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유마 김일수 / 말로써 부처님을 믿는다

slowdream 2008. 12. 2. 01:13

말로써 부처님을 믿는다

 

수자타 / 유마님이 ‘말로써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심은, 어떤 ‘말’로써 부처님을 믿기에 그러하다 합니까?

 

유마 / 나는 ‘원인을 말하고 그 원인의 과보를 말하여’ 부처님을 믿는다. 어떤 것이 ‘원인을 말하고, 그 과보를 말함’인가? 모든 것에는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하며,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지고, 이것지 존재하지 않음으로 저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말함이 그것이다.

 

이를 테면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늙기 시작하고, 늙어서는 병들어 죽는다. 그 사이사이에 무수히 생멸하는 괴로움. 즐거움, 즐거움이기도 하고 괴로움이기도 한 것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들 사이에 끼여 가지가지 견해를 내다가, 한잔 술에 늘어지게 한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을 다 잊고, 또 다른 방에 들어가서는 다른 옷을 입고 다시 그와 같은 일을 하고 또 한다.

 

‘무엇이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함인가? 태어남에서 늙음이, 늙음에서 병듦이, 병듦에서 죽음이 생긴다고 한다면, 이것은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함이다.

 

‘무엇이 이것이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함’이냐? 수자타야, 죽음은 괴로움이다. 병듦이나 늙음은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이 존재하는 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이 역시 존재하므로 괴로움을 없애는 길이 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이 있으므로 열반의 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함’이다.

 

또한 내가 과거에 존재했으므로 현재에 내가 존재하고, 현재에 내가 존재하므로 미래에 내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이것이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한다’고 함이 된다. 따라서 어떤 나의 과거는 어떤 나의 현재이며, 어떤 나의 현재는 어떤 나의 미래이다.

 

수자타야, 너의 과거를 알고 싶으냐? 지금의 네가 받고 있는 그것이 바로 너의 과거이니. 수자타야, 너의 미래를 알고 싶으냐?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너의 미래이다. 이러한 이치를 사무쳐 깨달은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대장부의 길을 간다.

 

‘무엇이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는 것인가?’ 탐욕이 없으므로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괴로움이 없고, 사랑하나 헤어지는 괴로움이 없고, 성냄이 없으므로 미워하나 만나는 괴로움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으므로 양변의 얇은 논변에서 오가는 괴로움이 없다. 또한 태어남이 없으므로 늙음이 없고, 늙음이 없으므로 병듦이 없고, 병듦이 없으므로 죽음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함이다.

 

‘무엇이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이 사라짐이냐?’ 괴로움이 사라지므로 괴로움의 원인이 사라지고, 괴로움의 원인이 사라지므로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사라지고,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사라지므로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사라져, 자취 없는 들판엔 소도 없고, 소도 없으므로 소의 발자국도 없고, 소의 발자국도 없으므로 소를 찾는 주인도 없구나. 이렇게 나는 ‘말로써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였다.

 

몸으로 부처님을 믿는다

 

수자타 / ‘몸으로 부처님을 믿는다’고 함은 ‘어떤 몸’으로 믿기에 그렇다고 하십니까?

 

유마 / 나는 내 몸을 ‘몸이라 여기지 않는 몸’을 가지고 부처님을 믿는다. 어떤 연고냐? 내 몸이라 하였을 때는 ‘나’도 없고, ‘나’가 없으므로, ‘나의 몸’도 없는 까닭에, 이러한 이치의 몸을 가지고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을 뵈어서는 부처님을 뵙는 것도 보이는 부처님도 없는 예불을 드린다. 이것을 예불 아닌 ‘예불’이라 하며, 몸 아닌 ‘몸’이라 하며, 법 아닌 ‘법’이라 하며, 머물지 않은 ‘머묾’이라 한다.

 

몸이 일어날 때는 ‘不生의 몸’을 보며, 몸이 사라질 때는 ‘不滅의 몸’을 보며, 몸이 항상하다 할 때는 ‘不常의 몸’을 보며, 몸이 순간이다 할 때는 ‘不斷의 몸’을 보며, 몸과 마음이 하나이다 할 때는 ‘不一의 몸’을 보며, 몸이 마음과 다르다고 할 때는 ‘不異의 몸’을 보며, 몸으로 (들어)온다 할 때는 ‘不來의 몸’을 보며, 몸에서 나간다고 할 때는 ‘不出의 몸’을 본다.

.......

 

나는 생함이 없는 몸으로 삼학(계정혜)을 배우며, 나는 멸함이 없는 몸으로 삼독(탐진치)을 멸하며, 나는 항상함이 아닌 몸으로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으며, 나는 순간에 머물지 않는 몸으로 열반을 얻을 것이며, 나는 하나가 아닌 몸으로 모든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을 올리며, 나는 또한 다르지 않은 몸으로 모든 중생을 내 몸같이 여길 것이고, 나는 오는 것이 아닌 몸으로 사바세계에 오고, 나는 가는 것이 아닌 몸으로 사바세계를 떠날 것이니라.

이와 같으므로 나는 감히 ‘몸으로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였으니, 세세생생에 나는 이러한 바른 믿음을 기억하고 억념하여, 대중을 만나고 대중을 가르치고 대중과 함께 길을 갈 것이다.

 

유마 김일수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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