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에서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말한다. 무아(無我)이며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가 없다는 뜻이다.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아공은 일단 접어두고 법공에 관한 물리학적 견해는 어떤지 살펴보기로 하자. 물리학자들이 입자(粒子)라고 할 때 이것은 어떤 물리량의 세트(Set)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자(電子, Electron)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공간상의 한 점에서 질량이 9.31x10-310kg, 전기량이 1.61x10-19coul, 스핀이 1/2이라는 값을 얻는다면 물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 물리량의 세트(Set)를 가리켜 전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볼 것이 있다. 입자라는 실재가 있어 속성(屬性, 물리량의 세트)을 갖는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속성을 가리켜 편의상 입자라고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측정한 물리량이 입자의 정체성(Identity)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이 물리량들은 입자의 고유성질로서 외부의 영향 없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물리계를 진공상태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양자론에서 보면 진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관측되지 않을 뿐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태다.
전자를 기술할 때 물리학자들은 일단 전자가 진공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가상적인 상황에서 질량, 전기량 등 물리량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가상 상태의 전자가 갖는 질량을 ‘벗은 질량(Bare Mass)’, 전기량을 ‘벗은 전기량(Bare Charge)’이라고 부른다. ‘벗은 물리량’들이 전자의 자성(自性)’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벗은 물리량’들은 정의조차 되지 않는다.
진공이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모든 물리량은 진공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전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측정되는 질량’은 ‘벗은 질량’에서 전자가 진공 속의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얻게 되는 ‘에너지의 값’을 뺀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 상호작용을 통해 얻게 되는 에너지 값은 무한대(無限大)다. ‘벗은 질량’-‘상호작용의 에너지(무한대)’=측정값(유한)이라는 것은 전자의 ‘벗은 질량’이 무한대라는 것을 뜻한다. 값이 무한대라는 것은 ‘벗은 질량’은 정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벗은 전기량’ 역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진공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지 않고 전자가 갖는 고유의 물리량이란 결국 의미 없는 값이다.
의미 없는 ‘이 값’과 의미 없는 ‘저 값’을 결합하여야 비로소 의미 있는 측정값이 나온다. 물리량이 의미를 갖도록 결합하는 것을 재규격화(再規格化, Renormaliz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측정이전에는 물리적 실재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입자라는 실재가 있어서 측정값을 얻는 것이 아니라 측정값의 세트를 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측정값뿐이다.
높은 에너지에서 측정하면 전기량의 값도 변한다. 뿐만 아니다. 어느 범위를 넘어서는 높은 에너지에서는 입자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뀐다. 전기를 띤 전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뉴티리노(Neutrino)가 같은 입자처럼 행동한다.
아주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모든 입자들이 ‘하나의 같은 입자’처럼 행동하리라고 물리학자들은 믿고 있다. 이것은 ‘존재한다는 것’은 연기적 관계에서 나타난 가유(假有)일 뿐 자성을 가진 존재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법공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94호 [2009년 04월 14일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