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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길 찾기]애오려기(愛吾廬記)

slowdream 2008. 10. 29. 16:05

[고전에서 길 찾기]애오려기(愛吾廬記)
입력: 2008년 10월 28일 18:00:47
 
무릇 사람이나 사물이 처음 생길 때는 진실로 각자가 구별되지 않았다. 남이나 나나 다 사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남과 마주 놓고서 ‘나’라 일컬으며 구분을 짓게 되었다. 이에 천하의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나 자기를 말하고 일마다 ‘나’라 일컫게 되었으니, 이미 그 사심(私心)을 이겨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까지 스스로 덧붙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중략)

아, 터럭 하나도 ‘나’라고 하여 이미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면, 나의 몸에서 겨우 터럭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대상이라도 모른 척하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제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 사람에게 이로움이 돌아간다 해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리되면 사랑하기를 지극히 두텁게 한다는 것이 도리어 천하에 지극히 박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다름 아니라 내 한 몸을 사유물로 여기고 자기를 사랑하기를 지나치게 하기 때문이다. (박지원, <애오려기(愛吾廬記)>)


나와 남,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등의 구분짓기는 내가 나를 오롯이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나는 나, 너는 너일 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무시되고 만다. 그런데 구분짓는 의지는 결국 동일화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너는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그러니 너도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폭력으로 바뀌는 것. 때문에 정상인은 비정상인에게 자신의 ‘정상성’을, 인간은 非인간에게 인간적 가치를, 어른은 아이에게 어른의 욕망을 강요한다. 이 모두가 ‘나’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이라면 터럭 한 올까지 사랑하는 지독한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는 물론 나조차 내 것이 아니다. 나 홀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다음에야, 나의 부도, 명예도, 어쩌면 내 삶마저도 온전히 내 것은 아니다. 그럴진대 동일화되지 않는 차이와 내 안의 타자를 인식하는 것,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그들에게 되돌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법 아니겠는가.

<채운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