세가 달라져야 마음도 바뀌는 거여.”
스님은 법당의 신발 한 켤레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무섭게 야단을 친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겠다. 스님은 출가 수행자들에게는 추상 같지만 어린아이와 신도들에겐 시골 할아버지처럼 따뜻하고 자상하다. 그가 당대 최고의 율사로 평가받는 것은 종단의 계율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 때문에 널리 알려진 삼보일배는 그가 행자교육에 처음 도입한 프로그램이었다.
“자장스님이 중국에 가실 때 한 걸음에 한 번씩 절하면서 갔어. 간절함이 있어야 도를 이루는 거여. 송광사에는 TV가 없어서 스님들이 유행가 같은 거 몰라. 가수가 제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숲속의 꾀꼬리는 못 당하지. 명리를 버리고 산중에 은둔해서 수행하는데 꾀꼬리 노래 소리면 충분하잖어.”
스님은 “불교는 학문이나 논설이 아니고 실천이 앞서야 하는 수행”이라며 “모든 것을 참아내는 ‘인욕’이라는 지구력으로 내가 나를 돌이켜 물방울 하나 묻히지 않는 연꽃을 피우고 마침내 무애자재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송광사 스님들에게 더워서, 땀이 나서, 배가 고파서 공부 못하겠다는 사람은 절을 떠나라, 그래. 더울 때는 더워야 하는 것이 계절의 진실인 거여. 여름에 더워야 알곡이 영글고 여름에 땀을 흘리는 만큼 결실이 알찬 거지. 오로지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거여. 쇠는 용광로에서 팍팍 달궈야지.”
스님은 1000억원대 부잣집에서 공개적으로 사윗감을 찾는 “세상 꼬라지”를 질타한다. “지눌스님은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가르쳤는데 모두들 땅을 짚고 일어설 생각을 안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요새는 고급 병신이 너무 많어. 수족이 멀쩡한 놈들이 지가 벌어서 당당하게 쓸 일이지 입이 얼얼하니 침을 흘려가면서 거기에 수백 명씩 줄을 서. 나는 돈 좀 번 신도들에게 자식들에게는 원수같이 돈 주지 마라 그래. 그러면 자식들이 멀쩡한 병신 된다고.”
스님에게 요즘 정치현실에 대해 한 말씀 청하자 “정치인 없대이. 정치 얘기 안해, 안해. 요즘 정사 정(政)자를 연구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라며 손사래를 쳤다.
“진실불허(眞實不虛)라고 하잖어. 진실하게 살뿐 속아서 헛되이 살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해. 남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속이는겨. 모두가 더 이상 속아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야 세상이 바로 돼.”
오전 11시. 스님은 관음사 신도들에게 법문하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여성 신도들이 대웅전과 원통보전을 채우고 마당까지 꽉 들어찼다. 모두들 합장을 하고 삼귀의례에 참여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신도 두 명이 마당에 앉아 있다가 스님에게 딱 걸렸다. 곧장 불호령이 날아갔다. “일어나! 일어나!”
“편하고 싶은 유혹 때문에 저런 거여. 남자 여자의 유혹, 보이는 것 듣는 것 같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유혹을 비워야 탐(貪·욕심)·진(瞋·성냄)·치(痴·어리석음)에 끄달리지 않고 당당해지는 거여. 유혹에 파묻히면 그때는 부처님이 달려들어도 안되는기라. 이제는 유혹된 생활 그만하고 내가 나를 제대로 간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봐. 내말은 이게 다여.”
딱! 딱! 딱! 죽비에 맞춰 노장이 천천히 법상에 올랐다.
“엄마 노릇 못하고, 아버지 노릇 못하고, 끝내 내 노릇 못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라. 알겠어?”
목우자 후인(後人) 같은 송광사 노스님이 추상(秋霜)과 훈풍(薰風)의 활인검(活人劍)을 휘두르며 어린 송아지의 코를 뚫어내고 있었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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