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불교와 인문과학

탄신불 읽기 상 -인도의 탄신불

slowdream 2008. 5. 14. 14:16
 

11. 탄신불 읽기 상 -인도의 탄신불


탄생 암시하는 상징물로 성인의 위상 부각


석존의 탄신을 묘사한 불상이나 불화가 많다. 탄신의 이야기와 내용을 재현하고 표상한 것은 유사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직접 가보지도 않은 채, 그것도 사진과 한 두, 혹은 서너 문장에 불과한 사진설명에 필자의 알량한 지식을 보태 분석하는 것이기에 오류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보리수-불족 으로 대신한 무불상 시대


           〈사진 1〉 캘커타 박물관 소장. 기원전 1세기. 『한국불교조각의 흐름』에 수록.


팔리어 경전 『숫타니파타』에 “(태양과 같이) 영원히 잠든 그는 어느 것에도 필적할 수 없다. 어떤 관념으로도 그의 본질을 표현할 수 없다. 그와 관련짓는 어떤 관념도 허망하다. 그러므로 그에 관해서는 어떤 언어 표현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디트리히 제켈, 『불교미술』) 세상 최고의 장인이 지극한 불심으로 조성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거룩함에 다가갈 수 없다. 이런 생각으로 불상을 제작하지 못하였고, 대신 붓다를 깨달음의 나무인 보리수, 진리의 수레바퀴, 대좌, 화염에 싸인 기둥, 발자국인 불족적(佛足跡), 열반의 상징인 스투파 등의 상징으로 나타냈다.(제켈, 위의 책)


〈사진1〉은 기원전 1세기경 불상을 부정하던 시대의 바르후트 탑의 난간에 새겨진 부조이다. 마야부인이 누워계시고 그 위로 코끼리가 하늘에서 부인 곁으로 내려오고 세 여인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두 여인은 인도의 전통 악기를 들고 있다. 마야부인께서 축제가 끝나자 잠을 청하였다는 이야기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부조를 보면, 악사들이 한창 연주 중이니, 축제 도중에 악기 연주를 듣다가 잠드신 모양이다. 잠깐 잠드신 것을 표현하려 침대가 아닌 자리 위에 팔을 괴고 주무신 것으로 처리하였다.


여기서 코끼리의 모습을 보면, 두 앞다리는 합장을 한 경건한 자세요, 코를 말아 원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웃는 형상이다. 초기 경전에 의하면, 석존께서 오랜 동안 선정을 쌓아, 도솔천에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가 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마야부인의 침대 주위를 오른 쪽으로 세 차례 돈 후 왕비의 오른 쪽 갈비를 헤치고 부인의 태(胎)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이 코끼리가 다시 석존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코끼리가 바로 석가이다. 감히 석존을 나타낼 수 없어 코끼리로 대신한 것이다.


잠든 마야부인을 보면, 목걸이에 팔찌를 하였고 치마도 화려하다. 치마의 장식과 옷주름 문양은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악사인 여인들의 머리채도 두 단으로 엮은 후 뒤로 묶은 단아한 모습이 당시 유행이었던가 보다. 차 달이는 주전자와 자리, 촛대로 짐작되는 도구도 지금 당장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세부까지 치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악사 중 왼 편의 한 여인은 조금 몸을 기울이고 오른 속으로 악기를 흔들고 왼 손으로는 춤동작을 취하고 있고, 다른 한 여인은 몸을 한껏 기울이며 오른 손으로 다무라(damura)를 두드리고 있고 왼 손은 머리 위까지 들어 춤동작을 취하고 있다. 오른 쪽으로 몸을 기울임에 따라 오른 편으로 쏠린 유방까지 겨드랑이 사이로 보이게끔 표현하여, 두 악사를 따라 춤사위를 펼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두 악사의 자세가 생동감이 있고 역동적이다. 이들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 또한 들릴 듯하다.


다무라가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요고(腰鼓)와 아주 비슷하지 않던가? 만약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 국악 중 도드리장단을 떠올리자. 다무라의 주요 연주곡 가운데 한 가락이 도드리 장단과 비슷하니까. 이뿐만 아니다. 인도 고대 음악과 악기가 우리 국악의 원류라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사하다. 아주 단순하게 처리하면서도 조각에 소리와 생명을 부여한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두 악사의 겨드랑이에서 엉덩이로 흘러내린 선이 고혹적이고 엉덩이는 풍만하여 관능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악사의 역동적인 동작과 마야부인이 잠든 정적인 모습이 원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부조를 보면, 팔상도 가운데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 떠오를 것이다. 도솔래의상은 이 장면을 한국화하여,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의 설을 참고로 하고 『법화경』의 사상을 담았고 한국식 궁궐에 한국식 복식을 한 자들로 인물을 구성하였다. 반면에 위 부조는 석가모니의 탄생담을 인도적 배경에서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팔상도가 석가모니인 호명보살을 확실하게 표현하였다면, 후자는 이를 코끼리로 대신하였다. 전자가 불교적 관념을 투영하고 있다면, 후자는 사실 묘사에 충실하고 있다.


서양인 모습으로 형상화한 ‘간다라’

                               〈사진 2〉 스와트 니모그람 출토. 2~3세기 경.


〈사진2〉는 간다라 시대의 2~3세기 경 스와트의 니모그람에서 출토된 것이다. 가로 19.5센티미터 세로 44센티미터의 천매암에 조각한 것이다. 코린트 양식과 유사한 기둥 사이에 사각형의 공간을 만든 후 인물을 배치하여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구성하는 독특한 부조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 비슷한 유형을 그리스 신전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기둥이 만들어주는 사각형의 공간에 일곱 사람(실제로 여덟 사람)이 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동작을 취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다. 간다라양식답게 사람들은 서양인의 얼굴과 옷차림이다. 코가 높고 길고 눈이 푹 꺼졌다. 옷은 두껍고 그리스 사람들과 착의법이 같다. 두꺼운 옷을 통해 드러난 몸매 또한 서양인의 비율과 굴곡에 맞다.


이 조각에서 마야부인은 무우수(無憂樹: asoka) 가지를 붙잡고 석가를 출산하고 있다. 『과거현재인과경』 제 1권을 보면, “마야 부인께서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가지와 작은 줄기 사이로 무성하게 핀 무우수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이끌려 오른쪽 팔을 올려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아당기려 할 때 보살이 점점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야부인의 얼굴도 엄숙함이나 성스러움은 별로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그리스 신전의 여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대칭이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준 무우수 가지와 잎사귀 모양이 당시 즐겨 쓰이던 양식이다. 마야 부인의 오른 편 바로 옆에 동생인 마하프라자파티가 부축하고 있고, 왼 편에는 이제 막 옆구리에서 나오는 석존을 제석천이 무릎을 굽히고 신중한 얼굴을 하고서 천을 싼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내고 있다. 그 뒤엔 수염을 한 노인도 두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격이니 범천으로 보인다. 범천은 제석천이 받아내다 실수라도 하는 양이면 달려들겠다는 자세로, 아니면 그 탄신이 갖는 의미를 짐작하고 너무도 성스런 그 모습에 놀라는 표정으로 한 팔을 든 채 이를 지켜보고 있다. 오른 편의 한 여인은 더운 물을 든 항아리를 들고 있고, 다른 여인은 천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 같은데 사진상으로는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석존이다.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석존이 탄신하는 장면과 “천상천상 유아독존”의 사자후를 발하신 직후 서 계신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 이색적이다. 탄생하는 아기에 광배를 두른 것으로 보아 아기 때부터 이미 깨달은 자라는 것을 나타냈다. 서 있는 석존상은 양 팔을 뒤로 젖힌 채 굵은 두 다리로 서서는 가슴을 내밀며 미소 짓고 있다. 비록 아기의 형상이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사자후를 외친 후의 석존의 당당한 기상을 잘 표현하였다.


이렇듯 간다라 양식의 이 작품은 그리스풍의 얼굴과 몸매와 차림을 한 이들로 인물을 구성하되, 이들이 정해진 구도 안에서 석존 탄신의 서사를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전달하도록 묘사하고 있다.


발자국으로 표현…마투라 양식 수용

 

 

                 사진 3〉 인도 나가르쥬나콘다 출토. 『불상』에 수록.


〈사진 3〉은 나가르쥬나콘다에서 출토된 백녹색의 석회암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부조이다. 크리슈나 강 유역, 아마라바티 부근에 위치한 이곳에 거대한 승원이 있었으며 중관학파의 창시자인 나가르쥬나[龍樹]의 고향이란 설이 있는데, 이름의 유사성만 같고 확증할 순 없다. 나가르쥬나콘다 시대의 불상은 미술사적으로는 마투라 양식을 수용하고 있는데, 철학적으로는 소승불교의 영향이 강하였는지 부처를 상징으로 표현하는 무불상 시대의 양식을 혼합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마야부인은 마투라 양식의 전형적인 약쉬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투라 양식은 간다라 양식과 달리 인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코는 간다라 양식에 비하여 조금 낮고 눈두덩이 튀어나오고 입술도 두껍다. 더운 지방이기도 하지만 일상 삶의 즐거움과 활력,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문화풍토인지라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거의 나신에 가깝게 얇게 표현하고 몸매는 현대인이 보아도 욕정이 솟을 정도로 관능적이고 육감적이다. 동작도 춤추는 동작을 순간적으로 촬영한 듯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치고 활력이 있다.


기원전부터 인도인들은 풍요의 여신이며 나무의 정령이자 관능미의 화신인 약쉬상을 새겨 곳곳에 세웠다. 스투파에 새겨진 약쉬상들을 보면 하나같이 관능적이고 육감적이다. 이 조각에서 마야부인도 약쉬상의 형상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탄력있게 봉긋 솟은 가슴, 군살 하나 없이 푹 파인 아주 가는 허리, 커다란 엉덩이, X자로 교차한 채 쭉 뻗어 내린 다리의 모습은 이효리보다 더 풍만하고 육감적이다. S자로 몸을 꼰 채 볼기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도 약쉬가 즐겨 취하는 자세이다.


하여튼 마야부인은 무우수 가지를 쥔 채 서 있다. 그럼 아기 석가는 어디 계신가. 오른 쪽에 네 명의 신들이 들고 있는 천을 보면 일곱 개의 발자국이 보인다. 바로 이것이 석존의 상징이다. 지극히 거룩한 그 분을 어찌 인간이 표현할 수 있겠는가? 대신 석존이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신 자국을 천 위에 찍어 상징화하였다. 이 천을 들고 있는 신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모두 똑같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취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 명의 보관이 다르고 다리를 굽힌 양상도 차이나고 표정이나 얼굴 각도도 미세하게 변화가 있다.


이렇듯 나가르쥬나콘다 시대의 이 탄신불은 마투라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관능적인 몸매를 한 인도인을 모델링하되, 무불상 시대의 소승불교의 유산을 혼합하여 석존의 탄신을 석존의 모습 대신 일곱 발자국으로 상징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도흠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