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불사음계에 대한 몇 가지 문제
부처님이 쿠루수 유로타촌 북쪽 싱사파동산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유로타촌 사람들이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권속을 데리고 와서 설법을 들었다. 그들 중 뢰타화라라는 젊은이가 출가를 결심하고 부처님에게 허락을 청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오기 전에는 출가를 허락할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두 번 세 번 간청해도 부모가 허락을 하지 않자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출가를 허락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도를 얻으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부모의 허락을 얻은 뢰타화라는 드디어 사문이 되었다. 열심히 정진해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뒤 뢰타화라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생각하고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간 집에서 뢰타화라는 뜻밖에도 문전에서 박대를 받았다. 10년 동안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화가 난 아버지가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중이라면 보기도 싫다'면서 쫓아버린 것이다. 그때 마침 한 여종이 그를 알아보고 집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는 급히 뛰어나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잔치를 베푼 뒤 '우리가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너에게 줄 터이니 집으로 돌아와 보시를 행하고 복업을 닦으며 살라'고 권했다.
그러나 뢰타화라는 도리어 '사람들이 이 돈으로 인해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참다운 행복을 얻지 못한다'며 출가생활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부모는 며느리를 아름답게 치장해서 유혹하게 했다. 뢰타화라는 '좋은 비단으로 냄새나는 몸을 꾸민다고 저 언덕을 건넌 사람을 유혹할 수 없다'며 아내를 물리쳤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집을 나와 유로타 숲에 가서 머물렀다. 소문을 듣고 구뢰바라는 왕이 찾아와 재물과 친족을 버리고 출가수행하는 이유를 물었다. 뢰타화라는 이렇게 답했다.
"대왕이여. 이 세상은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병들고 늙어갑니다. 이 육신도 무상해서 끝내는 버려야 합니다. 누구도 이를 대신해줄 수 없으며 재물이 많아도 저승까지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 때문에 나쁜 업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알고 욕심을 품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내가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도를 배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중아함 31권 131경 <뢰타화라경(賴咤華羅經)>-
중국의 혜능선사는 <육조단경>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행을 하려면 집에서도 가능하다. 굳이 절에 갈 이유는 없다. 불법은 원래 세간 속에 있기 때문(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法元在世)"
이 언급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보면 '출가수행'의 문제는 불자들 사이에서조차 여전히 시비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은 부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수행자들이 출가하려면 부모와 가족들의 반대에 봉착했다. 불자들이 부처님이나 수행자에게 공양하는 것을 큰 공덕으로 여기면서, 막상 자기자식이 출가한다면 반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독신수행의 길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출가수행이란 독신생활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자식의 생산과 혈통의 보존을 중요한 의무로 생각해온 세속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부처님 제자 중에는 출가한 이후 부모의 권유로 일점혈육을 만들기 위해 부인과 동침한 사람도 있었다. <사분율>에 의하면 출가수행자에게 불음계(不淫戒)가 제정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였다. 이 경은 불음계가 제정된 이후에 있었던 어떤 제자의 문제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이토록 불음계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은 욕망의 표현이며 윤회의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처님은 '차라리 독사의 입에 남근(男根)을 넣을 지언정 여근(女根)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반페미니즘적 발언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아주 세속적인 이유를 하나 예로 들면, 만약 모든 사람이 다 출가하여 이성과의 교접을 하지 않는다고 할 때, 종족보존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교리적으로 보더라도 육도윤회의 과정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수행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토록 철저하게 불사음을 강조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 이는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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