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치거나 보면 안된다
부처님이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마하목갈라나는 라칼라나와 함게 키자쿠타산에서 수행중이었다. 어느 날 목갈라나는 걸식을 하기 위해 라자가하(王舍城)으로 들어갔다. 목가라나가에 어떤 골목을 지나가고 있을 때 눈앞에 이상한 모습을 한 중생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떤 모습인가 하면 '쇠맷돌로 정수리를 갈리고 온몸에는 불이 활할 붙은 꼴'이었다.
목갈라나는 신통이 뛰어난 제자였으므로 그 가엾은 중생이 어떤 존재인줄 알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궁금하게 여긴 락카나가 물었으나 그가 믿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목갈라나는 돌아오는 길에 죽림정사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 뵙고 이같은 사실을 사뢰었다. 그랬더니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그 중생은 과거세에 라자가하에 살던 남자점쟁이와 여자점쟁이다. 그들은 점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속여 재물을 모았다. 남을 속인 죄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으나 아직도 죄가 남아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잡아함 19권 520경 <점복녀경(占卜女經)>
인생의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만약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할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간혹 용한 점쟁이가 있어서 미래를 예언한다고 하지만 도대체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어떤 신통한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쟁이들은 사주니 관상이니 주역이니 해서 그런 것들을 이용하면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는 점복을 '통계철학'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용하다는 관상가도 자기의 미래는 점치지 못한다. 주역과 팔괘를 아무리 잘 뽑아도 닥쳐오는 미래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금 남을 속이고 있거나 스스로 어리석음에 빠져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점치는 일과 관련한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수상(手相)이 관상(觀相)만 못하고 관상이 심상(心相)만 못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손금이 아무리 좋아도 얼굴이 잘 생겨서도 남에게 호감을 주는 것만은 못하고, 얼굴이 아므리 잘 생겨도 마음을 잘 쓰는 것만은 못하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세상만사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관상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을 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미래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고 그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미래의 길흉화복도 마음쓰기에 달려 있다면 굳이 관상이나 점을 볼 필요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그 시간에 복업이나 많이 쌓을 일이다. 나쁘게 될 팔자라도 복업 때문에 잘 될 것이고, 잘 될 운명이라면 복업 때문에 더 잘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점을 보거나 남을 위해 점을 보는 일 두가지 다 옳지 않다고 가르쳤다. 만약 점을 보아준다고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될 뿐이다. 이러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경전이 520경 <점복녀경>과 521경 <점복사경>이다.
간혹 불자 중에는 점복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어리석음에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언필칭 '방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를 '지옥갈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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