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진리를 등불 삼으라
부처님이 나열성 죽림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나열성에는 흉년이 들어 걸식을 해도 음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베살리나 밧지로 가서 안거를 나도록 했다. 부처님 자신은 조금이라도 입을 덜기 위해 아난다와 함께 나열성에 남아 안거를 했다. 이 안거 기간 중 부처님은 병이 나서 몹시 위중했다. 아난다가 걱정을 하면서 왜 제자들을 불러 모으지 않는가를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나는 한번도 비구와 교단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어찌 대중들에게 명령할 수 있겠는가. 대중들이 아직 나에게 더 바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나 나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법을 안팎으로 다 설해 마쳤다. 그렇지만 내가 모든 소견에 다 통달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아난다야. 나는 이제 늙어 나이가 여든이 다 되었다. 비유하면 나는 지금 낡은 수레와 같다. 그 수레를 임시방편으로 조금 수리해서 쓰고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말씀한 부처님은 이어서 이렇게 일렀다.
"아난다야, 모든 수행자는 자기를 등불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을 일이지 다른 이를 등불로 삼지 말라. 또 자기에게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할 일이지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인가. 수행자는 자기의 몸(신)과 마음(심)과 감각작용과 마음에 대해 깊게 관찰하여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며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없앤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며, 자가에게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멸도한 뒤에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곧 나의 진실한 제자요 제일가는 수행자일 것이다."
여기까지 말씀한 부처님은 차바라탑으로 옮겨 어떤 나무 밑에 이르자 '여기에 자리를 깔아라. 등이 아프니 여기서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아난다가 자리를 깔자 부처님은 거기에 앉아 '나는 사신족을 닦았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1겁이 넘도록 세상을 위해 어둠을 제거하고 인간들에게 많은 이익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난다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러자 마왕파순이 나타나 부처님에게 '세존께서는 마음에 욕심이 없으시니 지금 열반에 드는 것이 옳다'며 열반을 권했다. 이에 부처님은 '지금은 때가 아니니 잠시 기다려라. 삼 개월 뒤에 열반에 들리라'며 마왕의 뜻을 일단 물리쳤다.
-장아함 제4권 <유행경(遊行經)>
불자들은 자기신앙을 고백할 때 '부처님을 믿는다'는 말보다는 '불교를 믿는다'고 말한다. 이는 기독교 신자가 '예수를 믿는다'거나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말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처님은 믿지 않아도 불교의 진리는 믿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교가 인간에 의지하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에 의지하는 종교라는 뜻이다.
이러한 태도는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있어온 기풍이다. 예를 들어 잡아함 47권 <발가리경>에는 박칼리라는 제자가 중병이 들어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한번 뵙기를 소원했다. 부처님이 그를 찾아가자 박카리는 일어나 예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만류했다.
"박카리야, 나의 이 늙은 몸을 보고 예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대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진리(法)를 보는 자가 부처님을 본다. 부처님을 보는 자가 진리를 본다' 라고."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은 자신에 대한 인격적인 숭배를 거부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열반에 즈음해서 부처님의 유훈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모든 수행자가 마음에 새겨야할 가르침이란 이런 것이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스스로가 의지처가 되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으라.(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부처님이 이렇게 사람보다는 진리를 등불 삼고 의지처로 삼으라고 한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서다.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하면 실망하기 쉽지만 진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 자신도 깨달음을 성취한 뒤 '이제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살아갈까'를 고민하다가 '진리를 스승 삼아 살아갈 것'을 다짐한 적이 있다.
사람에 의지하다가 실망만 거듭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보다는 진리를 등불삼고 의지하라는 가르침은 두고두고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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