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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불 읽기 <하> -동아시아의 탄신불

slowdream 2008. 5. 14. 14:22
 

12. 탄신불 읽기 <하> -동아시아의 탄신불


‘천상천하 유아독존’ 강조 … 자국화 경향도 뚜렷


‘왕즉불’ 사상 투영한 중국

 

 

                 〈사진1〉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불화.


〈사진1〉은 지금은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불화이다. 서양이 돈황 석굴에서 야만적으로 떼어간 작품 가운데 하나인 모양이다. 상단을 보면 아기가 금빛 수반 위에 서 있다. 아기의 얼굴과 몸매는 중국인 형상이다. 목욕을 시키러 온 여인들도 모두 중국 궁녀들의 옷차림이다. 중국은 5세기 북위 시대에 들어 왕즉불(王卽佛) 사상에 따라 불상을 중국화한다. 아기 머리 위에 있는 아홉 마리의 황금빛 용들도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원래는 경전에서 “하늘에서는 용왕이 따뜻한 물과 찬물로 된 두 종류의 청정한 물을 석가의 몸에 뿌렸다.”는 것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인도의 기존의 용신앙이 경전에 반영되어 용이 불법의 외호자인 것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당나라라는 맥락에서 이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당대에 용은 왕을 상징하는 것이다. 금, 황색 또한 사실 왕의 상징이다. 이 그림은 먹구름 속에 나타난 아홉 용이 석존을 보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부처도 왕을 보호하고 있다.”, 아니면 “왕이 부처의 외호자(外護者)다.”라는 뜻을 은연중 나타낸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아기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사자후를 외치는 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 편에 세 명의 궁녀와 황금빛 관료 복장을 한 높은 지위로 추정되는 남성은 이를 별 감정 없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왼 편의 두 여인은 놀라는 표정을 하고 허리를 굽힌 채 바라보고 있다. 오른 편 두 여인 가운데 위쪽에 있는 여인은 머리 모양으로 보아 공주님 같다. 사진이라 정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표정에 경외심은 잘 엿보이지 않는다. 석존도 거룩함이나 숭고함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동양의 아기의 나신을 하얗게 표현하였다.


다른 석가탄신불에 비하여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석존이 뗀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음을 형상화하여 연꽃 네 송이를 그려 넣은 것이다. 이것도 경전에 있는 내용이지만, 중국의 대승철학을 반영하였기에 연꽃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더러운 물에서 청정한 하늘을 향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가장 맑은 향기를 세상에 뿌리는 연꽃을 형상화하여, 속제(俗諦)에서 진제(眞諦), 중생에서 부처, 예토에서 정토를 지향하는 대승철학을 상징적으로 압축했다.


이렇듯 위의 중국의 석가 탄신불 불화는 완전히 중국화하여 석존부터 주변인물까지 중국인의 얼굴과 몸매와 옷차림을 한 사람들로 모델링하되, 왕즉불 사상에 따라 왕이 부처의 외호자임을 표현하고 있고 대승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탄신불’ 독립 조성한 한국

 

 

                          〈사진2〉 보물 308호. 금동석가탄신불


〈사진2〉는 보물 308호로 지정된 금동 석가탄신불이다. 부조가 아니라 금동으로 독립된 석가탄신불은 인도와 중국에는 한 두 점 외에 거의 예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석가 탄신을 금동으로 새긴 독립된 금동 석가탄신불의 형상화 자체가 한국적 특성이라 할 만하다. 이 금동탄신불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에는 아스카, 하쿠호, 나라, 헤이안 시대에 걸쳐 많은 예를 남겼다고 한다.(강우방, 『(개정판) 한국 불교조각의 흐름』, p. 232)


이 불상의 모습은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지시하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던 그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쉽게 짐작이 간다. 가는 몸매는 그대로 아기의 몸인데, 얼굴은 성인 부처님의 상호이다. 나발과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 표정도 앳되고 순진하기보다 멀리 응시하고 있고 엄숙하고 진지하다. 얼굴은 아무래도 어린 아이가 아니라 30대 한국인 아저씨의 얼굴에 가깝다.


전신이 나신이지 않고 군의를 입힌 것도 우리의 구성법이다. 상반신은 나신을 하고 하반신은 치마를 입은 채 오른 손을 들고 있는 탄신불상은 한국에서 많이 발견된다. 몸은 가슴이 약간 드러나고 아랫배도 조금 나온 것이 평범한 한국 어린 아이의 몸매이다. 몸에 양감을 주고 몸매나 치마의 선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군의에 허리띠를 하고 간단한 장식을 두 줄로 늘어뜨렸고, 치마의 모양도 지느러미 모양으로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왼 팔이 너무 길어 신체미의 균형을 잃고 있는데, 이는 탄신불인 만큼 32길상에 충실한 것이다. 32길상에 따르면 석가의 팔은 몸을 바로 하여 직립하였을 때 손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어야 한다(正立手摩膝相).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막이 있어야 한다”는 길상을 따르면 마치 오리의 발과 같은 손을 가진 불상이 만들어진다. 실제 이런 불상이 마투라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부처의 혀는 부드럽고 얇으며 크고 넓어서 내놓으면 얼굴 전체를 덮고 입 속에 넣어도 입 속이 차지 않는다(大舌相).”를 따르면 원숭이나 외계인 같을 것이다. 이에 불상의 성스러움과 정신적인 위상을 강조하면서 32길상 중 몇 가지는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탄신불이어서 정립수마슬상에 맞게 팔을 길게 늘어트렸다.


탄신불이 수반 위에 오른 것은 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지만, 이를 다시 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 독특하다. 위의 수반은 단순하게 처리하였지만, 아래의 수반은 아무래도 앙련(仰蓮)을 추상화한 선을 묘사한 연꽃 문양의 대좌로 보인다. 상은 ㄷ자형으로 위는 사각형 평판인데 양 끝에 약간의 곡선미를 준 것이 우리 탑의 옥개석을 보는 것 같다. 다리도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수직으로 뻗어 내렸고 선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상의 단아한 미와 불상의 숭고미, 수직미와 수평미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한국의 탄신불은 대개 상반신은 나신을 하고 하반신은 군의를 입었으며 오른 손은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 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땅을 지시하는 자세를 모델링하고 있다. 이것이 공통점이라면, 얼굴 모습은 어린 아이와 어른 석가모니의 두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 미소를 띠었으나 얼굴 전체의 모습이 해학적이고, 몸이나 선도 추상화하여 단순화하고 대개 양감이 없이 평면적으로 처리하였다. 후자의 경우 몸에 양감을 주고 상대적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상호도 진지하고 엄숙하다. 전자가 탄신불의 정보 자체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탄신의 의미가 갖는 불교적 정신세계의 깊이를 담는데 더 주력을 하였던 것이다.


‘한국형’ 따르며 세련미 더해 일본화

 

                           〈사진3〉 일본 동대사 탄신불. 8세경 제작 추정.


〈사진3〉은 동대사의 탄신불로 8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은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다. 금동으로 만든 독립상인 점,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 손으로 땅을 지시하는 자세, 상반신은 나신이고 하반신은 군의를 입은 것, 상호는 어른의 얼굴인 것이 한국 탄신불과 유사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이런 경지의 탄신불이 있었겠지만, 위의 불상은 한국 탄신불에 비하여 세련미는 더욱 갖추었다.


상호만 바라보면, 석가모니의 성년의 모습이라 할 정도로 그대로 어른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육계와 나발도 뚜렷하고 귀도 크고 길게 내려왔다. 눈매와 코도 어른 석가모니의 그것이다. 볼도 두툼하여 후덕하게 보이고, 진지한 얼굴에서 잔잔하게 번지는 자애로운 미소가 탄신불 가운데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부처이다.


목에 삼도가 뚜렷하고 몸매 또한 어른의 그것이다. 가슴이 발달하였고 배의 근육도 보이다. 32길상에 맞게 팔을 길게 표현하였지만, 왼 손을 조금 굽히게 처리하였다. 32길상에 충실하여 팔을 길게 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짧게 보이게 하여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잃지 않고 있다. 허리띠 대신 치마를 허리에서 한 단 접어 밖으로 포갠 모양이 독특하다. 군의의 주름은 다섯 겹으로 흘러내렸는데 흘러내린 품이 자연스러우며,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주었다. 군의 전체는 지느러미 모양이고 발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불상 전체는 얼굴과 몸, 팔다리의 비율이 맞춤하여 균형미가 빼어나다. 단순한 모양을 한 칠그릇 수반 위에 불상을 얹어놓았다. 불상의 수직미와 수반의 수평미, 불상의 상대적으로 화려함과 수반의 단순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둥그런 수반은 이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 탄신불을 보면서 빼어난 균형미를 갖춘 자세를 하고서 진지한 얼굴에서 피어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대하고 있노라면, 석존께서 이 세상에 나셔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사자후를 외치며 중생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하신 서원이 굳센 믿음으로 다가온다.


서너 장의 사진에 근거한 것이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일본의 탄신불은 한국의 탄신불 영향을 받아 어린아이의 상호형-추상화와 해학미 추구-탄신불과 어른의 상호형-관념화와 정신세계의 깊이를 반영한 숭고미의 추구-탄신불의 두 경향이 공존하는 것 같다. 전자의 경우 더욱 추상화하면서 차츰 일본인의 얼굴과 장식으로 바뀌는 경향이 농후하며, 후자의 경우 동대사 탄신불처럼 조화미가 빼어나며 상호는 어른 석가모니의 완성된 인격과 정신적 깊이를 담고 있다.


이렇게 각 나라의 탄신불이 차이를 보이지만,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의 몸과 마음을 좀 더 평안하게 하고 나아가 모두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을 하고 부처가 되게 하려 이 거친 사바세계로 내려오셔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신 뜻은 같다고 본다. 석가 탄신불을 보며 부처님께서 오신 뜻을 되새기며 나보다 더 가난하고 억압받는 중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도흠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