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처의 삶은 모두 ‘자기’ 실현”
카를 구스타프 융이 자서전서 밝힌 종교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 김영사)이 역사적, 과학적인 근거로 신을 부인한 책이라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조성기 옮김, 김영사)은 심리학적인 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융 자서전을 번역한 작가 조성기(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이 책에 대해 하는 말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융은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물론, 종교와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등 인문학 전분야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 융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f·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인격이 전체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하는 가장 깊은 구심점. 나를 나로서 자각하게 하는 자아(Ego)와 구별된다) 실현의 역사였으며, 자기실현 과정에서 종교의 역할은 핵심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학과 신학 사이에서 길을 잃은 뒤 융을 만나 문학과 신학을 융합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번역자 조 교수의 도움을 받아, 융의 자서전 중 특히 종교와 관련한 부분을 문답식으로 읽어본다.
―융의 생애를 요약한다면.
“융의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교다. 융은 자서전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무의식 밑바닥의 ‘자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무수한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융은 ‘자아’가 ‘자기’의 소리를 듣는 데 꿈과 종교의 상징을 매개로 이용했다. 따라서 융의 생애는 꿈과 종교의 상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를 포착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융이 일생 종교에 매달리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쓴 계기라도 있는가.
“융의 일생은 정신의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였고, 신의 문제는 정신의 불멸과 맞닿아 있었다. 특별히 융의 아버지는 목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융이 보기에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하느님을 직접 체험(증명)하지는 못했다.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채 교회와 신학적 사고에 붙들려 하느님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이야말로 아버지의 한계라고 본 융은 여기에서 벗어나 꿈과 (인류의 먼 과거에 대한 집단 기억인) 신화와 종교의 상징 등을 매개로, 원형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자기’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자서전에는 융이 경험한 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가 신 체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는가.
“융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BBC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영국의 수많은 시청자가 융이 어떤 대답을 할지 귀를 기울이며 긴장했다. 융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학문적인 저작에서 융은 ‘인간 마음 속에 있는 신의 형상’에 대해 말할 뿐이었지만 개인적·주관적 체험으로는 ‘신이라는 존재야말로 가장 확실한 직접적인 체험의 하나임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신의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도 관련돼 있는데.
“융은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라고까지 말하며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다. 하지만 사후의 문제 역시 이성이 아닌, 신화와 꿈의 언어를 통해 이야기한다. 자서전에서 융은 죽은 친구를 (꿈에서) 만나 대화한 뒤 이를 현실에서 확인하거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 따위를 미리 본 사례를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융은 사후 세계에 대해 믿거나 믿지 않는 건 모두 옳을 수 있지만, ‘부인하는 자는 무(無)를 향해 가는 반면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고 주장한다.”
―예수와 부처는 어떻게 보았는가.
“융은 부처와 예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융은 부처와 예수 모두 자기실현으로 세상을 극복한 것은 같지만,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고 했다. 부처는 역사적 인격체이므로 이해되기 쉬운 반면,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므로 파악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도 했다.”
―이런 생각은 전통적인 기독교와는 달라 보인다.
“융은 분명히 기독교를 신봉했지만, 교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외자다. 개인이 자기 실현을 위해서는 개인마다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야 하는데, 예수를 (맹목적으로) 모방하거나 이성에 기대는 신학으로 가는 바람에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이다’(요한복음 10장 34절)고 외쳤건만, 사람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악의 문제에 대해 그는, 신이 선하기만 하거나 사랑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봤다. 이 때문에 융은 ‘중세였더라면 화형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죽은 뒤에 융은 교회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신학자들의 인식이 커져가고 있다.”
―융의 삶은 여러 가지로 구도자를 연상시킨다. 그가 인간으로서 닿으려 했던 궁극점은 어디인가.
“그는 도덕적 완성이나 자연과 인간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기보다 ‘자연과 정신의 이미지에 대한 생생한 관찰을 고수하고 싶다’고 했다. 자연, 영혼, 인생이야말로 그에게는 최고의 경이(驚異)이자, 신성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의 최고 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으며’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해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융을 통해 우리 존재 자체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깨달으며 신앙을 내면화, 내실화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출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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