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한반도 땅끝으로 달마가 온 까닭은

slowdream 2008. 8. 11. 17:40

 

[하늘이 감춘 땅] 달마산 도솔암

 

세상이 감춘, 금강산보다 더 첩첩이 예술품

도솔은 지족…만족의 처음과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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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땅 끝에 달마산이 있습니다. 전남 해남 달마산을 보고 놀라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토록 빼어난 산에 대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데 놀라고, 땅끝마을에 금강산보다 더 화려한 산이 숨어있다는 게 신기해서 놀랍니다. 저도 몇 년 전 달마산을 처음 보았을 때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 현묘함에 놀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번엔 그 놀라운 시각이 닫힌 한밤중에 달마산에 들어섰습니다. 달마산 한 가운데 미황사였습니다. 병풍처럼 외호하는 달마산도, 그 앞에 펼쳐진 바다와 섬들은 모두 어둠의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빼어난 진경의 터럭 한 자락도 시야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디에서 달마를 찾아야할까요?

 

고려 때 무외 스님이 쓴 역사기록 한토막

 

이곳엔 달마가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땅 끝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과연 달마가 고국 인도로 돌아가지 않고 한반도의 땅 끝으로 왔을까요. 석가모니가 편 불법의 28대 계승자인 달마대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선(禪)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었습니다. 달마는 자신의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다섯 번이나 독약을 받았습니다. 이를 신통력으로 알아채 이겨낸 달마는 여섯 번째는 스스로 독을 받아 마시고 숨을 거둬 웅이산에 매장됐습니다. 그를 장사 지낸지 3년 째 되던 해 달마는 짚신 한 짝을 지팡이에 꿰어 어깨에 메고 인도로 돌아가기 위해 파미르 고원을 넘고 있었습니다. 때 마침 서역에 다녀오던 위나라 사신은 달마가 독살된 줄 모른 채 "대사께서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서천(인도)으로 간다"고 답변했습니다. 송운이 돌아와 보니 달마는 이미 3년 전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왕이 달마의 묘를 파보게 하자 무덤 안에는 짚신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이 많이 알려진 달마의 전설입니다.

 

그러나 땅끝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달마가 중국에서 인도로 가지 않고, 이곳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는 역사의 기록 한토막이 있습니다. 고려 때 무외 스님이 쓴 글에서입니다.

 

"지원 신사년(1281년) 겨울에 남송의 큰 배가 표류해 와 이 산 동쪽에 정박했을 때 한 고관이 산을 가리키면서 묻기를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 하는데 이 산이 그 산인가'라고 하자 주민들이 '그렇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 고관은 달마산을 향해 예를 행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부럽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라며 그림으로 그려 갔다."

 

예전부터 땅끝 해남엔 중국에서 표류해온 배들이 종종 왔다. 산동반도에 배를 띄운 채 노를 젓지 않으면 해남에 이른다고 합니다.

 

달마산에서 상주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달마의 육신이 아니라 법신입니다. 달마(Dharma)는 불법이며, 진리입니다. 그 '달마'를 몸으로 볼 수 있습니까, 글로 찾을 수 있습니까, 생각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법신이 그렇습니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없는 곳이 없습니다. 다르마가 있는 곳에 법신이 있습니다. 달마와 부처가 머무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절 안에는 일천부처, 절 밖에는 일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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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금강 스님이 운무를 헤치고 도솔봉으로 향합니다. 금강 스님의 차에 타고 달마산을 반 바퀴 남쪽으로 돌고 돌아 오르고 오릅니다. 기암괴석과 앞에 펼쳐진 남해바다의 경치는 보지 않고는 전할 수 없습니다. 무외 스님이 "그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고 한 말이 조금도 과장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서막일 뿐입니다.

 

몇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억겁의 예술품들이 구름 속에서 화현합니다. 첩첩 바위요, 화현불입니다. 산 아래는 초생달 같은 만 사이로 보름달 같은 바다들이 잠겨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이름 없는 수군들이 누볐던 우수영과 울둘목도 바로 저 아래입니다. 부처로 화현한 듯한 달마산 바위를 본 왜병들이 "저 산 꼭대기에 서서 절을 하듯 예를 갖추고 있는 저것은 무엇인가? 대체 뭘 하는 놈이기에 높은 산꼭대기에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가?"라고 묻는 대목이 <임진왜란록>에 나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1692년에 세워진 미황사 사적비문에도 기록된 '미황사 창건기'에도 '1만 부처'가 나옵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달마산 아래 포구에 불경과 불상이 가득 실린 돌로 만든 배가 당도했습니다. 이들을 봉안할 장소를 물색하던 의조화상의 꿈에 한 금인(金人)이 나타나 "나는 본래 우전국 왕인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 경과 상들을 봉안할 곳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산 정상을 보니 일만불(一萬佛)이 나투었기에(나타났기에) 여기에 머물기로 했다. 경을 싣고 가다가 소가 누어 일어나 앉는 곳에 안치하라"고 일렀습니다. 의조화상이 소가 경을 싣고 가다가 누워 죽은 자리에 미황사를 세웠습니다. 지금도 미황사 아랫마을 이름이 우분리입니다. 소무덤이 있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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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절 안에는 일천 부처가 그려진 천불도가 있고, 절 밖에 나오면 달마산에 일만 부처 바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 스님은 말합니다. "법당에서 3배를 하면, 3천불이며, 법당 밖에서 3배를 하면 3만배"라고.

 

부처는 경배의 대상만이 아닙니다. 고요만도 아닙니다. 공(空)만도 아닙니다. 불법은 작용하는데 있으며, 쓰는데 있다던가요?  천하명산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퇴락해 폐사로 방치돼 풀만이 무성했던 미황사의 가람을 현공 스님이 가다듬기 시작하고, 금강 스님이 가람에서 불법이 화현케 했습니다. 그가 처음 전국의 내로라하던 절들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템플스테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종단의 많은 스님들이  "누가 그 먼 곳까지 머물러 가겠느냐"며 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미황사에서 금강 스님이 이끄는 템플스테이와 선수련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와 '한문 학당'은 한국 불교계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례로 손꼽힙니다. 그런 전환과 변화와 창조가 없이, 폐허에 낙망하며, 비어있음을 허무로만 끝냈다면 어땠을까요. 허공에 화현해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달마의 저 법신의 현묘한 기운이 지금 달마산과 미황사에서 어깨춤을 추고 있습니다.   

 

꽃이 되고 산이 되고 해가 된, 바로 당신에게로 온 게 아닐까

 

Untitled-6 copy.jpg폐허 속에서도 희망이 충만한 금강스님의 미소 속을 거니는 사이 도솔봉입니다. 희유한 봉우리 사이를 돌아가니 바위 틈새 제비집 같은 도솔암이 안락합니다. 어느 천상도(天上圖)가 여기에 비길 수 있을까요?. 의상대사가 창건했던 도솔암은 사라지고 5년전 법조 스님이 지었습니다. 법조 스님은 하안거를 위해 선방에 들어가고 암자는 비어있습니다.

 

도솔암에 앉으니 미풍이 온갖 세욕을 다 날립니다. 그대로 도솔천입니다. 불교에서 도솔천은 미래에 중생들을 구원할 미륵불이 머물고 있는 곳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호명보살로서 머물던 곳입니다. 욕계(慾界)의 여섯 하늘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살기 좋은 하늘나라라고 합니다. 그 도솔천을 한자로 번역하면 지족천(知足天)입니다. '만족함을 아는 세계'입니다. 어떻게 자족할까요?

 

 

구름의 시샘일까요.  비가 추적추적 흩뿌리기 시작합니다. 여름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고 바람이 불어 추워옵니다. 어떻게 자족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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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은 노스님(은사의 은사)인 전종정이자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1912~2003)이 열반에 들기 전 시봉한 적이 있습니다. 서옹은 달마의 후신 임제의 법맥을 이은 선사입니다. 한 선승이 서옹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에 가면 된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추울 때는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면 된다."

 

또한 서옹 스님은 말했다.

 

"봄에는 갖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밝은 달이 있으며,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으니, 만일 쓸데없는 일에 마음이 거리끼지 않으면 인간이 모두 좋은 시절일 것이다. 만물과 나는 하나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그루의 꽃을 바라만 보고 있지."

 

누가 꽃이며, 누가 산이며, 누가 해이고, 누가 달마이며, 누가 법신일까요? 일만부처가 경배하고 있습니다. 자족하고 넉넉하고 여유있어 '나'를 초월해 꽃이 되고, 산이 되고, 해가 되고, 달마가 된, 아니 본래부터 부처의 법신인 '바로 당신'에게.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