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정통 수행법으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적 수행법은 간화선(看話禪)이다.
간화선은 인도불교가 중국불교로 이어지면서 변화된 수행체계로,
하나의 문제를 깊이 참구해 그것의 본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수행법이다.
하나의 문제란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을 일컫는 것으로
수행자로 하여금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종의 의심덩어리로 표현되는데 그 가지 수 만도 무려 17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동안거 수행에 들어간 전국 90여 개 선원의 2000여 수행자들이
하루 평균 3~4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며 생사를 초월해 붙잡고 있는 것도
바로 이 화두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조주선사의 ‘무(無)’자 화두를 비롯해
‘이뭣고’
‘만법귀일 일귀하처'
(萬法歸一 一歸何處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마삼근(麻三斤, 삼서근)’
‘뜰 앞의 잣나무’가 대표적 화두이다.
조계종 포교원연구실이 출간준비 중인〈조계종 신도 간화선 수행프로그램 교안〉에서는
이러한 연유로 간화선을
“역대 조사스님들이 제시한 말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화두를 간(看)하여 깨닫는 수행법”
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화두를 말길이 끊어지고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근기(根機)가 뛰어난 사람은 화두를 받자마자 깨달음을 얻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화두를 들고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두를 타파하면 백억 가지 법문을 뛰어넘어 곧바로 깨달음에 이르기에
옛 조사스님들은 간화선 수행을 “캄캄한 방에 불이 켜져 일순간에 모든 것을 ‘확’ 밝히는 이치”나
“단박 뛰어넘어 곧바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곤 했다.
그렇다면 간화선은 왜 화두를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화두가 일상적인 분별의식을 타파해 본성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변의 현상에 대해 주관적 선입견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하며
분별의식을 갖고 양변으로 나누어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분별의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화두를 들고 간절하고 사무치게 의심해 들어가야만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간화선의 탄생은 중국 송(宋)대인 11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오른다.
조사선이 중국전역에 확산되면서 한편에서는 조사스님의 선문답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풍조가 나타나게 됐고,
고승 굉지정각(宏智正覺) 선사가 좌선만이 깨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묵조선(默照禪)’을 제창해 조사선을 좌선 위주의 수행법으로 고착화시키는 등
수행법의 병폐와 혼란이 날로 심해져 갔다.
이때 이를 비판하며
조사선의 정신을 이은 새로운 형태의 생활 수행법으로 제창된 것이 간화선이다.
간화선을 제창하고 체계화한 스님은 중국 임제종 계통의 대혜종고(大慧宗) 스님이다.
대혜종고 스님은 후학에게 당부하는 편지글인 서장(書狀)을 통해 간화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당시 사대부 및 승려 등과 교환한 62편의 편지글인 서장은
대혜종고 스님이 당시의 시대풍조 속에서 후학들이 묵조선의 폐단에 빠질 것을 염려하며,
간화선 공부의 길을 찾아 들어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간화선은 조사선의 전통을 가장 정통으로 계승한 수행법이긴 하지만
수행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인다.
조사선이 조사스님의 법문과 선문답을 중요시한데 비해,
간화선은 조사스님의 선문답을 정형화한 화두를 의심해 깨친다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