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점이나 주술을 행하지 말라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비구들은 한 자리에 모여 어떤 바라문이 삼보를 헐뜯거나 찬양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마침 명상에서 일어나 산보를 하다가 이를 본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누가 삼보를 비방한다고 해서 분결심(忿結心)을 내거나 칭찬한다고 해서 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라. 저들이 삼보를 비방하는 것은 소소한 인연과 계행과 위의 때문이요, 칭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으로 찬탄하는 것도 비방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심심미묘한 법과, 그것을 깨달은 부처님과, 그 법을 얻으려는 수행자의 지혜를 모르는 까닭에 진정으로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못하고 비방할 것을 비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분결심을 내거나 환희심을 내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수행자는 신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공양물을 올리고 기도하면 제사 지낸다. 어떤 수행자는 손을 합장하여 일월성신에게 기도하고 예배한다. 귀신을 부르거나 쫓으며 행하는 갖가지 기도와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 정력이 강해지거나 약해지기를 비는 주술을 쓴다. 자손의 번창을 빌어준다. 병이 들거나 낫도록 주문을 외운다. 점을 본다. 해몽을 하거나 별점을 치거나 신체의 일부를 보고 (面相 手相 身相 頭相 族相 등) 수명과 재화를 점친다. 천시를 보고 비가 많고 적을 것을 예견한다. 풍년이나 흉년을 점친다. 태평이나 환란을 예언한다. 길일을 예언한다. 혼사일을 잡아준다. 수명을 점친다.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드는데 풍수지리를 보아준다. 길흉화복을 점친다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발이 잘리고 유산을 하도록 주술을 행한다.
거울이나 동녀 또는 신에게 길흉의 때를 묻는다. 사람들에게 행불행을 주려고 주문을 외운다. 물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죄를 면하게 하는 정화의례를 행한다. 물과 불로 주문을 건다. 귀신을 부리는 주문을 외운다. 독사를 호리는 기술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주술을 행한다. 화살로부터 해를 입지 않는 주문을 외운다. 관직에 있는 사람의 직위를 예견해 준다.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주술을 행한다. 입에서 불을 내는 이변을 보인다. 안약이나 연고를 사용하여 환상으로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고행으로 남의 존경심을 사서 이양을 구한다. 국운을 점치거나 예언을 한다.
그러나 석종사문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참다운 진리를 깨달아 열반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라고 가르친다."
-장아함 14권 제21경 <범동경(梵動經)>
불교처럼 일반인들에게 오해되는 종교도 없다.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는 불교는 길흉화복을 예언하고 점술을 행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특히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일수록 더 심하다. 그들은 '불교' 하면 아예 무속신앙이나 점쟁이를 연상한다.
하긴 이런 오해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점집은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 표지(卍)를 내걸고 이름도 'OO암'이라고 절 이름을 표방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계룡산에서 10년 수도를 했다는 '보살'이 불상과 탱화를 모시고 있다.
이런 형편은 진짜 절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것이 없다. 신자들은 택일과 관상, 사주와 기도를 위해 절을 찾는다. 이 경우 부처님은 전능하고 초월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바뀌고 스님들은 부처님과 중생을 이어주는 사제(司祭)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제'란 말이 근사해서 그렇지 사실은 신과 인간을 소통시켜주는 무당을 말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불교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무엇보다 부처님이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혹자는 '포교의 방편'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주나 관상은 '통계철학'이라는 말로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행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없으면 불교는 존립기반이 무너진다'는 말도 한다.
무엇보다 부처님이 그것을 부정했다. 신통을 부려서도 안되고 점을 쳐서도 안되고 주술을 행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 것은 다 삿된 일이고 참다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불교라는 깃발을 내걸고 그 밑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면 정말 부처님 뵙기가 낯뜨거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현실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오, 부처님. 이때는 어찌하면 좋을는지요......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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