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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8. 자량위

slowdream 2009. 3. 3. 18:08

[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6. 자량위
내적 자질-역량 키우는 수행 단계
잠재적인 번뇌에 끌려 다니기 쉬워
기사등록일 [2009년 03월 02일 13:41 월요일]
 

의식이 유식의 본성을 구하여 머물지 못하는 한에서
인식 주객의 수면은 아직 항복하여 소멸된 것이 아니다.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이것은 제26송이다. 여기서부터는 유식학파의 수행론을 다룬다. 유식학파는 수행과정을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견도위(見道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라는 5가지의 단계를 설하고 있다. 제26송은 그 첫 번째에 해당되는 자량위 단계를 설명한다. 자량위란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를 말한다. 유식의 본성(唯識性)을 탐구하여 그곳에 머무는 단계이지만, 아직은 인식의 주객이란 잠재적인 번뇌(隨眠)를 항복시켜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

 

위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의 요점은 ‘수면(隨眠)’이란 용어이다. 수(隨)는 ‘따르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주객에 의한 심리적인 인식에 마음이 끌려서 ‘따라가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집착’과 동의어로서, 기쁘거나 슬픈 혹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에 손쉽게 끌려가게 된다. 이것이 수(隨)이다.

 

다음으로 면(眠)은 ‘잠들다’는 의미이다. 잠든다는 것은 어떤 정보가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되어서 잠복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식의 상황에서 어떤 감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을 잊지 못하고 마음의 창고에 저장된다. 이 과정은 무의식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된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정서적인 경험은 대뇌의 편도체를 경유하여 해마에 저장된다고 말한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수면(隨眠)은 번뇌로 번역되지만, 유식심리학에서는 정보가 저장되고, 표출되는 과정을 설명하여 준다. 이를테면 편도체에 의해서 해마에 저장된 감정적인 경험들은 유사한 자극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어 밖으로 표출되고, 인식의 상황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은 위험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처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하여 지고 경쟁이 치열하여 지면서, 실제가 아닌 유사한 상황에서도 자주 반복적으로 위험적인 신호를 보냄으로써,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잘못되게 불안을 경험하게 할 수가 있다.

 

〈성유식론〉에서는 수면을 2종류로 분류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번뇌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현상과 관련된 번뇌를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는 전자는 번뇌의 장애(煩惱障)라 하고 후자는 앎의 장애(所知障)라 한다. 번뇌장은 감정적인 열정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번뇌이다. 반면에 소지장은 외적인 현상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에 기초한 번뇌이다. 이것은 지혜의 결여로서 결국은 깨달음의 장애가 된다. 번뇌장이 정서적인 혼란을 가리킨다면, 소지장은 지적인 편견과 우매함을 포괄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근본적인 2종류의 잠복된 번뇌를 치료하기 위해서, 지관(止觀) 혹은 정혜(定慧)의 명상법을 권장하여 왔다. 여기서 지(止)란 사마타로서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 마음의 고요함, 평정, 선정을 의미하고, 관(觀)이란 위빠사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으로서 결국은 통찰과 지혜의 개발을 말한다. 이들에 의해서 결국은 유식의 본성(唯識性)은 본래 존재하지 않아서 언어로 그림 그릴 수 없고, 스스로 맑고 맑아서 환하게 밝음을 터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량위 단계는 이런 유식의 본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초 체력을 다지는 단계를 말한다. 아직은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인식의 상황에서 쉽게 잠복된 번뇌에 끌려간다. 하지만 자량위 단계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건강하고, 사회적인 배려심이 깊고, 자아와 세계가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매우 깊게 잘 이해하고(勝解) 있는 단계이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88호 [2009년 03월 02일 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