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율곡, 달러를 꾸짖다
다음은 조선시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예견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이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달러와 나눈 가상대화.
▶율곡=네 이놈, 달러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더니 드디어 일을 내는구나. 통화정책의 권력을 너에게 주었거늘,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한 죄 엄하게 묻노라. 네가 조금이라도 자중자애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으리라. 지금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은 바로 달러의 방자함이 낳은 비극 아니더냐.
▶달러=왜 그게 제 책임입니까. 달러는 세계경제의 경호원입니다. 달러가 무너지면 세계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질 겁니다. 제가 세계를 지키고 있습니다.
▶율곡=말 한번 잘했다. 경호원이면 경호원답게 행동해야지. 조심하고, 주위를 살펴야 했거늘, 세계경제 수호자 노릇을 제대로 했느냐 말이다. 권력을 남용하고 방탕한 삶을 살지 않았느냐.
▶달러=적자를 많이 낸 것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러나 나의 적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흑자입니다. 경상적자가 감내하기 힘든 상황까지 갔습니다만 그 덕에 세계가 번영을 구가했잖습니까. 한국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지요. 50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세계 통화체제를 금에다 묶어놓았던들 가능한 일이었겠습니까. 어찌 그리 구닥다리 경제학자 같은 말을 하십니까. 물론 미국이 분수에 넘치는 생활은 한 건 맞지요. 그걸 어찌합니까. 잘 살겠다는 인간의 욕망까지 다스리려 하십니까.
▶율곡=나는 네 무절제를 탓했지, 기축통화의 유용성을 시비하지 않았다.
▶달러=그 적자 말입니다.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늘어났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부채뿐만 아니라 자산도 늘어났습니다. 부의 효과라는 게 있지요. 주식이 오르고 부동산이 상승하면 그걸 담보로 소비를 더 하죠. 그래서 풍요롭게 살지요. 부자가 돼야죠.
▶율곡=말은 청산유수구나. 자산가격 상승이란 게 거품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 돈의 힘으로 밀어올린 실물가격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는 법. 첨단의 탈을 쓴 해괴한 금융기법이란 게 사실 알고 보면 폭탄돌리기 아니더냐. 이제 부동산이 떨어지고, 주식이 조정을 받으면서 부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느냐.
▶달러=자본주의 속성이 그런 거 아닙니까.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건 경제의 불가피성입니다. 미국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간다면 그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율곡=호ㆍ불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금융위기 가능성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정녕 비용을 치를 각오가 돼 있는 거냐. 정치적 외연을 확대한다고 퍼부은 재정을 축소하고, 민간소비를 줄이는 긴축을 할 수 있느냐. 너의 적자를 다른 국가의 저축으로 메우는 엄청난 불균형 구조를 시정할 용의가 있느냐.
▶달러=….
▶율곡=대답을 시원하게 못 할 거다. 무분별한 투기로 손실을 본 금융기관에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부실을 감싸주고 있지 않느냐.
▶달러=중앙은행의 목표가 인플레이션 방지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요즘은 금융시장 안정이 중요하죠. 급한 일부터 해야지요.
▶율곡=그래서 금리를 낮춘다는 거지. 그러나 명심해라.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그건 가치의 손실이고 불합리의 승리다. 금융시장 안정성도 그렇다. 저금리는 금융기관에는 독약과 같은 거지. 스스로를 고위험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지.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는 일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
▶달러=원칙론만 말하지 마십시오.
▶율곡=자기과시는 용서해도 우둔함은 안 된다. 무덤을 파지는 말아라.
▶달러=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잘 수습되고 있습니다.
▶율곡=노파심에서 한마디 해두자. 닉슨 대통령 때 재무장관을 지낸 존 커낼리가 이런 말을 했지. "달러는 우리 돈이지만 당신들 문제"라고. 너는 지금까지도 달러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신화를 믿고 있는 것 같다만 이미 세상에선 대마불구(大馬不救ㆍToo Big To Be Rescued) 신세가 된 걸 명심해라.
[손현덕 경제부장]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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