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24)
한적(閑寂) - 세상 모든 움직임 그곳 고요함에서 비롯되었어라
일은 사방에서 예고 없이 터지고 야근의 연속이다. 그 사이 집안에는 제사가 있다. 전자 우편함에는 소명서를 청구하는 편지가 와 있고, 책상 위에는 세금 고지서가 놓여 있다.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어 겨우 눈을 떴는데, 아이는 가방 메고 서서 수업 참관 여부를 묻는다. 머리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우리의 일상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고요함을 찾는 일이다. 정신 이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유년기 체험을 찾아간다. 단어의 뜻이 복잡하여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언어학자는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에서 길을 잃어 똑같은 길을 반복하여 돌 때는 당황하지 말고 처음 출발했던 곳에 서야 한다. 일상이 너무 번잡하고 분주할 때는 마음의 지도 속에서 한적(閑寂, 한가함과 고요함)의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고요함에서 나오는 법이니, 움직임을 다스리는 키도 고요함에 있게 마련이다.
옛 사람들은 도연명의 ‘음주(飮酒)’ 시 중 “동쪽 울 아래서 국화를 따다 / 우두커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을 좋아하여, ‘見’자 자리에 ‘관’(觀)이나 ‘망’(望)이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곤 했다. ‘관’이나 ‘망’에는 의도가 들어있지만, ‘견’은 사물과의 의도 없는 조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상은 이렇게 매긴다. “사람 사는 마을에 집이 있지만 /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그리고 이렇게 받는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게 가능하오 / 마음이 머니 곳은 절로 외지게 되지요.(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한가한 삶은 없다, 한가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고요한 세상도 없다, 고요한 태도가 있을 뿐이다.
사마휘와 서서는 유비에게 와룡 선생을 천거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 두 아우를 데리고 제갈량을 찾았으나 두 번이나 헛걸음했다. 초야의 은사 제갈량으로서는 흥분되는 일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유비를 찾아갔거나, 아니면 서신이라도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강절(邵康節)은 “고요한 가운데서 세상 움직임을 살피고, 한가로운 곳에서 사람들 분주함을 본다”(靜中觀物動, 閑處看人忙)고 했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피고 또 다스리는데, 마음마저 어지러우면 아니 될 일이다. 자신의 출사가 일신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유비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고, 초당에서 잠들 수 있었으며, 유비를 세워놓고 잠꼬대를 할 수 있었다. 제갈량은 한가로움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로운 잠에서 깨어나 유비의 마음을 알자, 그는 벽에 서천(西川) 54고을의 지도를 걸어놓고 천하삼분계를 제시한다. 이로써 난마처럼 얽힌 천하의 정세는 비로소 정돈되기 시작한다. 심사원려(深思遠慮)는 모두 한가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제갈량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유비의 태도를 살폈던 것이다.
담박한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고요하게 먼 일을 도모한다. (淡泊以明志, 寧靜以致遠.)
제갈량의 집에 붙어있던 글귀는 고요한 마음으로 원대한 일을 꾀하는 그의 마음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뒷날 유비가 동오의 싸움에서 죽고, 조조의 군대가 다섯 갈래로 쳐들어올 때도 제갈량은 한가로이 연못의 물고기를 살피고(觀魚) 있었다. 준비가 되어 있으니 분주할 이유가 없음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란 모름지기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한가로움과 고요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포위되었을 때 김시민은 밤마다 악사로 하여금 성벽 위에서 피리를 불게 하였으니, 이 또한 한가로움을 보여 성안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을 동요시킨 것이다. (‘난중잡록)
1083년 10월12일 밤, 지금의 호북성(胡北省) 황주(黃州)의 유배객 소동파(1036~1101)는 옷을 벗고 잠들려고 하는데 달빛이 문 안으로 들어왔다. 달빛에 취해 흔연히 일어났는데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근처 승천사(承天寺)에 이르러 벗 장회민(張懷民)을 찾았다. 회민 또한 잠들기 전인지라 함께 뜰을 거닐었다. 뜰에는 달빛이 가득하였고, 물풀들이 엇갈려 있는 듯했으니, 바로 대나무와 잣나무 잎의 그림자였다. 동파는 이날 밤 승천사의 광경을 이렇게 말했다.
어느 밤인들 달이 없겠으며, 어딘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으랴만, 우리 둘처럼 한가로운 이는 적을 것이다.
도합 85자에 지나지 않는 ‘기승천사야유(記承天寺夜遊)’의 이야기다. 동파의 말대로 달과 나무는 물론이고, 이 땅 어디에 간들 승천사만한 절집이 없을 것이며, 누구에겐들 장회민 같은 벗이 없을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한가함은 언제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날 밤의 한가함은 소동파가 얻어낸 것이다.
1708년 봄 눈이 녹자, 설악산 수렴동 계곡에 은거하던 김창흡은 산에서 내려와 영남 여행길에 나섰다. 봄빛이 예쁜 3월9일 예안의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이황을 참배하고 유품을 살펴보았다. 선비의 유품이라고 해야 보던 책이며 지팡이 등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대현(大賢)은 차림새가 요란한 법이 없으니, 그 정신은 외려 그런 소박하고 빛바랜 물건에 배어 있는 법이다. 이날 밤 그는 객실에서 묵었는데 도산서원의 풍치는 이러했다.
사당에 참배한 뒤에 서원의 객실에서 쉬었다. 저녁을 먹은 뒤 다시 나서 암서헌(巖棲軒)에서 옷깃을 여미고 고요히 앉아 있으려니 엷은 구름에 가린 희미한 달빛으로 연못의 수면이 빛나고, 여울소리와 소쩍새 우는 소리가 어우러져 맑고 또렷하게 들려오는데, 스승님 방에서 기침소리가 나오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보고 느끼는 가운데 얻은 것은 백년이 가도 썩지 않을 것이다.
나도 도산서원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낙강에 비치는 달빛을 보고, 대바람에 섞여 오는 소쩍새 소리를 듣고, 퇴계가 밟았던 곳을 골라 디뎌보고 싶다. 세계적인 부호가 묵는 호텔에서의 일박과 도산서원 객실의 하룻밤을 놓고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고를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산림의 한 점 청정한 마음을 간직한 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빼앗긴 들에 영원히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암흑이 더 깊어만 가던 시절. 수많은 문인 학사들은 분주히 몸과 마음을 옮겨다니며 일제의 영화를 노래하고 전쟁을 찬양했다. 하지만 한용운은 성북동의 북향 집 심우장(尋牛莊)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끝까지 고요함을 지켰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님의 침묵’이든 한시든 정적감과 따스함으로 가득하다. 어디 시조는 아니 그런가! 다음은 그의 ‘춘주’(春晝) 두 수이다.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 어디서 꾸꾸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깊은 물은 소리가 없으나 때로 바람이 불면 천 길 파도를 일으킨다. 태풍 전의 잔잔한 바다가 무서운 이유이다. 온유하고 돈후한 사람이 한 번 격노하면 세상을 바꾼다. 말없이 고요함을 지키는 사람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한 치도 밀리지 않고 극악해진 일제와 끝까지 맞섰던 한용운의 힘은 모두 따스한 봄 빛 아래 유마경을 읽고 향 피우고 앉아 조는 삽살개를 보는 고요함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달(1539~1612)은 암자의 한 스님에게 이런 시를 지어 주었다. “산이 흰구름 속에 있으니 / 흰구름을 스님은 쓸지를 않네 / 손이 오자 그제야 문이 열리고 / 골짝마다 송화가 익어가누나.”(山在白雲中, 白雲僧不掃.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신석정(1907~1974)은 대바람 소리가 창을 흔들고, 미닫이에 가끔 구름의 그늘이 지는 한옥에서,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을 서성이다가, 눈에 드는 병풍의 ‘낙지론’(樂之論)을 읽어도 보다가, 이렇게 읊조렸다. “그렇다! / 아무리 쪼들리고 / 웅숭거릴지언정 / 어찌 제왕(帝王)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대바람 소리’)
고요함과 게으름은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다. 고요함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과는 문학은 물론 천하의 일을 논의할 수 없다. 한가롭고 고요한 삶은 우리 모두의 꿈이자 권리이며 의무이다. 세상이 복잡하고 삶이 분주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마음속에서 그걸 찾지 못하고, 문학에서도 그걸 얻지 못하면, 옛 서원의 삐걱거리는 마루에 앉아보거나, 단청 바랜 산사를 걸어 올라볼 일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한 점 청정한 고요함과 한가함이 일상에서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이승수 경희대 연구교수>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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