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建連)
이어서 경전은 불교 교단의 확대와 발전에 중요한 열쇠를 쥐었다고 생각되는 샤리푸트라(舍利弗)와 마우드갈랴야나(目建連)의 개종에 관해서 전하고 있다. 남방 불교의 전승에 의하면 샤리푸트라는 마가다국의 라자그리하에서 가까운 나라카 마을의 바라문 집안 태생으로서 부친을 방간타, 모친을 루파사리라 했다. 본명은 우파팃사이고 우파세나, 방가타풋타 등의 3형제와 차라 등의 3자매가 있었다고 한다. 또 마우드갈랴야나는 코리타 마을 출신으로서 모친인 목갈리의 이름을 따서 목갈리풋타라고 불렸다. 두 마을은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에, 동년배인 두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것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라자그리하의 축제에 가서 행렬을 구경하며 함께 즐기고 있었는데, 그들은 문득 백년 후에 이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상한 감개가 밀려들어, 그들은 곧 해탈의 길을 구하여 집을 떠나 육사외도의 하나인 회의론자 산자야의 제자로 들어가서 수도에 힘쓴 끝에 그의 수제자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그리하 북문 근처에서 탁발을 하고 돌아가던 석존의 제자 아쉬바지트(馬勝)를 만나 그 단정함에 감복한 나머지, 샤려푸트라는 스승이 누구이며 어떠한 가르침을 펴는가 물었다.
이에 대해서 아쉬바지트는 자신이 샤캬족 출신의 위대한 사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신참자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상세하게 전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것은 원인에서 생긴다. 진리의 체현자는 그들의 원인을 설법하신다. 또 그들을 멎게 하고 멸하는 법도 설하신다. 위대한 수도자는 이렇게 설법하신다[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는 게를 외었다. 법에 관한 석존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크게 느낀 바가 있었던 샤리푸트라는 돌아와서 마우드갈랴야나와 상의한 다음, 산자야의 만류를 뿌리치고 제자 250명과 함께 석존에게 귀의하기에 이르렀다. 산자야는 이때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입에서 피를 토했다고 한다.
석존은 제자가 된 이들 두 사람을 모든 제자의 상좌(上座)에 두었다. 이는 하루라도 일찍 교단에 들어온 자를 상좌에 두는 전통에 어긋난 것이다. 그로 인하여 고참 비구들로부터의 불평이 많이 있었지만 석존은 이들을 잘 달랬다고 한다. 이 일은 두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자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가하는 사실을 잘 나타내 준다.
샤리푸트라는 ‘지혜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갖가지 지식에 통하고 통찰력도 뛰어났으며 더욱이 교단의 통솔에도 빼어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출판된 자이나교의 옛 전승인 [이시바샤임]에는 ‘붓다 아라핫트 선인인 사티풋타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적혀있는 바, 이는 샤리푸트라를 지칭한 것이며 그가 붓다라고 불린 것으로 미루어 자이나교도는 불교 교단의 대표를 샤리푸트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경전 가운데도 석존을 대신해서 샤리푸트라가 교리를 상세하게 설하고 석존이 그것을 추인하는 형식이 가끔 보인다.
마우드갈랴야나라는 동명의 불제자들이 많아서 마하마우드갈랴야나(大目連)라고도 불렀다. 후에 불제자 중에서 ‘신통제일’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어느날 그의 안색이 너무나 좋아서 샤리푸트라가 그 이유를 물은 즉“오늘 나는 불타와 법담(法談)을 나누었는데 불타와 내가 모두 천안천이(天眼天耳)를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신통력은 석존과 동등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또 그는 가끔 프레타(餓鬼)를 보고 웃곤 했는데, 그 이유를 묻는 이에게 프레타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프레타는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조상의 영혼이나 전세에 지은 악업의 대가로 기아와 갈증에 시달리며 배회하는 귀신을 뜻한다. 또 마리지(摩利支) 세계에 살고 있는 죽은 모친을 천안으로 보고서 모친을 구출했다고도 한다. 이것이 소위 목련구모(目連救母)의 전설인데,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거행되는 우란분(盂蘭益)이나 시아귀회(施餓鬼會)에서의 인연설화의 기원이 되고 있다.
마우드갈랴야나는 석존과 함께 쉬라바스티 교외의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있을 때, 많은 비구들이 단정치 못한 자세로 잡담을 즐기는 광경을 보고, 신통력을 써서 발가락으로 강당을 흔들었기 때문에 비구들이 놀라서 도망친 일이 있다고 한다. 또 모여든 비구 중에 부정한 자가 있음을 알고 그의 팔을 잡아 축출해냈다고도 한다. 그는 아난다, 샤리푸트라와 함께 교단 내부의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므로 교단의 통제를 위해서도 그는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마우드갈랴야나와 샤리푸트라는 모두 석존이 열반에 드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석존보다 먼저 입멸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 모두가 석존보다 나이가 많았고 또 석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사실이다. 석존의 최후를 그린[대반열반경]에서 석존의 임종 장소에는 그 두 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석존 자신도“양인의 죽음으로 모든 비구들이 허전해 하는 것 같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샤리푸트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우드갈랴야나의 게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샤리푸트라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장(賢藏)스님은 라자그리하와 날란다의 중간 지점에서 샤리푸트라의 출생지로 알려진 가리피나카 마을을 찾아 스투파에 참배했다. 그리고 몸에 갑옷을 두르고 금강저를 든 인물이 산을 때려부수고 어떤 산기슭에 서 있는 광경을 꿈에 보고서 그의 모친이 그를 잉태한 사실과 그가 아쉬바지트에게 인도되어 석존에게 귀의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이어서 현장은 마우드갈랴야나의 고향인 코리타 마을의 스투파에도 참배하고 있다.
샤리푸트라는 고향 나라카 마을에서 시종이기도 했던 동생 춘다의 임종 간호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춘다는 그 유골과 남긴 주발, 입었던 옷 등을 가지고 쉬라바스티에 체류중이던 석존 앞에 이르러, 아난다와 함께 그의 죽음을 알렸다. 석존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현장은 이 두 제자가 모두 자신의 출생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법현(法顯)은 마투라에 사리불탑과 목련탑이 있었다고 전하고, 현장도 그 곳에서 목련과 그 밖의 다른 불제자의 사리탑에 참배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yumhwa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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