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수능엄경(首楞嚴經)

譯註 首楞嚴經 제 72 회(제4권<正宗分>見道分:3.深窮萬法 決通疑滯)

slowdream 2008. 5. 2. 14:35
 


② 答四大相容 ㊀ 牒

富樓那又汝問言호대

 地水火風本性圓融하야

 周遍法界인댄

 疑水火性

 不

相陵滅하고

 又徵虛空及諸大地 俱遍法界인댄

 不合相容가하니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지수화풍의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하다면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凌滅)할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모든 대지가 모두 법계에 두루하다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였는데,



 ㊁ 答 (가)略明能容 ㉮ 引喩

富樓那

 譬如虛空體非群相이로대

而不拒彼諸相發揮니라


 부루나야, 마치 허공이 그 자체가 여러 가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 모든 현상이 발휘되는 것을 막지 않는 것과 같다.



所以者何富樓那

 彼太虛空 日照則明하고

 雲屯則暗하며

 風謠則動하고

澄則淸하고

 氣凝則濁하고

 土積成霾하며

 水澄成映하니


 왜냐하면 부루나야, 저 태허공(太虛空)에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내리고, 물이 맑으면 비침을 이루기 때문이니라.



於意云何 如是殊方諸有爲相

 爲因彼生

 爲復空有

 若彼所生인댄

樓那

 且日照時旣是日明이라

 十方世界同義日色커늘

 云何空中更見圓日

이며

若是空明인댄

 空應自照어늘

 云何中宵雲霧之時

 不生光耀

 當知是

明 非日非空이며

 不異空日이라

 觀相元妄하야

 無可指陳호미

猶邀空華結爲

空果

 云何詰其相陵滅義이며

 觀性元眞이라

 唯妙覺明이니

妙覺明心


先非水火어늘

 云何復問不相容者리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은 여러 방면의 밝고 어둡고 동하고 맑고 흐리는 등의 가지가지로 분별되는 유위(有爲)의 현상이 저들 해 구름 바람 등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아니면 허공 그 자체에 본래 있었던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우선 해가 비칠 때에는 이미 그것은 햇빛이므로 시방세계가 다 햇빛이 되었거늘, 어찌하여 허공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마땅히 스스로 비추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때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눈앞의 여러 현상을 살펴보건대, 원래로 허망하여 그 자체가 없기 때문에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부질없이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거늘, 어떻게‘물과 불이 서로 능멸한다, 하지 않는다’를 따질 수 있으며, 그 성품을 살펴보건대 원래로 진실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뿐이요, 이 묘하게 깨어 있는 밝은 마음[妙覺明心]은 애초부터‘물이다, 불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거늘 어찌하여 다시‘서로 용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를 물을 수 있겠느냐?



 ㉯ 合顯

眞妙覺明亦復如是하야

 汝以空明則有空明하고

 地水火風으로

 各各發明

則各各現하며

 若俱發明則有俱現이니라


 진실하며 묘하게 깨어 있어 밝음[眞妙覺明]의 항상한 참마음[常住眞心] 또한 그러하여 네가 허공으로써 밝히면 허공으로 나타나고, 지수화풍으로 각각 밝히면 곧 각각 나타나며, 만약 한꺼번에 밝히면 곧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云何俱現

 富樓那如一水中現於日影하니

兩人同觀水中之日라가

 東西

各行則各有日하고

 隨二人去호대

 一東一西하니

 先無準的일새

 不應難言

此日是一커늘

 云何各行이나

 各日旣雙커늘

 云何現一이니

 婉轉虛妄無可

憑據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부루나야, 마치 하나의 물속에 여러 개의 해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즉, 두 사람이 함께 물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갈 것이다. 이 때 기준이 없는 것을 불평하여‘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따라 가는가?’한다든가‘각자 해가 있어 이미 둘이 되었는데, 어찌 하나라고 하는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해들이 본래 허망하여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