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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깡패 자본주의’ 탓”

slowdream 2008. 10. 29. 04:33

 

 

[경향과의 만남]“경제위기 ‘깡패 자본주의’ 탓”
입력: 2008년 10월 27일 17:49:44
 
ㆍ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금융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실물경제와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국 월가나 서울 여의도에서 만들어낸 파생 금융상품이라는 것은 노름이나 사기, 투기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산업은 1980년대 이후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졌어요. 미국 경제는 생산은 하지 않고, 다른 나라가 생산한 것을 빼앗는 구조입니다.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식 ‘깡패 자본주의’가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진 지난 24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영남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66)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이날 오후 6시부터 8시30분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을 상대로 ‘자본주의 바로보기’ 강의를 진행했다. 노교수의 강의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고,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유머와 위트가 넘쳐났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금융이 발전하면서 빈부격차가 더 커졌습니다. 금융기관을 자본가 계급이 독점해 자기들의 사적 이윤을 취하는 데 동원한 것이 금융위기의 본질입니다. 지금은 공황 상태입니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위기입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더 이상 사회의 생산력 발전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어떤 식으로든 고쳐야 한다는 신호인 셈이지요. 이는 미국 자본주의나 한국 자본주의에 모두 해당합니다.”

-미국에서 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97년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 투자를 했던 미국 금융가들이 큰 손해를 입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낮추고 싼 이자에 대규모 자본을 공급했습니다. 이것이 정보기술(IT)산업으로 흘러가 ‘닷컴 크레이즈’(dot com craze·닷컴 열풍)를 불러일으켜 IT산업의 과잉생산과 파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FRB는 주택시장으로 자본을 이동시킵니다. 주택수요와 주택건설이 늘어남에 따라 주택가격은 상승했고, 미국 은행들은 주택시장으로 몰렸습니다. 그래서 주택가격이 급등하고 주택이 실제 이익을 실현시키는 투기상품이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 첨단 금융기법이 동원됩니다. 신용등급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을 3개 등급으로 나눈 뒤 주택저당증권을 만들어 모기지회사-투자은행-신용평가기관-보험회사들이 주가를 정신없이 폭등시켰습니다. 크라이슬러·포드·GM 등과 같은 자동차 회사들도 생산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주식과 채권 투자에 열을 올렸습니다. 금융이 실물과 움직이게 된 것이지요.”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고 많은 사람이 걱정합니다.

“국내 상황만 놓고 보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전체가 10년 전에 비유할 만큼 위험에 빠진 것은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가계가 걱정입니다. 외환위기 때는 저축해놓은 돈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계 빚이 너무 많습니다.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10%에 육박했습니다.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라면 모두 1억원 안팎의 빚이 있습니다. 이자만 연 1000만원 수준입니다. 소비가 살아날 수 없는 것이지요. 정부는 진작 집 값을 안정시켰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그렇게 요구했는데 결국 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끼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실화된 금융기관에 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노인들에게 ‘실버 수당’을 주고, 실업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해 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수가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너무 수출에 의존해 왔습니다. 선진국이 경기가 좋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나빠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국내 수요를 늘리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국내 산업이 튼실해지면 중장기적으로 금융위기는 자연스레 해소됩니다. 또 의료·교육 등 공공분야에 투자를 늘려 사회안전망도 확충해야 합니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방만 경영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은행장들이 반성의 의미에서 월급을 10~20% 삭감한다고 하더군요. 20억원 받는 사람들이 16억~18억원 받겠으니 지원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외환위기 때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이 은행에 들어갔습니까. 지금부터라도 금융자본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미국은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했고, 세계 각국도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는 돈을 쏟아붓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저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까 걱정됩니다. 경제위기 타개책으로 전쟁이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20~30년대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방식도 비슷했습니다.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하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공황이 종식됐습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군비를 줄여 생산적인 곳에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그런 개념이 없어 걱정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부자들이기 때문이지요.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고, 감세를 단행해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사람들이 외국가서 골프치고 외제 명품을 사들이지 국내에서는 돈을 쓰지 않습니다.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서울 강남 출신 국회의원들도 문제가 많습니다. 일국의 국회의원이면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사회 전반에 80년대식 ‘공안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으로 역사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영장이 기각됐지만 말입니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군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낸 것을 놓고 국방부 장관이 집단행동이나 항명으로 간주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언론 자유도 크게 위축됐습니다. 방송 뉴스가 80년대식 ‘땡전 뉴스’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나 시민들은 ‘촛불집회’ 이후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전국 차원의 비정규직 노조가 조직되고 여기에 실업자들이 연대해 정부에 일자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대공황 때인 26년 영국에서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각 지역 실업자들이 가두행진을 하면서 모두 런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들은 대기업 노조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좌파일수록 실용노선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좌파는 너무나 교조적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으로 갈라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 안에 파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큰 틀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나 됩니다. 물론 지금은 환율이 올라 달라지긴 했지요. 1인당 2만달러면 4인 가족은 8만달러나 됩니다.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지금의 생산력으로도 분배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을 좋아합니다. 같이 잘 살자고 편안하게 마음 먹으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일례로 스웨덴은 생산수단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지만 분배는 평등하게 이뤄집니다. 이런 스웨덴식 자본주의 모델이 미국에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외국의 빚으로 소비와 투자를 유지하던 미국식 ‘깡패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김 교수의 정년퇴임으로 서울대에서 정치경제학 계보가 사실상 끊겼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르크시즘만큼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경제학 이론도 없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미국식 주류 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마르크시즘을 부흥시켜도 모자랄 판입니다.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수행은 누구

국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최초로 완역했다. 대구상고·서울대 상대를 나와 외환은행에 근무한 뒤 1982년 영국 런던대에서 마르크스 공황이론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88년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학문 다양성 확보를 내건 당시 서울대 학생들의 요구로 교수에 채용됐다. 김 교수는 신고전주의 등 이른바 ‘주류 경제학’ 일색인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좌파 경제학’의 상징적 존재로 많은 진보 경제학자들을 길러냈다. 김 교수의 ‘마르크스 경제학’은 학부생들에게 인기 강좌로도 유명했다. 올해 2월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현재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오창민·사진 강윤중기자>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