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수능엄경(首楞嚴經)

譯註 首楞嚴經 제 119 회(제6권 <정종분> 修道分:2. 修行眞要)

slowdream 2008. 6. 13. 15:29
 

㉯ 別選 ㈀ 揀六塵

 色想結成塵하야

 精了不能徹하니

 如何不明徹으로

 於是獲圓通리닛고


 音聲雜語言이니

 但伊名句味일새

 一非含一切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香以合中知하고

 離則元無有하야

 不恒其所覺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味性非本然이라

 要以味時有하고

 其覺不恒一커늘

 云何獲圓通리닛고


 觸以所觸明하나니

 無所不明觸하고

 合離性非定이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法稱爲內塵니와

 憑塵必有所하야

 能所非遍涉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물질과 망상이 맺히어 경계를 이루었기에 마음을 내고 알려고 하면 마침내 통할 수 없는데, 어떻게 명철(明徹)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에서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음성은 언어가 모인 것이니 다만 이름과 구절과 의미뿐이기에 한 마디 말이 일체를 포함할 수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향기는 코와 합해야만 느낄 수 있고 코를 떠나서는 원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 깨닫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맛이라는 성품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반드시 맛을 볼 때에만 있고, 그 느낌이 항상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감촉[觸]은 느낄 몸[所觸]으로 밝아집니다. 만약 몸이 없으면 감촉을 밝힐 수 없고, 합하고 여읨[合離]에 따라 성품이 일정치 않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진(法塵)을 내진(內塵)이라고도 하나 경계[塵]에 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처소가 있어서 능소(能所)에 널리 통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揀六根

 見性雖洞然이나

 明前不明後하야

四維虧一半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鼻息出入通이나

 現前無交氣

 支離匪涉入이리니

 云何獲圓通리닛고


舌非入無端이오

 因味生覺了하니

 味亡了無有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身與所觸同하야

 覺非圓覺觀이니

 涯量不明會이니

 云何獲圓通리닛고



 知根雜亂思일새

 湛了終無見이요

 想念不可脫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보는 성품이 비록 밝다고 하여도 앞만 밝고 뒤는 밝지 못하여 사유(四維)에서 하나반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 숨 쉬는 것은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통하기는 하나 교차하는 순간에는 기운이 없고 완전하지 못해[支離] 거둬들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혀는 맛을 볼 대상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맛을 통해야만 느낌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맛이 없으면 느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몸[身]과 대상[所觸]은 다 같이 원만한 각관(覺觀)이 아니기에 몸과 대상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涯量]에는 어두워 알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의지근(意知根)은 어지러운 생각이 모인 것이기에 묘담(妙湛)을 끝내 보지 못하는 것이요, 이처럼 추상적 분별심[想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揀六識

 識見雜三和하니

 詰本稱非相이라

 自體先無定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心聞洞十方

 生于大因力이라

 初心不能入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鼻想本權機

 只今攝心住

 住成心所住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說法弄音文이니

 開悟先成者

 名句非無漏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持犯但束身이니

 非身無所束이라

 元非遍一切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神通本宿因이니

 何關法分別이며

 念緣非離物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식(識)이 본다는 것은 근경식(根境識)의 삼사화합(三四和合)으로 섞인 것이니 근본을 따져 보면 실상이 아니다[非相]. 자체가 애당초 결정됨이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듣는 것이 시방세계에 통하는 것은 보살만행의 큰 인행(因行)의 힘으로 생긴 것이기에 초심자로서는 쉽게 들어갈 수가 없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끝에 생각을 두게 한 것은 본래가 방편으로 다만 섭심(攝心)하여 마음을 머물게 하고자 함이니 머문다면 마음이 머물게 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설하여 말과 글로 희롱하는 것은 알음알이만 먼저 이루는 것이기에 명구(名句)로는 무루(無漏)가 될 수 없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지킴은 다만 몸을 단속하는 것이니 몸이 없으면 단속할 대상도 없을 것이다. 원래가 일체에 두루하지 않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통은 본래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얻은 것이니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의식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망념으로 반연하는 것은 경계[物]를 여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