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3)여행-떠나지 않고 황홀한 삶 어이 만나랴
러시아의 민담학자 프루프(1895~1970)와 미국의 신화학자 캠벨(1904~1987)은 동서고금의 신화와 민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출발로 시작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야기’라는 집은 주인공의 공간 이동과 새로운 세계에서 겪는 일들을 기둥과 들보로 하여 지어진다. 주인공은 길 위에서 더없이 다양한 모험을 하며, 새로운 세계는 사막, 바다 속, 동굴, 섬, 지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세계들은 때론 짙은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고, 매혹적인 음악으로 나그네를 유혹하며, 할머니를 보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모험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숨어있던 지혜와 용기를 발견한다.
주몽은 아버지를 찾아 부여를 떠나고, 손오공 일행은 불경을 구하러 10만8000리 서역 길을 나선다. 바리데기는 아버지를 살릴 약을 구하러 서천으로 가고, 85세 노인은 자기가 아직 어부임을 증명하고 싶어 바다에 배를 띄운다. 이들은 한결같이 길 위에서 온갖 예기치 못한 고초를 겪는다. 그리하여 주몽은 고구려를 세우고, 손오공 일행은 불경을 얻고, 바리데기는 약을 구하며, 어부는 물고기 뼈만으로도 자신이 아직 어부임을 입증한다. 모두 모험적인 여행을 통해서만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한 가지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들은 모두 우리의 분신이고 대역이다.
신과 영웅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란, 기실 초라하고 왜소하며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의 내면이 천상에 투사되면서 굴절 변용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 살 소년은 집 앞 슈퍼에 혼자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거대한 세상을 만나고, 열일곱 소녀는 보고픈 바닷가에 혼자 다녀오면서 정신의 크기가 한 뼘 자라며, 집밖에 몰랐던 마흔 살 아줌마는 혼자 기차 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대면한다. 순간 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작은 영웅이 되며, 세상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의 일상을 탈출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어 귀환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거듭나는 것이다.
여행은 ‘출발→여정→귀환’의 세 단계를 밟는데, 여행자의 내면은 발길에 따라 ‘설렘→경이→성숙’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지점 지점에서 문학은 어김없이 태어난다. 여행 가방을 싸고 지도를 펼쳐 볼 때, 낯선 풍물과 만날 때마다, 잠 못 이루는 타관의 객사에서, 짧은 시간 인연을 맺은 사람과 헤어지며 뒤돌아보는 순간, 집에 돌아와 꿈만 같았던 지난 날을 추억하는 가운데, 문학은 꿈틀거리며 몸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적 황홀경에 빠진다. 그 순간은 누구나 이미 작가이다.
사마천은 약관의 나이에 역사의 현장을 두루 찾아보았는데, 뒷사람들은 장강 대하 같은 문장의 동력을 그 여행에서 찾곤 했다. 옛 사람들은 흔히 창작의 조건으로 1만 권의 책을 읽고 1만 리 길을 다녀야 한다며,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들었는데, 어떤 이들은 그중 1만 리 여행이 더 중요하다며 ‘독만권서(讀萬卷書), 불여행만리로(不如行萬里路)’로 고쳐 말하기도 했다. 권필(權필, 1569~1612)은 아끼는 제자에게, 천하를 널리 보지 못하면 시 또한 갇히게 되니 뒷날의 먼 여행을 위해 수영과 중국어를 배워둘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여행은 시를 낳고, 문장은 여행에 생명을 준다. 여행과 문학은 서로 없으면 못 사는 사이인 셈이다.
18세기 조선 최고의 과학자 홍대용(1731~1783)은 천안에 머물면서도 그 시야가 우주에 두루 미쳤고 가슴의 크기는 천하를 담을 만했다. 그는 평소 중국어를 공부하며 장쾌한 여행을 꿈꾸었다. 꿈이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법, 35세 되던 해에 숙부를 따라 북경에 갈 기회를 얻었다. 1765년 11월27일 압록강을 건너며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감회를 이기지 못한 홍대용은 한 곡조 미친 노래(狂歌)를 지어 읊었다.
간밤에 꿈을 꾸니 요동(遼東) 들판 날아 건너 / 산해관(山海關)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 망해정(望海亭) 제일층에 취후(醉後)에 높이 앉아 / 갈석산(碣石山) 발로 박차 발해를 마신 후에 / 진시황 미친 뜻을 칼 짚고 웃었더니 / 오늘날 초초 행색 뉘 탓이라 하리오.
광활한 요동벌을 날아 건너고, 거대한 산해관 철문을 한 손으로 밀어 열고, 몽골과 요동 사이를 가로 지른 갈석산을 발로 차내고 발해 물을 다 마신다니, 몸은 파리한 서생이어도 그 기상은 세상을 덮은 거인이었다. 거문고 연주를 탄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린다. 이 노래는 먼 여행에 나서는 그의 포부가 얼마나 원대했는지를, 또 거꾸로 그의 식견이 조선사회에서 얼마나 짓눌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1712년 겨울, 60세의 포의처사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가족들의 만류로 아우 창업(昌業, 1658~1721)에게 연행(燕行)의 기회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형은 입맛을 다셨고, 아우는 쾌재를 불렀다. 형은 진한 아쉬움을 50수의 시에 담아 아우에게 주었다. 아래는 그중 일부인데, 지금도 길 떠나는 이의 가슴을 장하게 할 만하다.
우리 인생 견문이 적으면 아니 되니 人生不可少所見
안목이 커져야만 가슴도 넓어진다네 大目方令胸두擴
산하를 직접 보면 느껴 앎이 깊으리니 山河觸目懲感深
10년 사서 읽음보다 나음을 알 것일세 可知勝讀十年史
과연 아우는 조롱을 벗어난 새처럼 마음껏 노닐었고 ‘연행일기’라는 불후의 여행기를 남겼다.
1780년 여름 박지원(1737~1805)은 선배들의 길을 밟아 나서 압록강을 건너 요양(遼陽)에 이르렀다. 조선에서 가자면 요양은 드넓은 요동벌에 있는 첫 번째 도시였다. 눈앞에 펼쳐진 일망무제의 벌판을 보고 박지원은 ‘정말 한 번 목 놓아 울 만한 곳’이라며 탄식했다. 일행이 고개를 갸웃하며 까닭을 물었다. 박지원은 사람의 울음소리를 천지간의 우레에 견주며, 천지간에 기운이 꽉 막혀 있듯 사람의 마음속에도 불평과 억울함이 갇혀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데에는 소리만한 것이 없다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캄캄한 곳에 갇혀 지내다가, 갑자기 툭 트인 곳에 나와 손과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해지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마음껏 터뜨리지 않으리오.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며 한바탕 울 만하고, 황해도 장연 바닷가 금모래 밭을 거닐며 한바탕 울 만하이! 또 이제 이 요동 벌판은 산해관까지 1200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도 없이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닿아있고 고금에 먹구름만 오갈 뿐이니, 이 역시 한바탕 목 놓아 울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박지원은 조선에선 보지 못한 드넓은 벌판을 보았고, 또 거기서 진실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열린 사회를 떠올렸다. 제도와 관습과 편견에 매여 진실을 외면하는 조선 사회를 통곡한 것이다. 조선의 여행자들 앞에 다가온 요동벌은 그냥 넓기만 한 들판이 아니었다. 이 공간은 천하의 역사를 반추하고, 우주의 운행 원리를 관찰하고, 조선의 현실을 아프게 되돌아보며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인 것이다. 이 글은 경이의 소산이다.
슬기로운 여행자들은 반드시 귀로에 소중한 선물을 안고 온다. 마사이족 소년은 혼자 밀림에 나가서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어른이 되어 돌아오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쫓겨난 바살리사는 어두운 숲속에 들어갔다가 불씨를 얻어 돌아온다. 1778년 북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박제가(1750~1805)의 품속에는 병든 조선을 치유할 처방이 들어있었다. 아래는 그해 가을 강화에서 새벽녘 지은 시이다.
밤은 길고 마음엔 번민이 많아 夜長心轉多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눕누나 欲起還復休
한 몸 의식 연연할 뿐이 아니라 匪直衣食戀
아득한 천지간의 근심 품었네 遙懷天地愁
벌레 하나 이따금 찌르르 울고 一蟲時돌돌
잎새들 문득 놀라 바삭거린다 衆葉驚
붉은 해는 어제와 다름없건만 朱炎如昨日
푸른 살쩍 어느새 가을이 왔네 靑빈忽已秋
천 마디로 깊은 회포 풀어내느라 千言賦幽懷
내 한 몸 도모할 겨를이 없네 未暇一身謀
가을 밤 마음은 이 생각 저 걱정을 옮겨 다니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일어나볼까 하다가도 이내 생각을 접는 것은 심신이 지쳐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고민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천지간 백성들의 삶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위는 고요하고 캄캄한데 시인의 마음은 너무 맑다. 그래서 미처 잠들지 못한 벌레 한 마리가 찌르르 우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고, 마른 잎들을 스치고 지나는 소리도 귀에 들어온다. 5구의 일충(一蟲)에서 ‘일(一)’은 박제가의 고독을, 6구 ‘중엽경(衆葉驚)’의 ‘경(驚)’은 박제가의 불안을 표상한다. 실은 온 세상에 자기 혼자 깨어있고,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자기가 깜짝 놀라는 것이다. 햇살은 여름처럼 뜨겁고 몸은 아직 20대 청춘이지만, 생각이 무르익고 걱정이 깊어지면서 그의 몸은 점차 가을로 익어갔다. 살쩍에서 느껴지는 가을은 여행자의 성숙을 상징한다. 박제가의 처방은 몇 해 뒤 《북학의(北學議)》로 정리되었다.
1888년 6월 고흐(1853~1890)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도를 보며 여행을 꿈꾸듯 밤하늘을 보면서 별로 가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가 꿈꾼 것은 현실과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창작의 동력이었다. 1919년 서머셋 모옴(1874~1965)은 《달과 6펜스》에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운명을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낯선 곳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고, 여행은 오래 전에 떠난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또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만나러 가는 행보이다. 토머스 만((1875~1955)도 《마의 산》에서 새로운 공간이 어떻게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속인까지도 손쉽게 방랑자로 만드는가를 말한 바 있다.
저 멀고도 깊은 곳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무당이 명산대천을 찾아 나서듯, 일상과 관습의 무력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여행 가방을 꾸린다. 지금 이국의 낯선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거나, 인터넷에서 여행지의 정보와 교통편을 검색하고 있거나,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고 있는 이들은 모두 문학을 잉태하고 있는 중이다.
〈이승수|한양대 강사〉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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