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원효 / 一心二門

slowdream 2008. 12. 4. 18:08

 

 

 

 

중생이 길이 생사의 바다에 빠져 열반의 언덕에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의혹과 邪執 때문이다.

 

대승을 구하는 자의 의혹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는 발심에 장애되며, 둘째는 敎門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는 수행에 장애되는 것이다.

 

법을 의심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승의 법체가 하나인가 여럿인가? 만일 하나라면 다른 법이 없는 것이요, 다른 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중생이 없을 터인즉, 보살을 누구를 위하여 넓은 서원을 발할 것인가? 만약 법이 여럿이라면 이는 일체가 아닌 것이요, 일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와 내가 각기 다를 것인데 어떻게 동체의 대비를 일으키게 되겠는가? 이러한 의혹 때문에 발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문을 의심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래가 세운 교문이 많으니, 어느 문에 의하여 처음 수행을 시작할 것인가? 만일 다함께 그 많은 문들을 의거해야 한다면 한꺼번에 그 문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며, 만일 한두 문에 의지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에 나아가야 하는가? 이러한 의심 때문에 수행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신론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의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심법을 세워서 두 가지 문을 열었다.

 

일심법을 세운 것은 저 처음의 의심(법을 의심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대승법엔 오직 일심만이 있으니 일심밖에는 다시 다른 법이 없으나, 다만 무명이 자기의 일심을 미혹하여 모든 물결을 일으켜서 六道에 유전하게 됨을 밝히는 것이다. 비록 육도의 물결을 일으키지만 일심의 바다를 벗어나지 아니하니, 진실로 일심이 움직여 육도를 움직이기 때문에 널리 구제하는 서원을 발하게 되는 것이요, 육도가 일심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동체대비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의심을 제거해야만 큰 마음을 발하게 된다.

 

두 가지 문을 연 것은 두 번째 의심(문을 의심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여러 교문이 많이 있지만 처음 수행에 들어감에는 두 문을 벗어나지 아니하니, 眞如門에 의하여 止行을 닦고 生滅門에 의하여 觀行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다. 지행과 관생을 쌍으로 부림에 만행이 이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이 두 문에 들어가면 모든 문이 다 통하는 것이니, 이렇게 의심을 제거하면 수행을 잘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사집을 버린다는 것은, 여기에 두 가지 사집이 있으니 人執과 法執을 말하는 것이다.

 

대승이 오직 일심뿐이라는 것을 믿고 이해하게 하기 때문에 대승의 바른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하며, 앞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한 분별을 버리어 무분별지를 얻고 여래가에 나서 부처의 지위를 잇게 되기 때문에,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논에서 말하기를, “불법의 큰 바다를 믿음으로써 들어갈 수 있으며, 지혜로써 건널 수 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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