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다른 종교에 대한 불교의 태도
부처님이 날란다 바바리나 숲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고행자(長苦行者) 니간타의 제자가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이 그에게 '그대의 스승은 어떤 방법으로 악업을 짓지 않도록 가르치는가'를 물었다. 그는 '몸과 입, 생각으로 잘못하면 그것을 벌주는 것(苦行)으로써 악업을 짓지 못하도록 한다'면서 '부처님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몸과 입이 잘못을 하더라도 고행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으로 악업을 짓지 말고 선업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부처님과의 대화를 통해 큰 깨우침을 받고 스승에게 돌아가 이 사실을 말했다. 마침 그 자리에는 니간타의 재가제자 우팔리거사가 있었다. 우팔리는 자기가 부처님을 찾아가 대론을 해서 항복을 받고 오겠다고 했다. 니간타는 '자네가 가서 항복을 받으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할까봐 걱정'이라면 만류했다. 우팔리는 자신 있다면서 나섰지만 그 역시 부처님과의 대론에서 설복 당하고 말았다.
"부처님.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하도록 삼보에 귀의하는 재가신도가 되겠나이다."
"거사여 그러면 됐다. 그러나 잠자코 실천할 뿐 굳이 삼보에 귀의한 것을 공포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사람은 오직 선을 행하느니라."
"부처님.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깃대를 들고 돌아다니며 자랑할 텐데 '잠자코 실행하고 공포하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부처님이시어. 저는 앞으로 장고행자 니간타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부처님 제자만 오도록 하겠나이다."
"거사여. 그러면 안 된다. 저 니간타들은 오랫동안 너의 존경을 받았다. 만일 저들이 오거든 옛날과 같이 존경하고 공양하라."
"부처님.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다른 이 같으면 '마땅히 나와 내 제자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이에게 보시하지 말라'고 할 터인데 부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사여 그렇다. 나는 '나와 내 제자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이에게 보시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큰 기쁨을 얻으라'고 말한다. 다만 '바르게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얻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중아함 32권 133경 <우팔리경(優婆離經)>-
지금도 그렇지만 부처님이 활동하던 시대의 인도는 종교와 사상의 백화점이라 할 정도로 많은 종교가 있었다. 경전에 의하면 육사외도(六師外道)로 불리는 대표적 외도 말고도 92종의 사견(邪見)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 종교와 사상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종교를 깎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심한 경우는 음모와 살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종교가 겉으로는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서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절대적 신념'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내세우는 주장을 '진리'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그 진리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해야 한다는 독단을 만들어낸다. 일부 종교의 극단적 선교주의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극렬한 배타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비합리적 주장을 하는 일부 종교에 대해 '외도' 또는 '사견'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없다. 이 경전에서 보듯이 보시는 누구에게나 해야 하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이나 신에게 해야 복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고 협박하거나 공직자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식의 망언은 하지 않는다. 극단적 배타주의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도 불교의 진리를 선포하고 전도하는데는 다른 종교와 같이 적극적인 활동을 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리와 상식을 기준으로 한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다. 선한 일을 해서 복을 받는다면 종교에 관계없이 복을 받을 것이요, 악한 일을 해서 벌을 받는다면 누구나 받는 것이지 특정종교를 믿는다고 용서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이나 종교에 귀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불교의 위대성이자 역사적 전통이기도 하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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