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는 만큼이 아니라 읽는 만큼 본다 <상>
실증주의에 매몰된 예술 비평
독재자를 문화대통령 만들어
석굴암이나 불국사는 경덕왕의 문화 의식의 산물이 아니다.
당대 절정을 이뤘던 신라의 문화저력과 김대성 같은 장인의 덕이었다.
예술은 작가와 표현, 대상, 미적 체험, 독자의 수용과 감상을 두루 갖추어야 가능한데 불교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상은 만들어졌고 동양 예술의 정화(精華)의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불교철학 자체에서 예술로 형상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았다. 작가와 표현에 대해서는 인언견언론(因言遣言論)론, 대상에 대해서는 조론(肇論), 미적 체험에 대해서는 유상유식론(有相唯識論)론, 종교와 일상의 합일에 대해서는 진속불이론(眞俗不二論)론, 감상과 해석에 대해서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근거로 제시하였고, 현학이나 관념적 진술에 머무는 것을 극복하고 이론과 실제의 종합을 이루기 위해, 한편으로는 난해한 이론의 이해를 위해 각각의 논의를 실제 불상 텍스트에 적용하였다. 동서양을 통틀어 어느 누구도 한 적이 없었고 각각의 이론이 불교철학에서도 난해한 부분이라 필자에게 이 작업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불상에 적용한 부분은 쉬웠겠지만, 이론 부분의 이해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양해를 구하며, 이제 조금 쉬운 길을 가고자 한다.
오늘부터 연재하는 글은 한 마디로 말하여 불교의 사유로 불교 텍스트를 읽는 법이다. 서양의 패러다임, 세계관, 논리, 사유체계가 아니라 불교의 그것으로 불상이나 선시, 불화 등을 읽고 해석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동양미학이나 불교 미학 관련 책을 보면, 불교 철학을 거의 그대로 나열하고 있는데, 진정 ‘미학’이 되려면 불교철학을 가공하고 응용하여 철학과 예술을 매개하는 미학원리로 제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열 차례로 나누어 제1절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만큼 본다」에서 제10절 「진정성과 자비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기술한다.
시대는 21세기이고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불교 예술작품이건만, 우리가 불교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흔히 애용하는 것은 서양에서 100여년 전에 등장한 실증주의, 혹은 이에 역사주의 비평을 결합한 역사-실증주의 비평방식이다. 이 방법은 작가와 작품에 관련된 실증 자료를 작품과 등치시켜 해석하는 방식이다.
교양국어를 강의하던 시절 필자는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의 고정관념이나 허위의식을 깨기 위하여 열 문제를 내고 풀이를 해 주었다. 그 중 한 문제가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의 주제를 쓰라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암울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 내지 초인에 대한 기대…” 식으로 토씨나 어미만 틀릴 뿐이지 거의 대동소이한 답을 내놓았다. 이는 ‘광야’라는 시를 일제 시대라는 사회경제적 배경, 이육사라는 작가의 문학관 등의 실증과 대비시켜 해석한 것을 유일한 해석으로 싣고 있는 국어 참고서에 아직 학생들이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광야를 독립군이 말 달리는 벌판만으로 연상하는 한 그들은 자유로운 해석자나 주체가 아니다.
교과서에 얽매인 학생들의 상상력
역사-실증주의 비평 방식을 하나의 모토(motto)로 압축하면 “아는 만큼 본다.”이다. 이 말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광고 문구로 쓰일 정도로 유행어가 되었다. 그는 이 저서에서 미술, 특히 불교를 비롯한 우리 문화 유산을 볼 수 있는 ‘최선의 묘책’으로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를 제시했다. 그는 실제로 아는 것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텍스트를 해석한 것에 자신의 인상(印象) 비평을 더해 우리 문화유산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이것은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그가 이 저서에서 탁월한 시각과 문체로 입증하였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읽는 방식에는 동조할 수 없다. 이런 읽기 방식은 아는 것, 혹은 실증에 독자들의 자유로운 해석과 상상의 길을 구속하며, ‘아는 것’의 권위 때문에 강력한 신화를 형성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유홍준 교수는 100% 서울대 교수들의 논문을 바탕으로 석굴암 등을 해석하고 있다. 이는 서울대와 그 학자들의 권위를 갖고 한국 대중들에게 ‘거역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진리’로 인식되었다.
지면관계상, 상세한 진술은 필자의 졸고, 「한 국문학자의 유홍준 공식 비판 -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만큼 보인다」(『신동아』, 1998년 11월호)로 미루고 한 예만 들어보자. 3권 「경주 불국사」편에서 유홍준 교수는 “경덕왕은 통일신라 문화의 꽃을 피운 ‘예술의 왕자(王者)’였다. 요즘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문화 대통령’이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그의 지적대로 “불국사, 석불사, 석가탑, 다보탑은 물론 에밀레종, 경주 남산의 불상, 안압지 출토의 판불(板佛)들 … 국립 경주박물관의 불상과 불교관계 유물 중 뛰어난 것은 모두 이 시기(경덕왕 대)의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라는 실증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경덕왕은 유홍준 교수의 가치관으로 보아도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박정희나 전두환과 유사한 인물이다. 경덕왕은 한마디로 말해 백성들의 삶이 어떻건 상관하지 않고 전제왕권 강화에만 매진한 왕이며, 순수 우리 말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작업을 필두로 하여 우리 고유문화를 중국화하여 민족문화를 본격적으로 식민지화한 왕이다. 그가 불국사 등의 조영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 것은 대형 공사를 하여 왕의 권위를 높이고 불교, 그 중에서도 화엄철학을 왕권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고자 함이다. 석굴암이나 불국사가 그리 찬란한 문화유산이 된 것은 신라 문화와 예술이 최고의 절정을 이루던 당 시대의 반영이자 김대성과 같은 장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실증들을 들춰보면, 우선 경덕왕 대는 가뭄, 지진, 태풍, 혜성, 메뚜기 떼 출현 등 신라 역사상 가장 천재지변이 심한 시대였다. 이에도 불구하고 경덕왕은 구휼은커녕 불국사와 석불사 조영 등 대형공사를 강행하여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조세를 거두고 부역에 동원하였으며 중국식으로 제도를 개혁하여 전제왕권을 강화하는 데만 골몰하였다. 이로 인해 김사인, 이순 등 왕의 총신이 벼슬을 버리면서까지 극론으로 왕의 패정을 따졌다. 백성들의 참상이 얼마나 처절하였고 패정이 얼마나 심하였으면, 백성들이 나라를 버리고 거의 죽을 목숨인 줄 뻔히 알면서 조각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탈출을 하였는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에서도 경덕왕 이후 하늘과 교통이 끊어져 신라에 성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실증’은 작품 해석의 기초일 뿐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하여 예술작품이 아닌 것을 예로 들었다. 고대 불교 예술 작품의 경우 아는 것, 곧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실증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작품을 연구할 경우 주관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작품을 해석하는 기초 자료로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많은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우선 아는 것을 실증으로 놓고 이를 바탕으로 진리를 검증하는 작업은 끝없이 실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진리는 계속 유보된다. 쉽게 비유하여 이 비평은 끊임없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 해석이 될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몇몇 실증을 근거로 경덕왕을 문화대통령의 표상으로 판단하였으나 다른 실증을 보면 경덕왕은 백성들을 핍박한 전제 군주다. 이 예에서 보듯, 수많은 사료에서 연구자의 가설을 입증하는 실증을 찾아 발표된 썩 훌륭한 논문도 이를 반박하는 다른 실증이 발견되면 한 순간에 무너진다.
필자의 비판 또한 다른 실증이 발견되면 재반박당할 수 있다. 이처럼 검증은 계속 검증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칼 포퍼는 검증(檢證)이 아닌 반증(反證)을 통하여 진리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실증주의를 한 단계 높이 발전시켰다. 수억 마리의 검은 까마귀를 잡아 “모든 까마귀가 검다”라는 것을 검증했다 하더라도 단 한 마리의 흰 까마귀만 반증으로 제시해도 이 사실은 보편법칙의 타당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현실 이상의 상상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일치시키는 작업은 그 작품이 3류임을 증명하는 작업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작가의 의도에서 멀어진다. 작가의 의도와 텍스트의 의미, 작가나 향유층의 이데올로기와 예술 텍스트는 일치하지 않기 마련인데 역사-실증주의는 이를 동일시하고 있다. 어떤 교수는 한 논문에서 글로 된 한국 불교 문화유산 가운데 최고라 할 『삼국유사』에 대하여 “일연이 민훤(閔萱) 등 친원적이고 보수적인 권문세가의 후원에 힘입어 국존(國尊)에 임명될 정도로 반민중적, 친원적이어서 피지배층의 갈등과 대립을 화해적 분위기에서 해소하려는 의도로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라고 주장한다. 반민중적, 친원적 성향을 가진 일연이라 하더라도 얼마든 자신의 계급적 입장이나 이념을 떠나 창작을 할 수 있다.
삼국유사 설화는 오히려 민중적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 대부분이며 거기에는 민중의 꿈과 현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것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의 자유로움과 탁월함이다. 발자크는 철저한 왕정복고주의자였지만 그는 당시대의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비판하고 진보적 비전을 제시한 소설을 써 ‘리얼리즘의 승리’를 이룬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것이 발자크의 자유로움과 탁월함이자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진정한 예술일수록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굴절하며 작가가 아는 것, 그의 의도, 현실의 굴레를 넘어 상상하고 비전을 편다.
실증주의는 이미 객관적으로 인식된 것, 검증된 것, 이해된 것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해석의 지평을 축소한다. 가다머의 지적대로 이런 이해와 관찰 방식은 선입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철저하게 과거에 얽매인다. 때문에 이 방법론은 예술이 새로운 창조를 이룩하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여는 것을 등한히 하며, 독자가 과거, 또는 기존체제가 만들어놓은 실증에 의존하여 해석과 평가를 내리도록 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출처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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