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할지니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이다. 우리 눈에는 모든 사물이 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이 사실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의 고전 역학이다. 뉴턴역학의 핵심적인 개념인 ‘힘(Force)’이 사실은 가유(假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뉴턴역학은 자연현상을 너무나 정확하게 설명하여 사람들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자연의 질서 그 자체로 여겼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자연,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은 어둠속에 있었다. 그러나 신이 ‘뉴턴이 있으라.’고 선언하자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것뿐만 아니다. 가립된 개념에 불과한 ‘힘’을 바탕으로 한 뉴턴역학은 서구 열강의 국력이 동양을 압도하게 만든 힘의 원천이 되었다.
과학이 없던 시절, 17세기까지는 동양이 서양보다 기술력에 있어서 여러모로 앞섰었다. 종이, 나침반, 화약,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말할 것도 없고 인구의 수나 경제력에 있어서 동양의 국력이 서양보다 훨씬 컸었다. 당나라 현장(602~664)이 유학하던 시절, 서양에는 대학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으나 인도의 날란다(Nalanda) 대학의 인구는 2만 명 정도였다. 항해에 있어서도 정화(鄭和, 1371~1434)의 선단(船團)은 선원의 수, 배의 수와 배의 크기 등 규모 면에서 컬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46?~1506)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의 함대보다 백배쯤 컸다.
동양과 서양의 힘은 뉴턴역학이 나온 지 200년 만에 역전된다. 뉴턴역학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과학기술이 발휘하는 힘은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그전의 기술이 가진 힘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거대한 나라 인도는 이미 18세기에는 완전히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860년 북경조약에 이르면 중국도 유럽열강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된다.
뉴턴역학의 핵심적 개념인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으로 정의된다. 질량과 가속도는 각각 잘 정의된 물리량이다. 따라서 ‘힘’ 역시 잘 정의된 물리량으로서 어떤 물리적 실재가 ‘힘’이라는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어떤 물리적 실재가 ‘힘’이라는 속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서 ‘힘’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중력(重力)에 관한 이론으로서 뉴턴역학보다 훌륭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一般相對性理論)에는 ‘힘’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힘’을 대신하는 개념은 시공간이 갖는 기하학적 구조이다. 미시의 세계를 기술하는 양자론에서도 ‘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힘’을 정의하는데 필요한 위치와 운동량과 같은 물리량들이 미시의 세계에서는 그 의미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면 ‘힘’은 물리적 실재를 반영하는 물리량일 수가 없을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보면 ‘힘’이라는 개념은 유령(幽靈)과 같은 역할을 한 셈이 된다. ‘힘’이라는 유령이 고전역학을 탄생시켰고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해온 것이다.‘힘’을 다른 개념으로 대치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금강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92호 [2009년 03월 30일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