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 불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정말로 문제 없는가?
박노자 / 오슬로국립대학 교수
지금은 더 이상 참신해보이지 않아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대 담론의 내재적 위험성"과 같은,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2004) 식의 "거대 담론 비판"이 한국 사회에서 꽤나 유행했다.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내심으로 놀라기만 했다.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을 갖고 전혀 다른 역사적인 상황에서 성립된 여러 사상적 체제들을 뭉뚱그려 "거대 담론"이라 범주화하여 그 범주에 대해 무분별한 부정을 한다는 것 자체는 과연 비과학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사고 방식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황 퇴계(1501-1570)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도 "거대 담론"이고 마르크스 (1818-1883)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도 "거대 담론"인데, 전자는 송나라의 "성현"들의 권위와 사변적인 사고에 근거를 두는 반면, 후자는 구체적인 통계 자료로까지 뒷받침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다른 두 개의 담론을 "거대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무조건 연결시켜 "똑같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담론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나의 느낌이었다. 물론 우주와 사회 전체를 아울러보겠다는 야심으로 생산된 담론이라면 늘 과도한 일반화 내지 단순화의 위험성을 내포하긴 한다. 그런데, 일정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포괄적인 앎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불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의 구도(求道) 심리와 그리 다르지도 않은 본성일 터다.
그런데 "거대담론 위험론"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사구시를 기반으로 하는 실증론적 담론들은 전혀 다르지만, 지배계급의 지원을 받는 보수적인 사상가들이 만들어내는 형이상학적 거대 담론들을 일별해보면 절대자나 초자연적인 힘들을 끌어들여 기존의 지배 질서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좀 은근슬쩍 옹호해주는 경향은 매우 강하긴 하다. 예컨대 "절대자"와 역사를 전면으로 연결시켜 독특한 목적론적인 역사론을 펼친 헤겔(Georg Friedrich Wilhelm Hegel, 1770-1831) 같으면, 자연과 역사를 절대자(즉, 신)의 자기 외화(外化), 즉 현상의 세계에서의 자기 구체화로 파악하는 등 우리 존재의 전체성 (totality)을 절대자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그의 유명한 <법의 철학>이라는 명저를 보면, "신의 눈"으로 역사와 우주를 보려 했던 그에게는 예컨대 국가라는 것이 하나의 "인격체", "유기체"이었으며, 이 "인격체"의 내부적인 "단결"을 위해서 대외적인 전쟁이란 무비의 양호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제3부, 제3장, 324조). 헤겔은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의 "영구 평화론"을 비난하고, 국민들에게 국가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시키고 외적을 저주하고 국가를 사랑하게 할 수 있는 최강의 수단이 바로 전쟁이라는 "전쟁 필연론"을 대신 펼친다.
그가 세계를 신의 눈으로 본 것이라기보다는 신을 전쟁의 주동자의 눈으로 봤다고 말해야 옳을 것인데,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의 생산자 중에서는 꼭 그만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서구 철학 전통의 한 원점으로 생각되어지는 중세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1274)도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인 저술인 미완성의 <신학대전>에서 "이단"들을 단순히 교회로부터 파문으로 떼어내는 것이 부족하다 하여 그들을 이승으로부터 화형 등의 사형을 통해서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우주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관찰한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명상하는 것을 인생의 최상의 행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자선, 평화, 도덕, 용기를 가르쳐주었지만, 그가 상상하는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은 그에게는 생명체로서의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지배자들의 입장에 서서 주관적이며 임의적인 해석이 용이한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통해 우주· 세계· 인간을 하나의 사상체계로 포괄한다면 과연 이와 같은 유의 담론적인 폭력의 위험을 면할 수 있는가? 서구 기독교의 역사를 보거나 동아시아 유교의 역사를 보면, 지극히 어렵다는 답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 과연 동아시아의 불교 형이상학적 철학은 부조리한 현실의 신학적인 합리화라는 측면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문제 제기의 방법 자체는 생소할 것이다. 예컨대 원효(617-686)가 위대한 사상가라는 것은 우리에게 입증이 불필요한 상식으로 보일 터인데, 원효의 위대한 사상의 핵심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난처해질 것이다. 그나마 역사·불교 공부를 약간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에 대한 원효의 해석, 즉 <소> (疏)와 <별기> (別記)를 기억해낼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6세기 중반경에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에서 성립된 위경(僞經)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이 유력한데, 바로 그 위경을 원효가 대승의 진리를 총섭 (總攝)하는 경전으로 파악했다.
그러면 원효가 생각했던 대승의 진리란 무엇인가? 흔히 <대승기신론>의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 그의 사상체계를 "일심이문" (一心二門)이라 부르는데, "일심", 즉 한 마음이라는 것은 깨달음과 공(空)에 해당되는 삼라만상의 완벽무결의 큰 바탕인 셈이다. 헤겔의 절대자나 아퀴나스의 하나님에 대승 철학 쪽에서 해당되는 것은 바로 이 "일심"일 것이다. "일심"이라는 것은 진리의 본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명칭일 터이고, 번뇌의 현실과 그 진실의 세계를 대조시킬 때에 번뇌의 "생멸문" (生滅門)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진리의 세계는 "진여문" (眞如門)이 된다. 깨달음의 세계가 "생멸문", 즉 번뇌와 고통의 인간 세계로 연결되는 것은 "무명" (無明: 무지)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이라 하지만, "생멸문", 즉 세속의 삼라만상의 본질도 역시 바로 "일심"이라는 것은 원효 논리의 중핵이다.
여래장(如來藏), 즉 부처님(여래)의 깨달음의 숨겨진 씨가 삼라만상에 두루 감추어져 있기에 현실의 고통스러운 세계는 바로 부처님의 세계가 되는 것이고, 본래부터의 깨달음인 "본각" (本覺), 즉 부처로서의 성질은 이미 모든 것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일체법, 즉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은 생멸하지 않고 본래 적정(寂靜: 완벽하게 고요)하여 오직 일심일 뿐이므로, 이러한 것을 진여문이라 한다. 또 일심의 체는 본각이지만 무명에 따라 움직여서 생멸을 일으킨다.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 여래의 본성이 숨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이라 이름한다."
부처를 이 세계의 모든 곳에 내재돼 있는 진리의 성품으로 보고, 이 세계의 진실된 모습을 바로 부처로 보려 했던 불이(不二: 부처와 세계가 둘이 아니다)의 철학자 원효로서는, 이 두 "문"은 서로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생멸문", 즉 더럽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진실된 원칙(理)은 비록 현실적으로 물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체인 자성(自性)이 여전히 그대로 청정하기만 하여 우리 속의 부처, 즉 우리에게 내장돼 있는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도처에 내재돼 있는 "부처의 성품"이란 어떤 실재라기보다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깨닫지 않은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즉 사변의 세계를 떠난 어떤 기능·작용이라는 것을 원효가 늘 애를 써서 강조한다. 그러나 언어로 충분히 설명되어질 수 없는 이 "여래장", "진여문", "일심", "본각" 같은 절대자 격의 관념들은 결국 원효 철학이라는 커다란 관념체계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삼라만상은 부처의 청정한 법체(法體)와 실제로 다름이 없지만 우리들의 망념에 의해서 차별성이 생길 뿐이고, 그 차별성 속에서도 부처의 깨달음의 씨, 즉 여래장이 그대로 내재돼 있다. 그 포괄성이나 "부처와 인간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는 식의 고도의 변증법 (辨證法)의 차원에서 화려한 궁전쯤이나 방불케 하는 원효의 사유는 고통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개체에게 "부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이 느끼는 고통 속에서도 있고 당신 속에서도 있다"는 식의 기대와 희망을 주는 중생 구제의 방편임에 틀림없다. 사실, 많은 면에서 부처와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는 원효의 교리는 "당신이 이미 부처이니까 당신의 평상심이 바로 부처의 본래 마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면, 즉 당신이 부처임을 깨달으면 된다"는 선(禪)불교와도 상통되기도 한다.
만약 이 이야기를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한다면 불교적 휴머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정도로 수행의 방편으로서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현실적인 현상 속에서 부처의 마음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면 "나"로서 이를 깨달아 "나" 속의 부처 발견하기가 쉬운 것이고, "나" 속의 무명의 장애를 제거하여 "부처로서 살기"에 근접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일 터다. 그런데, 만약 이 이야기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한다면 그 의미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만약 원효의 또 다른 명작인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의 인상적인 표현대로 모든 중생들이 그들의 실체로서 이미 "여래장불" (如來藏佛), 즉 부처의 깨달음의 씨가 내재돼 있는 제각기 "인간의 모습을 한 부처" 라면, 이 세계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 폭력과 지배/피지배 관계는 단순히 "나의 망념/착각"으로 환원되게 돼 있다.
"나"를 지배하여 착취하고 전쟁으로 동원하는 국왕을 볼 때에, "나"는 그 국왕까지도 하나의 "부처"로 여겨야 한다. 그러면 지배, 착취, 살인의 현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나"의 망념으로 인해서 생기는 착각들일 뿐이고, "나"부터 수천 명의 노비들을 마구 부리는 귀족이나 자그마한 영토를 얻기 위해 수만 명의 군인을 희생시키는 국왕이 바로 "나"와 똑 같은 부처임을 깨달아야 이 문제가 지양된다는 식의 논리다. 즉, "이 세계가 불국토 (佛國土)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다, 상(相)은 설로 달라도 체(體)는 하나다" 식의 존재론적인 논리는, 실제로 폭력과 차별에 의해서 유지되는 현실에 대한 이해에서 폭력·차별이라는 부분을 교묘하게 호도하고 만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앗고 그들을 차별·학대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은, 뼈를 깎는 맹성(猛省)에 맹성을 거듭하여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면서 그 악업을 선업(善業)으로 상쇄한다면 결국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잠재적으로 그가 그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란 늘 전제돼 있다. 그런데, "본각"/"여래장" 사상을 존재론의 일종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남의 생명을 빼앗아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키우는 악인까지도 "지금, 여기"에서 이미 부처가 되고 만다. 즉, "시간적인 차원"과 "수행적인 차원"이 무시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고, 생지옥에 불과한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자· 폭력자의 입장에서 미화할 가능성 역시 크다. 원효 자신이 태종무열왕(655-661)· 문무왕(661-681) 시절의 왕권과 꽤나 가까웠다는 것도, <삼국유사> 등의 자료상으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적어도 백의종군 정도로 했던 것처럼 보이는 것도 현실 긍정론적 관념론의 극에 달했던 원효의 철학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흔히 "우리의 위대한 전통 사상"이라고 불러지는 대승불교의 관념론적인 틀들은 과연 그 자체로서 얼마나 불교적인가? 부처님이 늘 권하셨던 대로 "위대한 조사(祖師)"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이 질문이 당연히 절로 제기되게 된다. 붓다의 설법이나 초기 불교의 교리에서는 모든 "연기"로부터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아(自我)를 환상으로 봤다.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 데 모아 세상에서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모든 온(蘊 물질적, 정신적 세계의 구성 요소)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존재라고 부른다”는 것은 초기 불교 존재론의 근본적인 설명 방식이다. 영원불변한, 진정한 자아도 없고 어떤 중생이나 물질에도 주체적인 본성, 즉 자성(自性)이 없기에 이 세계는 필연적으로 변화무쌍일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고(苦)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만약 하나의 실재로서 "본각/여래장"이라는, "고통"과 무관한 "깨달음의 씨"가 우리 정신 안에서 내재돼 있다면 "존재는 바로 고통"이라는 초기 불교의 근본적인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초기 불교 같으면, 이 모든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존재들은 연기(緣起)의 법칙에 의해서 변화무쌍 속에서 계속 그 모습과 성질을 바꾸어가면서 살아간다.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無明)에 의해서 업(業), 즉 몸과 정신의 작용이 생기고, 그 업의 결과들이 정신 속에서 내장되어 식(識), 즉 자아와 세계에 대한(주로 도착된) 의식이 되고, "나",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이처럼 한 순간 동안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 탈바꿈돼가고 있다면 과연 늘 그대로 상주(常住)하는 "본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는가? 원효의 논리는 고도의 변증법을 구사한 관념주의적 초(超)거대 담론임에 틀림없지만, 이 담론이 과연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얼마나 어울리는지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의심들을 불교적으로 학문화(化)시켜보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바로 오늘날 일본의 "비판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하카마야 노리아키(袴谷 憲昭, 1943년생)와 마츠모토 시로(松本 史朗, 1950년생), 두 명의 고마자와(駒澤) 대학의 불교학 교수들이다. 독실한 불자이기도 한 두 사람의 문제 의식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일본의 불교 집단이 고대부터 최근까지 현실적으로 권력자들과 유착돼왔다는 사실, 그리고 집권자와 유착된 상태에서 온갖 폭력·차별들을 합리화해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일제의 대외 침략에의 불교 집단의 협력의 문제, 그리고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부락민(部落民, 전통 사회의 천민 계층) 차별에 대한 불교 성직자들의 책임의 문제는 두 학자들의 비판적인 모색을 직접 출발시켰다.
그들의 학문적인 "반란"은, 대단히 보수적인 일본 불교의 성직자· 학자 공동체의 불교학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일체 현상들에게 어떤 고정된 실체도 없다는 것이 붓다의 공(空) 논리의 출발점이었던 만큼 불교의 진실된 정신은 바로 모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해부가 아닌가? 그런데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해체시키는 대신에, 일본 불교는 역사적으로 어떤 신비화된 "본질" - 하카마야는 이를 "장소", 즉 모든 것의 본바탕이 되는 "터"라고 부른다 - 에 집착하여 그 "본질"의 종교적인 "발견", 그리고 의심을 불허하는 그 "본질"에 대한 신앙을 주축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선불교의 "깨달음의 추구"는 바로 비판적인 오성(悟性)을 "의심"으로 간주하여 그 "의심"을 떨쳐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데, 선불교의 임제스님(臨濟: ?-866)과 같은 고승대덕들이 이야기하는 "무위진인" (無位眞人), 즉 인간이 "깨달음"을 통해 발견해야 할 정신 안에서의 절대적인 존재는 과연 붓다가 줄곧 부정해온 고정불변의 영혼 내지 자성(自性)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즉, 우리가 진정으로 공(空)과 연기(緣起), 그리고 고(苦)에 대한 붓다의 해석을 따른다면 어떤 신비적인 "정신의 본질", "나 안에서의 부처"의 "발견"으로서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비의 실천과 계율 실천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선업을 짓는 일에 매진해야 하지 않는가?
마츠모토와 하카마야 공격의 주된 표적은 붓다의 교설보다 오히려 불교에서 "외도"(外道)라고 불러지는 인도 고유의 힌두교의 아론(我論: "아트만" atman이라고 불러지는 개별적 영혼에 대한 종교적 담론)에 가까운 "본각"/"여래장" 류의 사상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들이 동아시아 대승 불교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문제들도 지적한다. 예컨대 "총화(總和)· 화합"의 이름으로 토착 신앙의 요소들을 불교 안으로 받아들이거나 토착 신격들을 불교 불· 보살의 화신(化身)으로 보고, 나아가서는 불교의 여러 종파들과 토착 신앙들을 다 밀교화시켜 기복(祈福) 의례화시키는 중세 일본 불교의 태도도 하카마야와 마츠모토의 "비판 불교"에서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해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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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야와와 마츠모토 등 "비판 불교"의 "본각" 사상에 대한 공격은 일본 불교학계에서 주로 무시되거나 비난되고, 서구 학계에서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구미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불교 연구자들은 "본각" 사상이 그 해석에 따라 그 의미도 계속 달라지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도덕적인 자율성의 뒷받침으로도 작용될 수 있다고 반박하여 나아가서는 "진정한 불교"와 "동아시아화(化)된, 무(無)비판적인 불교"를 양분하는 것이 지나친 근본주의, 본질주의가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즉, 붓다의 가르침이 결국 그 수많은 제자들의 전언(傳言)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는 "붓다의 진정한 정신"과 "본각 사상"을 대비시키는 것도 무리이며, "본각 사상"이 비록 초기 불교에서 보이지 않다 해도 불교의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하나의 동아시아적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구미 학계의 대표적인 관점인 듯하다.
즉, 동아시아 불교를 가치중립적으로 보려 하는 구미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츠모토와 하카마야는 연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신학자에 더 가깝다고 할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는 호불호(好不好)가 지나치게 뚜렷하고 가치 평가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자로서는 "본각" 사상이 불교의 또 다른 수많은 해석들보다 과연 왜 더 큰 문제가 돼야 되는가 라고 얼마든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 불교의 틀 안에서 신앙 생활까지 하는 내부자로서는, 우리가 "위대한 전통"이라고 받드는 동아시아 불교의 가르침들이 붓다의 본래 교설과 과연 어느 정도 일치되는가라는 물음은 아주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설들은, 그만큼 우리의 집단적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카마야와 마츠모토가 도처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보수적인 주류 사회에서 거의 "국민 도덕"처럼 받드는 "갈등"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의식과 "총화· 단결· 단합"의 무조건적인 긍정은, 바로 현실적인 세계(事)와 이상의 세계(理) 사이의 막힘이 없다(무애: 無碍)고 주장했던 화엄(華嚴)류의 "동아시아적으로 왜곡된 불교 사상"에 의해서 너무나 쉽게 합리화된다. 물론 현상의 세계를 이상의 세계와 무비판적으로 연결시켜 둘의 불가분의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폭력·착취의 현실을 종교적으로 긍정한 화엄 사상 그 자체는 일본적 파시즘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권력과의 유착을 문제로 삼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부추기만 하는 이와 같은 "포괄적인 관념주의"의 거대 담론들은, 개체의 자율적인 연대인 계급, 그리고 계급의 독자적인 자아의식에 의한 갈등의 과정인 계급투쟁이 늘 부정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일익을 담당한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우리의 위대한 종교적 유산을 계승· 발전하는" 대신에 "불교"라는 상표가 찍혀 있는 각종의 일본적인 유산을 초기 불교를 시금석 삼아 힘들게 검증하는 등 "전통과의 싸움"으로 일관하는 하카마야와 마츠모토는 포스트모던이 풍미하고 있는 구미 학계가 생각하는 "가치 중립적인 학자"라기보다는 "투사"에 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들의 학문적인 태도는, "연구를 위한 연구"의 태도라기보다는 붓다의 진실이 무엇인가, 그 진실로 중생을 어떻게 해서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심의 구도적인, (좋은 의미에서의) 종교적인 태도다. 하지만, 박제화, 박물관화된 "과거"의 종교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을 기계적으로 모으는 학문적인 자세에 비해서는, 이와 같은 "신학적인" 노력으로 오늘날의 산 종교의 발전을 이끌려 하는 하카마야와 마츠모토의 자세야말로 훨씬 더 진지하게 보인다.
마르크스가 진리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바로 실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있어서는, 하카마야와 마츠모토의 "비판 불교"의 진실성의 징표는, "제대로 된 (일본) 불자가 일본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마츠모토의 실천적인 격언이다. 그렇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러시아 불자도, 러시아라는 착취계급의 국가가 여태까지 학살해왔거나 지금 학살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자비의 염(念)을 갖는 의미에서라도 러시아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추상화시키자면, 고 (苦)가 충만한 우리 현실의 모든 폭력성을 중점적으로 대변하는 국가라는 지배계급의 기구를, 당분간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으로 볼 수 있어도 불자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불교계에서는 "제대로 된 불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라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을까?
하카마야와 마츠모토의 "비판 불교" 그 자체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어도, 그 방법론만큼은 대체로 긍정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방법론의 알맹이는 무엇인가? 붓다는 현실의 예리한 비판자이었으며 근본적으로는 이 세계를 고(苦)를 떠나지 못하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곳으로 인식했다. 자신과 남들을 고(苦)로부터 구하는 것은, 붓다에게는 오직 폭력· 착취· 이윤추구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는 일련의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붓다는 해탈의 가능성을 제시해온 낙관주의자이었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적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한국에 일찍부터 들어온 대승 불교 가르침에서의 현실의 이상화, 미화의 경향들은 붓다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점을 우리가 똑똑히 인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원효의 "일심이문" 사상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위에서 이미 한 바 있지만, 원효의 도반이자 경쟁자이었던 의상스님(625-702) 사상의 경우에도 현실적 모순의 호도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 있으며, 진리와 현실이 환해 분별이 없다(生死般若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화엄일승법계도")와 같은 방식의 의상식의 화엄 교설은, 하카마야와 마츠모토가 지적했던 "본각" 류의 사상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만약 이 현실 속에 진리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면 문무왕의 후원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 본인이 한 것처럼 현실적인 권력자들과의 유착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적어도 교리적인 걸림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붓다의 본래 가르침대로 이 현실이 바로 고통이라면 권력자와의 "좋은 관계"를 포함한 이 현실 속의 안락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원효와 의상, 그리고 신라후기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종교 문화를 풍족하게 만들어온 수많은 선사(禪師)들의 공헌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바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붓다의 길로 가자면 권력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는 철저한 비판적인 해부의 대상이 돼야 되고,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신라 귀족 고승들의 가르침은 "창조적인 부정"의 대상이 꼭 돼야 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불교는 여태까지의 그 역사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전복적· 반란적" 성격을 띨 수 있으며, 국가·자본의 "힘"과의 유착 관계를 드디어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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